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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KO 노동자 이야기 – 비정규직 차별 세상을 KO시키는 그날까지 | 사람

  • 김우
  • 2020-07-14 18:03
  • 2,981회

인천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서 아시아나 하청노동자 해고가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내렸다. 아시아나 KO 노동자들과 그 곁을 지키는 연대자들은 지노위 앞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투쟁을 하며 그 상식적인 판단을 기다렸다. 


간절하고 절박한 기대와 순간순간 찾아드는 불안감으로 애가 타는 시간 사이에 김계월(58세) 부지부장을 만났다. 어제 정말 좋은 꿈을 꿨다고 해서 결과가 나오면 어떤 꿈인지 듣기로 했다.

 

 

권리를 찾는 말


아시아나 KO에서 하는 일은 기내 청소와 쓰레기 처리, 수하물 분류와 운반 등이다. KO를 비롯해 KF, KA, KR 등 K시리즈는 아시아나 하청의 하청업체인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주식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재단 이사장은 바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다. 아시아나 하청의 하청의 하청업체로 A시리즈가 또 있다고 한다. 김계월은 우리도 이렇게 열악한 처우인데 그 밑의 하청은 또 어떻겠냐며 걱정해준다.

 

 

[사진1]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투쟁승리를 위한 12시간 실천행동 문화제에서 발언하는 김계월 동지 ⓒ김우

 

김계월의 회사 생활은 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 회사에는 찍히고, 동료에겐 신임을 얻는 시간이었다. 그 바른 소리라고 해봐야 시간 되면 밥을 달라는 요구였고, 깜깜한 데서 일하는 건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라는 항의였고, 퇴근 시간을 지켜달라는 요구였고, 미리 연차를 낸 것을 결근 처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항변이었다.


도시락을 데워 먹도록 고장 난 전자레인지를 고쳐달라는 요구 하나, 그런 ‘권리를 찾는 말’ 하나하나는 생계를 걱정하고 해고의 두려움에 떨며 침묵하는 동료에게 힘을 주었다. 

 

김계월. 달에서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토끼처럼 순하게만 생긴 사람이지만 접할수록 내공이 느껴졌다. 20대 때 모토로라에서 일할 때부터 노조 활동을 했다. 당시에도 월간지 ‘노동자’ 인터뷰를 했다며 이미 겪은 일을 신기하게도 반복해 겪고 있는 느낌이란다. 노조 활동도 투쟁도 경찰 조사도 다시 즐기고 견디며 이겨내고 있다.

 

“매일 쭈그려 앉아 청소하며 무릎이 아작 났어요.”


2014년 6월에 인천 공항으로 와서 ‘성실 근무’한 대가로 9개월 만에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 쉬면서 치료받을 수 없으니 치료 기간이 길었다. 1년 동안은 회사에서 돈 벌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집에서 잠자고. 이것밖에 없었다. 우울한 일상이었지만 ‘먹고는 살아야 했고, 빚은 갚아야 하니’ 별수 없었다. 실비보험에 기대 치료비를 감당했다.


산재에 해당할 통증은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어렵던 다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손가락도 굽어 잘 펴지지 않는다. 쿨파스, 핫파스, 동전 파스, … 어깨에 붙이고 바르는 파스도 종류별로 구비하고 산다. 

 

송년회에서 다리가 부러져 4주 깁스를 하고 병가 후 돌아오니 노조가 생겨 있었다. 너무 좋아서 가입서를 얼른 달라고 해서 썼다. 중간에 일도 있었다. 모두 합의가 됐다는 거짓말에 한국노총으로 바꾼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도 해결을 안 해주고 갈라치기와 찍어대기를 해서 ‘우리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민주노총으로 이관을 요청했다. 2015년 12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으로 선출되어 올해가 5년 차다.

 

 

[사진2] 작게 웃는 김계월 동지 ⓒ김계월

 

 

김계월이 돌아가야 하는 이유


3월. 회사는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렵다며 '무기한 무급휴직을 할래, 희망퇴직을 할래?' 선택을 강요했다. 5월. 강요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정리해고를 했다. 해고 회피의 노력이 없었다. 특별고용유지지원 대상이니 지원금을 받아 고용을 유지하면 되는데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핑계였고 빌미였을 뿐이었다. 마음대로 해고하고픈 뜻을 마음껏 발현시켰을 뿐이었다.

 

김계월에겐 직장 생활하는 딸 하나가 있다. 전적으로 엄마의 생각과 활동을 지지하는 딸이다. 하지만 63일의 농성 동안 딸도 힘들었다. ‘나에게도 때론 엄마가 필요하다’는 이유 있는 투정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칼국수도 같이 먹고, 예전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반박하고픈 마음 누르며 투정을 그냥 그대로 들어주었다. 엄마니까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엉엉 울었다. 사람이니까 그랬다.

 

해고 노동자의 삶이 내 것이 되고는 온전히 거리의 삶을 살고 있다. 오전 8시 농성장으로 출근. 피케팅을 하고, 회의하고, 다시 피케팅을 하고, 여기저기 지원과 연대를 다니고, 투쟁승리문화제를 마치면 오후 8시. 꼬박 12시간의 행군이다. 하루의 마무리는 또 하나의 가족인 동지들과 뒤풀이다 보니, ‘집에선 씻고 자는 게 끝’이다 보니 가족의 불만도 적지 않을 터다. 그래도 성향 비슷한 남편이 이해하며 굳이 반대하지 않으니 그게 또 큰 힘이다.

 

 

[사진3] 인천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판정으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노무사로 함께한 남현영 동지가 활짝 웃는 모습도 보인다. ⓒ김우

 

김계월이 이 싸움에서 꼭 이겨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정리해고라는 불이익을 받으면 싸워서 이겨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연대와 승리로 쌓은 용기로 함께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도 동료에게도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복직으로 보여주고 싶다.


‘드디어 우리가 살아 돌아왔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 이기고 돌아왔다. 정의는 살아있다.’


복직의 날에 김계월이 인천 공항에 내걸고 싶은 펼침막의 문구다. 

 

두려운 건 없는지 물었다.


“없지. 노조를 하니까. 노동조합이 나를 보호해주는 기구니까. 민주노조는 약자를 위한 버팀목이니까.”


그렇게 두려움 없이 가겠단다. 위원장이 조합원을 버리는 어용노조, 노동자를 대변하지도 아픔을 보듬지도 보호하지도 않는 어용노조, 사주와 짝짜꿍이 돼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의문을 써주는 어용노조와 다른 민주노조 깃발 아래 가겠단다. 노예 취급받지 않고 싸워서 사람 대접받는 상식의 세상을 일구겠단다.

 

지노위의 판정이 나고 김계월의 어젯밤 꿈 이야기를 들었다. 금반지 꿈이었다. 손가락에 2개, 2개, 1개 총 5개의 금가락지를 낀 꿈이었다. 그이는 복권을 사서 행운의 꿈을 분산시키는 대신 오늘의 결정만을 조마조마 기다렸다. 복권 당첨보다 귀한 게 오늘 지노위의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통해 세상에 눈뜨고 배우고 얻어가는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나눔이라고 한다. 속옷이 여러 차례 땀으로 젖었다 말랐다 하는 현장에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소리로 바람이 불게 하고. 손전등을 켜고 일하는 현장에 불을 켜달라는 소리로 현장을 밝히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바른 소리 하는 김계월은 아시아나 KO 노동 현장에 불을 가져온 프로메테우스로 표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노위 결정으로 바로 복직시킬 아시아나가 아니지만, 이제 2라운드일 뿐이지만 두려움 없이 걸어가겠다는 그이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문화제에서 누군가 발언했던 것처럼 비정규직 차별세상을 'KO'시키는 날을 함께 기원한다.

 

 

글│사진

김우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