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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3 노동자에게 근기법 2조 개정이 절실한 까닭 <매일노동뉴스 연재> | 칼럼

  • 정진우
  • 2024-11-21 15:45
  • 111회

 

이달 6일, 근로기준법 2조 개정안이 발의됐다.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하는 법안이다. 노동자 우선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고, 이러한 추정을 부정하려는 사용자가 증명할 항목이 명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C테스트’와 같이 노동자성 부정의 책임을 사용자에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짜 3.3 노동자들이 입법을 제안하고, 강은미 전 정의당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발의한 개정안은 폐기됐다. 새 국회가 개원해 쿠팡의 대규모 가짜 3.3 적발 과정에서 제도적 대안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시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내건 입법운동이 재개되도록 국회 내 응답이 이뤄졌다. 새로운 도전의 의의를 알리며 3.3 노동자들이 제안자로 나선 이유를 짚어 본다. 생생한 목소리로 제안문을 인용한다.

 

[사진]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제안운동 발표회(2021.6.17)

 

“똑같은 근로자인데 계약서가 다르다고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게 너무 억울해 입법제안에 참여합니다”(피아노 강사)

“해고예고수당이라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용역계약에는 해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3.3% 세금 부과하는 용역계약서 쓰게 해 놓고, 이를 빌미로 제가 사업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랍니다”(백화점 위탁판매원)

“3.3% 공제자로 그만둬도 실업급여자에 해당되지 못하고 과로로 체력 떨어져 너무 힘들고 그만두고 싶으나 생활이 걱정이라 고통스러웠습니다.”(뷔페노동자)

 

공통점을 요약해 본다. 첫째, 이들 스스로 남들과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이다. 둘째, 같은 노동자인데 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느냐는 항의다.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을 빼앗는 도구는 계약의 형식과 세금의 종류다. 법원은 근로관계 형식과 상관없이 노무제공의 실질을 따져 노동자성을 판정한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3.3 노동자가 급증하고, 위장 수법이 모든 업종으로 퍼진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법률구제 당사자의 사례로 그 이유를 찾아보자.

 

ㄱ씨는 온라인 교육회사에서 10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회사가 배정한 학생들의 학습을 원격으로 돕고, 상담과 고객관리가 주된 업무다. 회사의 매뉴얼에 따라 지정된 시간에 업무를 수행했다. 사내교육에 불참하거나 지각할 경우, 정해진 기준으로 삭감된 급여내역이 명세서에 표기됐다. 아홉 번 갱신된 계약이 갑작스레 거절당했고, 이에 불복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ㄱ씨를 이 회사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의 구체적인 가이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도, 이런 정황은 “회원들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상담을 유지하고 회원 관리를 위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한다. 당사자가 제출한 것으론 회사의 지휘·감독을 인정할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급여삭감에 대해서는 회사가 제재한 내용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측이 보유한 증거자료를 판정 기관이 요구할 경우, 이에 근접할 수 없는 당사자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어렵다. 노동위원회가 쉽게 인정한 내용은 “이 사건 근로자는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으며, 사업소득세를 납부한 사실”이다. 사용자가 설치한 벽이 노동자의 주장을 허문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주가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으니, 이를 이유로 노동자성을 함부로 부정하지 말라는 판례를 대놓고 뒤집는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라 시정명령이 내려져도 상당수 대기업은 무시하고 법원으로 향한다. 장기간 고비용 소송의 위험을 택할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생계를 찾도록 몰아간다. 연줄과 평판에 따라 취업이 좌우되는 분야일수록 더 그렇다. 피해자들이 처한 현실의 벽과 제도적 한계를 악랄하게 활용한다.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 벽을 뚫고 나간 주인공들과 벽에 가로막힌 이들이 함께 증언한다. 벽을 쌓은 자들이 아니라, 왜 벽에 갇힌 우리에게 벽을 허무는 책임조차 떠넘기는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되찾으려는 이들의 항의다. 근로기준법은 누구나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계약의 형식이나 세금의 종류 따위로 간편히 노동자성을 삭제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오히려 이를 손쉽게 빼앗기는 비참한 시대를 끝내자. 우월한 지위의 사용자에게 노동자성을 부정하려는 증명책임이나마 돌려주자. 근로기준법 2조 개정이 절실한 이유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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