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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멈춘 하늘 길 그리고 더 가혹한 항공 노동자의 길 | 칼럼

  • 박창진
  • 2020-08-24 16:04
  • 2,095회

우리 역사 속 단군신화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원했을 때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기도하라고 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렇듯 백일은 우리의 삶 속에 꽤 많은 의미가 있는 듯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백 번째 되는 날은 백일잔치를 벌여서 손님을 초대하고 축하를 받기도 하고, 또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만난 지 백일을 기념으로 해서 커플 반지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백일이란 짧은 시간인 듯 하지만, 꽤 긴 인내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드디어 위험들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시간으로 새롭게 넘어간다는 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 또 다른 의미의 백일을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쪽에 천막을 치고 투쟁 중인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투쟁은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가 된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올 3월 아시아나케이오는 코로나로 인한 항공 수요 감소로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연차휴가를 강제 소진하도록 요구했다. 연차를 자발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각각 사용할 날짜까지 지정해서까지 강제로 연차 소진을 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측과 제1노조(한국노총 소속)는 3월 16일 노사협의회를 열었고 4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통상임금의 70%를 지급하는 유급휴직을 실시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공지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대다수 노동자가 이 서명에 동참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는 금방 다시 뒤집혔다. 회사와 제1노조가 긴급노사협의회를 열고 ‘4월 한 달만 유급휴직을 실시하고, 5월부터는 무기한 무급휴직에 들어간다’며 기존 합의를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500여명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 중 120명이 희망퇴직을 선택했고, 370명은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했다. 회사는 무급휴직을 받아들인 노동자 중에 필수유지업무 인원 160명만 남긴 채 나머지 200여 명은 무급휴직 상태로 만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기한 무급휴직은 해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시아나케이오 민주노조 조합원 10명은 끝까지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은 이들 중 8명을 5월 11일자로 정리해고 했다. 이들 중 6명의 노동자들은 해고에 맞서 이 한여름에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재난의 충격을 완화할 능력이 있는 기득권 계층은 위기상황에서도 큰 고통을 겪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알고 수단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재난이 오면 죽고, 다치고, 집을 잃는다. 이전보다 더 고통받고 그나마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빈곤의 덫에 갇히거나 덫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쏟아지는 비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었으나, 누군가에는 재앙이었던 것과 같다. 코로나 19로 인한 빈곤층 근로소득 감소율은 최상위의 4.5배에 달하며, 그 피해는 영세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고 있다.

 

 

[사진]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이 2018년 10월 대한항공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따라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싸움이기도 하다. 25년간 항공사 승무원 노동자로 근무한 나는 그들의 전쟁 같은 일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까지 항공 사용자 수치는 가히 기하급수적인 팽창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각 항공사는 소위 쉴 틈 없이 항공기를 돌렸다. 방금 착륙한 비행기는 승객이 내리기 무섭게 약 1시간 만에 다시 새로운 운항에 돌입한다. 그래서 비행기에 주기하고 있는 약 1시간 안에 다음 비행 준비가 완료되어야 한다. 


비행기를 청소하고, 새로운 서비스 아이템을 싣고, 주유 등 준비까지 모두 승객 탑승 30분 전까지 끝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뿐이다. 비행기가 다음 운항을 준비하기 위해 주기장에 머무르는 이 30분 동안, 비행기 안은 전쟁과 같은 숨돌릴 틈 없는 노동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런 준비를 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항공사가 하청을 준 하도급 회사의 노동자들이다.


이 전쟁 같은 일터를 버텨내는 노동자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2018년 7월에도 있었다. 대한항공에서 기내청소 등을 맡아오던 파견업체 ‘이케이맨파워’ 소속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지급과 남녀 차별 임금의 개선을 요구하며 14일 간의 파업을 진행했다. 회사는 파업을 이유로 350명의 노동자를 2018년 7월 말일부로 집단해고했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나에게 함께 해 줄것을 요청해 왔다. 


솔직히 그때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힘겹게 회사를 상대로 업무상 불이익, 2차가해 또 땅콩회항을 저지른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등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오너일가의 물컵갑질등을 비판하는 와중 기존 노조가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언론에 했다는 이유로 바로 노조로부터 제명되는 등의 일을 겪으며 어느 곳 한군데에도 기댈 수 없는 외톨이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상황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이들 노동자들과 함께 대한항공 앞에서 시위를 했다. 그 결과 총수 일가의 갑질사건의 연속 선상에 있는 사건으로 이들의 해고 투쟁이 다뤄지며, 다음날 노동자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내가 이들의 요청에 차마 눈감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어려울 때 손잡았던 그 노동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회사에 복귀한 나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 같은 동료들 그 누구도 나와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고, 사무장의 위치에서 이코너미 승무원으로 강등된 나는 그 이전과 다른 업무 환경에서 눈치받이가 되어있었다. 기내에 들어서기가 무서웠던 매일매일, 오직 청소노동자들만이 나를 향해 고개 숙여 정중한 인사를 해 먼저 해주었고, 꼬박꼬박 사무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 주었다.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건강 드링크나 캔들을 내 손에 건네주기도 했다. 청소완료 확인을 받는 대장의 종이 한쪽을 찢어서 적어주었던 응원의 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전 직원이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수고하세요. E.K 맨파워”


그동안 내가 여유 없다는 핑계로 나보다 힘든 이웃의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쪽지 한 장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왜 내가 눈을 감아야 하는지 수많은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나서서 함께하면 해결될 문제를, 내 문제가 아니라고 눈 감고 있는 동안 그것이 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도 수많은 을들이 가혹한 바이러스 속 노동 현장에서 매일매일 생존 투쟁을 위해 나서고 있다. 내가 눈감은 오늘의 불의가 언제가 나의 현실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라는 이유로 1조 7천억원을 아시아나 항공에 지원했다. 하지만 정작, 아시아나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위협받은 케이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앉게 됐다. 우리 공동체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나 역시 을들을 위한 대변인으로, 전례 없는 재앙 속에 내몰린 약자의 삶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모두가 연대한다면 케이오 노동자들이 겪은 백일이라는 시간이, 새로운 연속성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시작의 의미라 믿는다.

 

 


박창진
정의당 갑질근절특별위원장
대한항공 전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