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의 물류센터에서 조리사로 일하다 해고당한 노동자(D조리사)가 상담실을 찾아왔다. 근로계약서를 확인하니 파견근로계약을 체결한 간접고용 노동자다. 물류센터 직원들의 실질적인 사업주인 C사는 이 계약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물류센터 내부의 직원식당을 운영하는 S사가 사용사업주로 표기돼 있고, D조리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파견사업주는 A사다. C사가 직원식당의 운영을 S사에 외주화했고, S사는 이 식당에서 일할 노동자를 A사로부터 공급받는 다단계 간접고용 체계다.
A사는 홈페이지 소개에서 고용노동부로부터 ‘근로자 파견 우수 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고 자랑한다. A사는 쿠팡 물류센터의 ‘가짜 3.3’(사업소득세 원천징수세율 3.3%) 문제에 대응해 온 이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2022년 3월 쿠팡의 전주지역 물류센터를 4대보험 미가입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에서 해당 물류센터를 운영해 온 사업주가 바로 A사다. A사의 주된 사업은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할 간접고용 노동자를 모집하는 것이고, 아예 본사와 도급계약을 맺어 고객사의 특정 사업장을 맡아 운영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파견허용 업종인 조리사를 파견계약 방식으로 채용해 고객사의 사업장에 투입한 경우다.
[사진] 노동자성 부정하는 쿠팡 물류센터 공동고발 기자회견(22.3.28)
D조리사는 자신을 고용한 사업주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주장하지만, A사는 근로계약서에 표기된 대로 계약기간이 종료된 것이라 반박한다. 계약서에 적힌 액수보다 많은 급여를 D조리사가 실제로 받아 왔고, 파견근로계약을 체결한 법적 노동자임에도 사업소득자로 신고한 정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도 계속 근로가 가능하다고 사측으로부터 약속받았고, 작성한 계약서는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D조리사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결국 D조리사는 작성된 계약서의 문구와 상관없이 실제로는 A사와 계속 근로관계의 방식으로 계약했음을 입증해야 부당해고가 인정될 수 있다.
사측이 기관 제출 대비용으로 형식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례는 흔하다. 아파트 건설 공사의 마루 시공 현장에는 불법하도급 업체나 중간 관리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가 적힌 계약서를 당사자 동의 없이 대필해 보관해 두는 악습이 횡행한다. 일부만 근로소득으로 신고하고, 나머지는 사업소득으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기에 등장하는 편법이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에게 4대보험을 가입시키지 않고, 3.3으로 신고하는 못된 습관은 다양한 간접고용 현장에서 쉽게 발견된다. 온라인 채용공고에서 근로계약 고용이 분명한 사례임에도 3.3%를 공제한다고 설명하거나, 원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홍보하는 식이다. 당사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더라도 4대보험 미가입과 사업소득자 위장 수법은 엄연히 불법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당사자들이 주고받는 정보를 통해 3.3 처리 관행과 관련한 각종 사업체들의 실상이 전해진다. 거의 모든 직원을 3.3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4대보험 미가입에 원활하게 협조하는 사업체의 실명도 의외로 인기다. 일용직이나 단기 고용이라도 바로바로 다음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정보가 된다니 참 서글픈 현실이다. 적발될 위험이 없다고 느끼는 사업체들은 이런 정보를 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강요된 고통이 당사자의 선택으로 뒤바뀐다.
고용 방식이 무엇이든 3.3을 악용하는 사업주는 비용 절감과 사용자책임 회피를 통해 초과 이익을 취할 수 있다. 계약의 상대방과 근로 현장의 사업주가 원천적으로 분리된 파견과 간접고용에서 사업주들의 이익은 극대화되고 사용자책임은 손쉽게 흐려진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 열악해진다. 4대보험 없는 3.3이 중간착취를 확대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한 기대조차 삭제시킨다.
불교에서 ‘악연’은 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반복되는 악연을 끝내려면 대세가 된 간접고용 환경에서 3.3 위장고용의 질긴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중간착취와 가짜 3.3은 근로계약의 형식과 실질을 뒤집어 위장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갑에게 금상첨화가 을에겐 설상가상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삭제되는 거짓된 환경을 바로 잡는 입체적인 대응과 협력이 절실하다.
글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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