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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폭염과 폭우, 위험한 노동에서 벗어날 권리 <매일노동뉴스 연재> | 칼럼

  • 정진우
  • 2025-08-05 09:21
  • 287회

 

쿠팡 카플렉스, 교통사고 조사원, 마루시공 노동자의 사례를 자주 소개한다. 노동자의 이름과 권리를 빼앗긴 3.3(사업소득세 3.3%) 노동자가 겪는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해왔다. 최악의 폭우에 이어 폭염 경보가 계속 울리는 오늘도 이들은 위험한 노동을 멈추지 못하는 당사자가 된다.

 

혹독한 기상 환경으로 피해가 속출하자 위험한 환경에 방치된 노동자를 조명하는 언론보도가 간혹 나온다.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르지만, 산업안전 조치를 담은 법령이 없는 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고열작업에 따른 건강장해 예방 조치’ ‘호우 등 악천후 시 작업 제한’ 등의 조항을 통해 구체적인 위험 상황에서의 의무도 명시돼 있다.

 

사업주들이 이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려는 핑계도 있다. 비용 절감의 이익을 따져 노동자에게 닥칠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 것인지 계산하는 경영술이 노동경제학의 합리적 적용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공익적 가치로 산업안전을 확보하려면 국가의 개입이 요구된다. 피해가 늘수록 강력한 사회적 통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이런 관심이 사각지대를 비추는 것 같지만, 차별지대 노동자들이 왜 위험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정확히 짚어내진 못한다.

 

2020년 8월, 집중 호우로 수해가 발생한 경북의 소하천 인근에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카플렉스 노동자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인근 주민들이 안전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고인은 배송 업무를 강행해야 했다. 위험을 인지하고도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중단시키지 않은 사측에 대한 비판이 드셌다. 사측은 배송 업무를 담당하는 일부와 개인사업자 형식의 계약을 체결해왔는데, 이러한 위장 고용이 산업안전의 책임을 회피하는 무기가 됐다. 할당받은 물량을 정해진 시간 내 수행해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것이 된다. 사용자 책임이 사라진 장소에서 노동자의 위험은 극대화된다.

 

교통사고 조사원이 일하는 공간은 평소에도 가장 위험한 일터라 할 수 있다. 2차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공간인데다 구호 조치까지 병행해야 하는 긴박한 장소다. 폭우, 폭설, 심야에 출동하면 시야 확보가 어렵다. ‘건당 수당’과 출동 시 보상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위험 작업을 거부하는 것은 생계에 대한 포기나 다름없다. 팔이 부러져도 붕대 감고 출근해 더 불안하게 일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악천후에 실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건설현장의 마루시공 노동자들은 온갖 위해물질과 분진이 난무하는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일한다. 기계 사용과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고열이 외부로 배출되지 않으니 숨쉬기 어려운 찜통 이상이다. 폭염 기간에 여기서 작업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살인적 노동이다. 보호장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불법하도급 업체와 준공 일시만 맞추면 되는 건설사에게 산업안전 규정은 의미 없는 공문구다. 시중노임단가로 일당을 계산하지 않고, 시공 면적으로 보수를 받는 노동자가 이 위험천만한 작업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 불법을 제보했다고 다음 현장에서 제외되면 생계가 끊기는데 말이다.

 

칠십이 넘는 초장시간 노동을 사용해서라도 물량과 공사 기간을 맞추려면 근로기준법이 비껴가게 하면 된다. 산업안전의 최저 수준을 지키지 않는 것도 덩달아 가능하다. 노동자가 아니게 위장하면, 알아서 초과 근로하며 위험한 업무도 마다하지 못하는 이들을 때와 장소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는 산업안전 대책 없는 위험한 노동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 당연한 이 문장에서 주어를 정확하게 따져보자. 노동자가 아니게 위장된 이들은 주어에 포함되는가. 작업 중지와 휴식 보장을 내세운 산업안전 법령의 개정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쿠팡 카플렉스, 교통사고 조사원, 마루시공 노동자를 포함해 오늘도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답해보라. 이들에게는 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없는가.

 

[사진] 마루시공 현장(인천 A아파트)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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