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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가 다시 만날 세계 <매일노동뉴스 연재> | 칼럼

  • 정진우
  • 2024-12-19 11:40
  • 265회

 

윤석열의 직무가 정지되고,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됐다. 여의도와 국회로 집결했던 시민들의 함성이 광화문과 헌법재판소로 이어진다.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처럼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을 끝내기 위해 다시 더 큰 울림을 만들고 있다. 대통령을 바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 나라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함께 전하는 공명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에는 반헌법적인 비상계엄과 내란 행위가 적시돼 있다. 윤석열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고통받던 이들의 외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내란은 매일 우리 곁에, 우리의 삶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빼앗긴 채 하루하루를 살아온 이들의 절규다. 탄핵의 광장을 시작한 이들이 다시 만날 세계를 가리키며 붙인 이름은 ‘사회대개혁’이다. 헌정질서가 유린당한 비참한 시대를 극복하는 대개혁은 헌법이 사라진 세계의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헌법 32조에 의하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게 되어 있다.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하는 것을 제1조 목적으로 명시한 법률이 바로 근로기준법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상시근로자수가 5명 미만인 사업장 노동자에게 이 법의 일부만 적용하도록 제한한다. 연차휴가, 연장근로수당, 부당해고구제와 같은 핵심 조항은 제외된다. 직장내 괴롭힘에 더 심각하게 노출돼도 신고조차 못 한다. 모든 국민에게 ‘빨간날’을 돌려준다는 공휴일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니 휴일에 쉬지 못하거나, 대체공휴일에 공짜로 일해야 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비껴가니 일하다 죽는 것까지 차별이다. 사업장 규모로 차별당하는 이들의 숫자는 350만명이 넘는다.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가 원천징수되는 노동자의 수는 지난 2022년 국세청 집계로 847만명이다. 세금의 종류가 위장돼 노동자의 이름조차 빼앗긴 이들은 4대 보험에서도 배제된다. 쿠팡의 카플렉서와 교통사고 조사원과 같이 위험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상이 안 된다. 음식점과 물류센터, 아파트형 공장에서 일하는 3.3(사업소득세 3.3%) 노동자들은 실업급여와 퇴직금 없는 실직에 부딪힌다.

 

이렇게 헌법이 사라진 세계에서 천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과 노동의 권리 없이 일한다. 국가의 개입과 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이 오히려 법의 적용에서 배제된다. 헌법이 부여한 노동의 권리를 함부로 유린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노조 탄압을 정권 유지의 무기로 사용한 윤석열은 누구나 노동조합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거부했고, 노동권을 이권 다툼으로 치부해 온 정치권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4대 보험 개정안을 방치한다. 정권을 다투는 권력자들이 우리의 삶과 권리를 거래하고, 무너뜨린다.

 

낡은 세계를 거부하는 시공간이 열렸지만,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온몸으로 버텨온 이들은 공터를 채운 숫자의 하나로 셈해진다. 천만의 권리는 아직 광장을 대표하거나 상징하지 않는다. 광장으로 나선 청년의 절대다수가 노동의 권리를 빼앗긴 당사자임에도 마찬가지다.

 

[사진] 일하는사람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캠페인(2023 세계노동절대회)

 

광장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한다. 수백만의 꿈은 어떻게 현실이 될 것인가. 한데 모여 개혁의 방향이 된 외침은 다시 흩어져 널리 퍼질 것이다. 광장의 집회를 주관하는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 집약과 확산의 매질이다. 진동을 일으키고 감지해 온 수천의 단체가 동참하니, 새로운 세계를 써 내려갈 줄거리는 차고 넘친다. 단결해 싸울 권리조차 빼앗겼던 이들의 소리를 어떻게 담아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사회대개혁은 낡은 것을 허물고,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권리를 무너뜨린 권력과 제도를 해체하지 못한 채 만나게 될 세계는 우리 것이 아니다. 광장이 정권을 바꿔내도 세상은 왜 바뀌지 않았는지 되짚어 볼 시간이다. 미처 닿지 못했던 가장자리에서 답을 찾자. 반복되는 슬픔과 안녕할 수 있는 해법은 차별의 폐지와 모두의 권리다. 우리가 노동자의 이름으로 권리를 누리는 세계는 모두의 권리로 모두를 살리는 세상이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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