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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② 부실한 현장이 안전지킴이의 책임감을 무겁게 한다 | 칼럼

  • 최종진
  • 2020-07-14 14:35
  • 2,336회

4.15(수) 임시 공휴일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투표하지 않으려는 애초의 생각을 버리고 투표하기로 했다. 집 바로 뒤 초등학교가 투표 장소였다. 아내와 아들 셋이서 같이 투표에 참여했다. 임시 공휴일은 안전지킴이도 쉬는 날이다.

 

개표를 보니 출마한 사람 중에 지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방송을 보고서야 “어, 저도 출마했네.”하고 처음 알았다. 불편한 생각도 들었다. 집권 세력의 압도적인 결과를 보면서 부아가 치민다. 한편 정의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된 모 씨도 마음에 걸린다. 잊어버리자고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맥주나 마시자.

 


4.16(목)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 


양주시 남면과 광적 두 곳을 방문했다. 공동주택 현장의 외벽에 돌판을 부치는 작업이다. 현장은 뿌연 시멘트 등 돌가루로 공기가 매우 탁하다. 계단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 난간대가 없다. 왜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나중에 할 거다. 작업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변명을 한다. 추락으로 사람이 사망하면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아느냐고 하니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산안법 위반입니다. 추락 방지 조치를 하지 않으면 다시 오고, 그래도 되어있지 않으면 행정조치 합니다.”라고 했다. 현장은 승강기 개구부, 계단, 창틀 단부, 비계발판, 벽면과 비계 사이 등 추락위험이 있는 곳이 상당히 많았다.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이건 위반을 넘어서는 문제다. 생명과 안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건 범죄행위다. 소규모 건설 현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산안법 위반으로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만약 사망사고가 나면 7년 이하 징역, 벌금 1억 원입니다.”라고 말했다. 더 강하게 하려다가 참았다. 현장 소장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사진1] 2019년 미수습자 가족들과 참사해역을 가다 ⓒ최종진

 

오늘은 4.16 대학살 6년이 되는 날이다. 세월호 참사를 직면하고 분노하면서 투쟁한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2014년 광화문에서 단식과 집회, 8월 한 달 동안 삼천 배를 올리며 절실하게 기도한 일들, 그 분노가 민주노총 선거와 연결되던 일 등을 잊지 않고 있다. 잊지 말자고 약속한 실천들… 더구나 4.16연대 운영위원으로 오늘 4.16 연대활동에 함께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미안하고 아쉽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고 수없이 외쳤다. 비록 미약하지만 난 지금 안전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4.17(금) 비 오는 날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은 건설 현장 특성상 일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오전 내내 비가 온다. 타지역에서도 비 때문에 공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후에 옥정에 가 보았다. 역시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건설 내부 공사 같은 일은 가능해도 일반적으로 거푸집 조립이나 철골 작업 같은 일은 하기 어렵다. 대부분 건설 현장은 07시에 일을 시작하는 특성상 아침에 비가 오면 출근하지 못하는 현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후에도 날씨는 개지 않았다. 결국 사무실로 돌아와서 학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매일 09시부터 18시까지 활동하는데 오늘은 날씨 덕(?)에 하루를 날로 먹는 것 같다.

 


4.24(금) 지킴이들의 첫 미팅 


매월 하루는 만나서 일에 대한 교감과 정보를 교환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오늘 첫 모임이다. 소감을 나누고 함께 궁금한 것도 서로 나눈다. 느낌상 타 지역의 활동가 (난 이렇게 표현하지만 공식 명칭은 팀장으로 부르기로 합의한 바 있다)들이 우리보다 다 잘하는 것 같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 잘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다. 


현장 경력의 소유 면에서도 그렇고 정리하는 사무역량도 그런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좀 서툴지만 그래도 우선 두 사람 중 내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2인 1조가 되어 일한다. 우리는 교통편인 자동차를 1주씩 교대로 운전하고, 점심은 격일로 담당하기로 합의했다. 업무에 대해 분담은 하지 않고 있다. 기념품 배부나 현장에서 내용을 작성하고, 사무실에서 일일 활동 정리하는 것을 거의 내가 주도하고 있다. 우선은 내가 좀 더 하자는 생각이니 내가 정리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5개 권역에 10명의 사람이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간에 경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임을 통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다. 각자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전문가들도 적지 않게 있다. 배울 점은 배워야지.

 


4.29(수) 이천 대참사


이천에서 물류창고 대 폭발사고로 무려 38명이 죽는 엄청난 대재앙이 발생했다. 충격과 안타까움이 그 어느 때 보다 큰 것은 내가 지금 안전지킴이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천에도 안전지킴이가 있었다면?’ 하고 생각을 해 본다. 사고원인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12년 전에도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사고 전에 작업을 중지시켰으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속상하다. 황망하게 죽은 저 노동자들도 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사실상 건설자본의 탐욕에 의해 타살당한 사람들이다. 이 죽음들을 누가 책임질 건가? 어떤 생명도 고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진2] 작업중단 했다가 다시 재개하는 현장의 모습. 위험할 때 중지하고 보완해 작업하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최종진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와 시공사인 건우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정치인들은 눈도장 찍으려고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동종의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금방 잊히기 때문이다.


무리한 공기 단축. 동시 작업 등이 사고 원인이라는 기사가 뜬다. 철저하게 조사해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엄중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부지런한 동료 안전지킴이 한 분이 현장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참 훌륭한 모습이다. 부실한 현장과 참혹한 현실이 안전 지킴이 필요성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글│사진

최종진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