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월)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
3일 동안 황금 같은 연휴를 보내고 출근했다. 내일은 또 어린이날이다. 지금처럼 이런 휴일을 만끽한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역시 일하는 사람들이 연휴를 맞이하는 것은 행복이다. 시작한 지 벌써 3주째, 이제 조금씩 현장에 적응하고 있다. 전도 사고의 원인과 감전과 화재의 원인을 파악한다. 추락 방지 조처를 한다. 크레인 등 건설 장비를 점검한다. 유도자 배치와 개인 보호구 착용의 중요성 등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이천 사고 이후 분노한 민심 탓인지 그 어느 때 보다 정치권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들린다. 고용노동부는 이례적으로 법원에 이천 사고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건설 재해의 65.8%가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를 볼 때 현장을 책임지는 소장이나 관리자의 안전의식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노동안전지킴이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노동안전지킴이의 활동이 산재 사고를 줄이는 실질적인 성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안전지킴이가 강제할 수 있는 현장의 권한이 필요하다. 현장을 확인하고 일깨우는 노동안전지킴이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 지사는 노동경찰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안전보건지킴이의 역할로서는 한계가 명백하니 보다 강력한 현장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 그 취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동안전지킴이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산재사고 감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1] 안전모를 쓰지 않은 작업자 ⓒ최종진
[사진2] 부식된 섬유 로프 이런 것을 사용하면 위험하다. 현장에서 즉시 교체시키다. ⓒ최종진
5.11(월) 경비 노동자 추모
남양주 진접 지역을 찾았다. 근린생활시설을 건축하는 현장은 차도 바로 옆이다. 도로 점유 허가 기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자재의 적치뿐만 아니라 도로 일부분이 마치 작업장인 양 일을 하고 있어서 차량 통행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나무를 절단하는 동력톱이 방호장치도 없이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덮개를 하고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위험물이 방치된 건 안전이 방치된 것이다.
어제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 노동자가 주민의 갑질과 폭행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나 역시 심한 분노를 느낀다. 2014년 압구정의 아파트에서 분신한 고 이만수 경비 노동자가 생각난다.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 후보로서 현장을 찾아간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해 7월 3일 동안 ‘신임경비노동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퇴직 후 나도 경비노동자가 될 수 있으니까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때 함께 교육을 받은 분이 지금 아파트에서 경비 노동을 하고 있다. 며칠 전 그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파트 일을 하고 있는데 정말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만나자는 이야기다. 동의한다.
아파트 노동자는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인정되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배제당하고 있다. 합법적인 차별과 배제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감단법의 독소조항을 폐기해야 한다. 곧 만나자는 답변을 한 지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최근 어떤 분이 책을 썼는데 제목이 ‘임계장 이야기’라고 한다. 임계장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수많은 노동자가 퇴직 후 경험하는 현실을 담은 생생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퇴직 후 만만치 않은 현실을 실감했다. 철도 안전관리의 의지를 다지며 지하철 청소노동자가 되려고 지원했지만 민주노총에서 활동한 경력 때문에 입사가 좌절되기도 했다.
고인이 된 경비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갑질을 한 가해자를 아주 중죄로 처벌해야 한다.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분노를 느낀다.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나이 드는 것도 속상한데 경비노동자라고 머슴 취급하는 그런 인간들에게 큰 경종을 울려야 한다.
5.14(목) 거절당한 현장점검
남양주 평내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 크레인이 여러 기(대) 설치되어 있다. 경비 노동자에게 현장을 찾아온 취지를 말하고 기다렸다. 한참 후에 나온 차장이란 사람이 “경기도 노동안전 지킴이가 무엇이냐.”고 하길래 협조 공문을 전달하고 현장점검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협조는 의무가 아니다.” 하면서 끝내 현장에 발을 딛지 못하게 했다. “사업주는 정부의 산업재해 예방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항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안전 점검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으로 부끄럽고 속이 상했다. 노동권익과 담당 주무관과 전화 통화도 했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규모도 큰 아파트 공사이기 때문에 전담 안전관리자가 최소한 한 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뭐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끝내 협조를 거부하는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패배자의 심정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글│사진
최종진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