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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피폐했던 삶, 현재를 예리하게 투영" | 사람

  • 이명옥
  • 2020-06-25 19:39
  • 2,113회

[리뷰] '아트맥'의 창단 공연 작품 <살아내기> 무대에 올라

 

 

봄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 겨울내내 비지땀을 흘리며 강행군을 했던 이들에게 코로나19의 여파는 심각하다. 열심히 준비한 극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대에 극을 올렸다 해도 거리두기로 객석의 절반 이상을 비워놓아야 하고 그나마 관객은 반도 안차기 일쑤다. 

 

 

▲ 만원 사례금을 받은 배우 이명희 대표가 배우들에게 만원 사례금을 투척했다. ⓒ 극단 아트맥

 

그런데 이례적으로 극단 '아트맥'의 창단 공연 작품으로 올린 한국 근대문학 재발견 프로젝트 <살아내기>(고건령 연출)가 연일 만석사례를 이루고 있다. 배우들의 사기는 충전했고, 극단 대표는 만원사례금을 투척했다.

 

이명희 극단 아트맥 대표는 "일제 강점기 외세의 폭압과 민족적 고통 속에서도 모진 삶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피폐하고 참담한 생존 현장을 군더더기 없이 담담하게 그려냈다"며 "이 작품들이 왜 2020년 현재를 예리하게 투영하고 있는지 작품을 접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2019년 11월 20일 창단한 극단 '아트맥'은 20대부터 60대에의 다양한 연령대 연극인들이 세대를 아우르는 폭 넓고 깊이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으로 창단했다.

 

 

▲ 살아내기 극단 '아트맥 ' 창단 공연작 ⓒ 극단 아트맥

 

<살아내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해 온 우리 민초들 삶을 날 것 그대로의 호흡으로 무대에서 되살려내고 있다.


리얼리즘 단편 문학의 정수로 분류되는 <봄봄>, 김동인의 <감자>,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에는 몸뚱이 하나로 버티며 살아내기 혹은 살아남기 위해 온몸으로 몸부림치는 우리 시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나타난다. 


세 작품은 농촌 총각과 처녀, 생존을 위해 매춘을 하고 끝내 죽음을 당해야 했던 가난한 여성, 인력거를 끌며 하루벌이로 입에 풀칠을 해야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으로 대표된다. 이 세 단만극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 본연의 존재 가치를 되짚어 성찰하게 만든다.

 

 

▲ 점순역의 신인 배우 윤슬기 윤슬기 배우가 봉투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극단 아트맥

 

#봄봄

딸만 둔 마름 최부자는 딸의 성례를 미끼로 건장하고 소박한 총각 만수를 데릴사위라며 소처럼 부려먹는다. 하지만 정작 성례를 시켜 줄 마음은 없다. 마름 최씨는 매해 딸 점순이의 키가 작다는 이유로 만수를 머슴으로 부리며 4년 동안 단 한 푼의 새경도 주지 않는다. 여러 명을 머슴으로 부리며 재산을 불린 최부자, 답답한 마음에 성례를 시켜 달라고 정면으로 요구하라고 알려주는 점순. 


#감자

농가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예의와 도를 보고 배우며 자란 복녀는 돈 몇 푼에 노름꾼에게 팔려 시집을 간다. 게으른 노름꾼 남편은 노름에 빠져 비렁뱅이들이 모여사는 칠성문 밖으로 밀려난 채 복녀의 날품팔이로 겨우 굶주림을 면한다. 노름돈을 얻어내기 위해 복녀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남편, 어느 날 왕서방네 밭에서 감자를 훔치다 들켜 매음을 한 후 공공연히 왕서방과 매음을 이어간다. 하지만 왕서방이 다른 처녀와 혼인을 하려는 사실을 알게 된 복녀는 질투심으로 낫을 들고 혼례 자리에 뛰어드는데..... 왕서방에게 살해 당한 복녀의 시신을 앞에 두고 남편과 왕서방은 흥정을 벌이고 남편은 몇 푼의 돈을 받고 복녀의 죽음을 방조한다.
 

#운수좋은날

인력거꾼 김첨지는 근 열흘간 동전 한 푼 벌지 못해 조밥을 급히 먹다 체해 앓아 누운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병색 짙은 아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온 김첨지는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날씨 탓에 대학생, 요리집 기생 등을 태워 의외로 큰 돈을 번다. 김첨지는 친구 치수와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돌아오는 길에 앓는 아내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돌아오지만 아내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 살아내기 출연 배우들 공연을 끝내고 관객과 인증샷을 찍는 배우들 ⓒ 극단 아트맥

 

자신의 노동의 권리마저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채 자본가들의 머슴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현대의 젊은 청춘들은 무엇에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힌 채 '살아내기'를 하고 있는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야 했던 복녀처럼 살아내기 위해 영혼을 팔아야 하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복녀에게 누가 돌팔매질을 할 수 있는가. 아픈 아내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죽음의 질주를 하는 택배 기사와 라이더들은 김첨지의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 

 

웃으며 극을 관람했지만 마음 한 켠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담고 극장 문을 나서야 했다. 웃음과 해학으로 버무린 질펀한 한 판의 굿판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반추하고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내기' 혹은  '살아남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 극의 관람을 권한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이명옥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