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통령이든 국회든 별로 기대되지 않아요. 사건 터지고 언론이 관심 가질 때마다 이런저런 약속도 많이 받아 기대도 해봤지만, 불법이 난무하는 마루판은 갈수록 최악입니다. 어렵게 산재도 인정받고, 노동자 인정도 받기 시작했는데, 문제를 시정해 달라고 나섰던 이들이 오히려 시공 현장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3년 만에 대통령이 바뀐 날,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새벽부터 마루를 시공하던 최우영 실내건설노조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투표일에 쉬지 못한 채 늦게까지 작업하고, 다음날 다시 망치질하다 손목시계에 속보로 뜬 개표 결과를 보고 잠시 멈추었다고 한다. 숨쉬기 어려운 작업장에서 가쁜 숨을 참아 가며 마루판 노동현장에 불어닥치는 비참한 뉴스를 쏟아낸다.
“도대체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있던 화장실도 철거되니 온갖 오물이 뒤엉킨 인분아파트가 지어진다고 고발했습니다. 4대 보험 신고와 사업소득세 처리를 섞어 사용하는 수법으로 보름은 사업자, 보름은 노동자로 만들어 교묘하게 이득을 취하는 위장고용도 알렸습니다. 부실시공을 고발할 수 있는 당사자는 우리밖에 없으니 노조를 응원해 달라는 호소도 전했습니다. 조합원들이 누락된 퇴직공제금을 신고해 회복하기 시작하니, 불법하도급 업체의 현장 관리자가 우리를 다음 현장에서 빼겠다고 대놓고 협박합니다.”
건설현장의 마지막 공정인 마루판의 불법과 부조리를 고발한 이들이 현재까지 이뤄 낸 것은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공제금 적립, 그리고 산재 인정이다. 시공자들 모두가 온전하게 피해를 회복한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를 확인한 정도다. 노조를 통해 따지고 신고해야 그나마 들여다보는 실정이니, 초과이익과 불법영업을 포기할 수 없는 사쪽은 아예 법적용이 이뤄지지 않도록 싹을 자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조합원들의 대대적 참여로 정부에 제공한 불법하도급 신고자료는 불법을 바로잡는 증거가 아니라, 불법을 들춰 내려는 불순한 이들의 명단이 돼버렸다.
“저번 정부는 민주노총에 들어가지 않은 노조라 이리저리 활용할 가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대통령이 주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증언한 후, 우리가 장시간·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날 거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을 때는 다들 희망에 찼습니다. 법적으로 노동자인 것은 인정받았는데,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면 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게 돼 버립니다. 우리는 다 걸고 싸우는데 정부가 불법을 방치하니, 우리만 희생당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적발해야 하는지 우리가 알려 줄 테니 그냥 모조리 전수조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쿠팡 캠프에서 4만건을 적발했는데, 실내건설에서 이름난 업종만으로도 더 나올 겁니다.”
사쪽이 일자리를 두고 위협하니 노조에서 탈퇴하는 조합원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노조가 무너지면 위장고용과 불법하도급의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다. 이를 막아 낼 가장 강력한 해법은 역시 전수조사다. 노동자 추정제도 도입이 새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들어가 있으나, 입법적 해결에 앞서 정부가 긴급하게 시행할 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비추며 사회적 대안 모색에 일조하려는 글을 연재해 왔다. 그 사이 대통령이 파면돼 새 정부가 들어선 날 아침에 여전히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는 이 나라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라에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일터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성토한다. 용기를 내 답을 말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이들에게, 더 열심히 싸우면 나라가 바뀔 거라며 마냥 응원할 여유가 없다.
이들이 자신의 일자리와 삶을 걸고 전하려는 답을 뚜렷하게 새겨 본다. 국회는 노동자 차별제도를 폐지하고,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을 입법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존하지 않고, 불법과 부조리가 판치는 현장에 전수조사로 응답하는 것이다. 답이 실현되길 원하는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아직 없다.
[사진] 마루시공 불법하도급 명단발표 및 폐지투쟁 돌입 기자회견(23.4.11, 국회)
글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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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노동자 권리찾기 상담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