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입법예고 중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에 따르면 특고에 대해서는 당연 적용 대상으로 하되 적용되는 직종에 대해서는 시행령으로 위임하는 형태입니다. 직종을 정하는 거에 따라서 적용범위가 늘어나는 형태인데, 지금 계획상으로는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직종에 대해서는 내년에 1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리운전기사 같은 경우에는 지금 현재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고이기 때문에 (고용보험에) 1차적으로 적용대상이 되는 특고에 해당합니다.”
지난 7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략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대리운전기사들에게 내년부터 고용보험이 적용된다는 얘기다. 오~ 대박! 저 얘기 실화일까?
정부 입법예고안, 대리기사와 라이더 몇 명이나 적용될까?
하지만 문재인 정부 얘기는 항상 거듭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도 말로 장난치는 일이 많다보니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우선 대리기사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는 장관 얘기부터 의심스럽다. 취객에게 얻어맞아도 하소연 할 곳 없다는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는데 산재보험이 적용된다고?
[사진1]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현황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20만 대리기사 중 산재보험 적용자 꼴랑 3명!
그 비밀이 폭로되기까진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고용노동부에 요청해서 받은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법 적용 현황 자료(위 표)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상 특수고용 특례가 적용되는 9개 업종 전체 등록 종사자 수가 49만 명인데 산재보험 적용 규모는 겨우 8만 명(16.2%)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수치조차 정확하지 않다. 맨 오른쪽의 대리운전기사 관련 수치를 보시라. 오~ 이 숫자 실제 상황인가? 20만 명에 달하는 대리운전기사 중 등록 종사자 규모가 고작 13명뿐이라니! 그 중에서도 적용제외 신청자를 빼면 실제 산재보험 적용되는 기사 수는 꼴랑 3명이다. 20만 명 중에 3명이라면 산재보험 적용률은 0.0015%!
바늘구멍 통과한 낙타 0.0015%
아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건 대리운전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에게 산재보험 특례를 적용할 때 요구하는 ‘전속성’ 문제 때문이다. 다시말해 ‘주로 하나의 사업주’를 위해 일하는 경우, 특정 사업주에게 전속되어 있는 경우에만 산재보험 특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건 대리운전기사와 퀵서비스 기사의 현실과 실태를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 기사는 특정 업체 한 곳에서만 콜을 받을 경우 생계비는커녕 용돈이나 차비도 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여러 개 업체의 콜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 버린 것이다.
특히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배달 앱을 통해 일하는 라이더(배달 기사)들은 퀵서비스 기사에 해당해 산재보험 특례 대상이 되지만, 바로 이놈의 ‘전속성’ 조항 때문에 대부분의 라이더(배달 기사)들이 산재보험 적용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이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사업주를 통해서 신고 받는 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특수고용의 경우에도 사용 사업주에 해당하는 계약의 상대방이 있는 경우를 상정해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7월 29일 이재갑 장관의 위 발언이야말로 정부 입법예고안의 맹점을 잘 드러내준다. ‘계약의 상대방이 있는 경우’라는 얘기를 통해 전속성을 암시하고 있다. 대리운전이나 배달 라이더처럼 여러 개의 업체(어플)로부터 콜을 받는 경우 상대방이 여럿이 되고, 노동부는 고용이 아니라 행정편의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나인 경우, 즉 전속성을 우선 따지게 된다.
이재갑 장관은 입각 직전까지 고용보험 위원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 관련 논의의 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 논의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장관으로 발탁되었기에 현재 고용보험 쟁점에 대해서는 어떤 실무진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에 이런 현실을 모른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리운전기사는 산재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고용보험 적용도 가장 먼저 이뤄질 거라고 말이다. 결국 무슨 얘기일까? 전속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고용보험 적용 역시 20만 대리기사들 중 3~4명에게만 이뤄진다는 얘기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전국민 고용보험’이란 말인가.
전속성 말고도 허들 2~3개 더 넘어야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리운전 기사를 포함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전속성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넘고서도 2~3개의 허들을 더 넘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입증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수고용의 경우에도 노무제공계약이란 것을 설정하고 노무제공계약에 대해서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형태로 저희가 법안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 노무제공계약에 대해서는 계약의 법률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서면이든 구두이든, 아마 등록의 경우에도 아마 그런 계약으로 볼 수 있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면계약이 아니라 구두계약도 유효하다? 이재갑 장관에게 낡아빠진 구두 한 켤레라도 선물해 줘야겠다. 어디서 약을 팔아도 이런 엉터리 약을 팔고 있나. 국회의원들 질의에 소나기 피할 심정으로 답변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노동연구원이 실시한 특수고용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서로 계약을 체결한다고 답변한 이가 전체의 63%에 불과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등 다른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문서로 계약을 체결한다고 답변한 이들의 숫자가 훨씬 줄어든다.
앞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공개한 표를 보더라도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전속성을 갖추고 ‘등록’한 노동자 숫자가 20만 명 중 13명에 불과했다. 구두계약도 아니고 서면계약도 아닌, 등록의 경우가 13만 명이 아니라 고작 13명 말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인가, 특수고용 배제방안인가
“표를 보시면 에이스로지스틱이라고 하는 주식회사에서 적용이 되는데 총 보험료가 8만원이에요. 그럼 사업주가 4만원, 본인이 4만원을 내야 하는데 노동자한테 공문을 보내서 우리는 8만원 다 못 내겠다, 네가 가입을 하려고 하면 사업주용까지 8만원을 다 내고 가입해라 이런 공문을 보냈어요. 사업주가 그렇게 나오면 가입이 쉽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이 허들도 만만치 않다. 이날 국회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에이스로지스틱이 보낸 공문 한 장을 공개했다. 이건 고용보험이 아니라 산재보험 얘기인데, 특수고용의 경우 산재보험에서 벌어질 일들이 고용보험 가입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중요한 사례들이다. 간단히 말해 고용보험 가입하려면 사업주 부담금 50%도 노동자에게 전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재갑 장관의 답변 중에 “현행 고용보험법은 사업주를 통해서 신고 받는 제도”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사실 이 지점이야말로 전국민 고용보험을 가로막는 기존 제도의 한계이다. 이 틀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전국민 고용보험은 ‘꿈’에 불과하다. 사업주에게 고용보험 신고와 보험료 징수를 의존하는 한, 사업주 협조 없이는 고용보험 가입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사업주들의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공개하는 것도 꺼리는데,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에 필요한 각종 업무에 사업주들이 협조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①전속성 허들과 ②노무제공계약 체결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텐데, 마지막 허들인 ③사업주 협조를 통과하는 경우는 천연기념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사진2] 고용보험 가입의 '허들' ⓒ오민규
확 뜯어고치지 않고서 어찌 전국민 고용보험을?
“노무제공계약을 상정하기 어려운 특고 분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득확인체계를 정비하고 나서 소득 기반 형태로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다음 단계에 적용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약 체결이라는 높은 허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재갑 장관은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원대한 슬로건을 집행하는 기관장의 포부가 이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하루아침에 전국민 고용보험이 이뤄질 거라 기대하진 않지만, 특수고용 문제 하나 전향적으로 풀지 못하면서 뭘 할 수 있을까.
확 뜯어고쳐야 할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사업주에게 의존하지 않는 고용보험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소득 기반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보험료를 산정하는 작업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재갑 장관은 지금 할 일이 아니라 다음 단계에 할 일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다음 단계? “생일날 잘 먹자”는 약속보다도 믿음이 안 간다.
마지막으로 이재갑 장관에게 물어보자. 그래, 이번 단계에서 정부가 예고한 입법안에 따르면 20만 대리운전기사들 중 도대체 몇 명이나 고용보험 적용받을 수 있는가? 그렇게 계산한 근거는 무엇인가? 확신하건대 문재인 정부와 이재갑 장관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할 것이다.
글
오민규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