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3일, 정부가 ‘납세자의 날’을 축하하며 성실 납세를 독려할 때, 한쪽에서는 원치 않는 세금을 떼이며 ‘성실납세자’가 되어버린 이들이 모인다. 바로 사업소득세 3.3%가 원천징수되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가짜 3.3’ 노동자들이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은 번듯한 강당을 벗어나 서울고용노동청 앞 차가운 길 위에서 열렸다. 투쟁 구호가 울려 퍼지는 정부기관 앞에 무대를 펼친 이유는 명확하다.
올해 ‘최악의 기업’으로 선정된 ㈜아산제화의 사례는 현행 노동행정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30년 넘게 재직한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퇴직금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노동청의 시정명령마저 거부하며 이들을 기약 없는 소송의 늪으로 내몰았다. 회사 대표가 “제화업계는 다 똑같이 4대 보험이 없고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는다”라며 둘러댄 변명에서 사건을 풀어나갈 단초가 드러난다. 전수조사를 실시해 업계 전반에 만연한 위장고용을 들춰내고, 불법적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할 국가의 책무를 일깨운다.
결국 오만한 사측에 맞서는 것은 당사자들의 몫이었다. 올해의 모범판정 원고인 부산아이파크 유소년팀 지도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정명령을 거부한 사측이 유도한 소송전에서 기어이 사법적 단죄를 끌어내며 스스로 노동자성을 증명해내고 있다.
‘권리찾기응원상’ 수상자들은 법률구제에 나선 3.3 노동자들이 곧바로 부딪히는 상황을 생생히 증언한다. 텔레마케터 노동자들이 직장내 갑질로 진정을 제기했으나, 해당 지청은 충분한 조사 없이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며 종결했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함께 투쟁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데 무려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에게는 노동부 자체가 커다란 장벽이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마루를 시공하는 노동자들의 사례는 노동부가 밑바닥 노동을 대하는 표본이다. 법률구제에 나서면 일자리를 빼앗겠다는 협박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생계 위험을 무릅쓰고 절박한 기대로 노동청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노동청은 근로관계의 실질을 따지라는 판례는 고사하고, “평당 실적으로 급여를 받으니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답변으로 이들을 문전박대한다. 사측조차 시공자들을 노동자로 대우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는데도 말이다.
특별상과 사회연대활동상을 수상한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유족과 엔딩크레딧은 방송산업 3.3 노동자들이 어떤 장벽에 둘러싸여 있는지 치열한 투쟁으로 확인해주었다. 노동부는 고인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이 확인되었으나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니 사측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노동부의 안일한 행태를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방송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 현안으로 부각됐다. 재발방지 대책에서 법개정 모색에 이르기까지 희망의 빛을 비춘 것은 당사자들의 특별한 투쟁과 사회적 연대의 힘이었다.
결의마당 무대에 오른 대리운전과 마루시공 노동자는 노동부의 존재 이유를 따져 물었다. 노동자의 이름과 권리를 함부로 빼앗을 수 있는 가짜 3.3 천국을 누가 지탱하고 있는가. 비참한 노동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이들이 다다른 장벽은 결국 노동부다. 정권이 교체돼도 노동자들의 끝장투쟁 대상은 왜 바뀌지 않는지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 순서로 당사자 조직과 사회단체들의 논의로 모아낸 ‘근로기준법과 노동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 권리찾기’를 올해의 공동활동으로 제안했다. 근기법 외에도 최저임금, 산업안전, 산재신청 등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사회적 투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취지다. 정부가 1호 노동법안으로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시도에 맞대응해 다양한 직종의 3.3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집단적 법률구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우리의 권리를 함께 찾아나가는 가짜 3.3 노동자들의 반격이다.
이렇게 노동청 앞에서 반격의 5막을 열었다. 이제 가짜 3.3 폐지는 행사장의 메아리가 아니다. 겹겹이 쌓인 장벽을 허무는 힘은 또 다른 우리들을 연결하는 사회적 연대다. 노동청을 휘감은 외침이 수백만 ‘3.3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울림으로 전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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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5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26.3.3, 서울고용노동청 앞)
글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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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노동자 권리찾기 상담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