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유하기

[칼럼] 보이지 않는 이들이 권유하는 근로기준법 사회연대운동 <매일노동뉴스 연재> | 칼럼

  • 정진우
  • 2024-07-04 10:49
  • 573회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이들이 천만을 넘어선 것은 이제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추정치는 다르더라도 전체 노동자 절반 이상이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배제되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싸워온 당사자들에게 ‘천만’의 숫자는 비참한 시대를 함께 견뎌내는 무게가 된다.

 

“여기저기 전전하다 운 좋게 권리찾기 법률구제로 보상받았지만, 동료들은 그대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노동자가 천만 넘는다고 해 깜짝 놀랐는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당하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유령 취급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근로기준법 공동법률구제로 승소한 당사자들이 자주 전하는 말이다. 차별의 고통까지 더해진 비참한 노동을 어떻게든 견뎌낸 이들이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고통이지만, 퇴직금과 사회보험 없는 이들이 당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잠이 깨 아침을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운 이들이 기어이 용기를 내 세상의 벽을 두드린다. 안타깝게도 상당수는 예상하지 못한 절망에 부딪힌다. 대여섯 번 문전박대는 기본이다. 우여곡절로 전전하다 공동법률구제를 발견해 상담까지 한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이유다. 이들에게 근로기준법 권리찾기는 온갖 연이 닿아야 도달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여정이다.

 

“당사자 주체가 안 보이는데 운동이 될까요?”

 

권리찾기유니온이 사회 각계에 근로기준법 연대운동 참여를 권유하는 글의 첫 줄이다. 근로기준법 의제에 공감은 크나, 자기 과제로 받아들이는 조직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걱정이 담겼다. 이름만 올리는 연대사업은 안 하기로 했으나, 자기 분야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걸 먼저 상의해 보자 화답하고, 구성원들의 삶과 노동 문제로 접근해 보겠다는 응답도 전해진다.

 

 

 

“안 보이는 건 옆이나 아래가 아니라, 그들이 밖에 있다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누군가 날카롭게 되묻는다. 노동운동이든 정치권이든, 보이지 않거나 못 본 척하거나, 천만의 실체에 대해 두루 살펴보길 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언론용 제목으로 쓰기 좋은 별의별 이름의 지원법이 넘쳐나는 때이니 시의적절한 지적이다. 헌법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제정해 둔 나라의 대통령이 꺼내든 제목은 ‘노동약자 지원법’이다. 천 개의 이름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유령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천만 넘는 이들이 법 없이 일하는데, 이 법의 이름이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 없는 노동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덕담도 전해졌다. 4대보험과 가짜 3.3 문제로 정면 돌파하는 전략이 송곳이 됐다고 한다. 당사자 주체의 힘으로 세상의 벽을 넘어서는 도전이기에 기꺼이 응원하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마음이 소중히 연결된다.

 

“4대보험 전면시행,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기대와 걱정이 섞인 채 퍼져 나가는 연대운동의 핵심의제다. 음식점에서 쿠팡캠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동자에게 지금 당장 돌려줘야 할 것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노동시장의 비용 계산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자는 외침이다. 5명 미만 사업장과 가짜 3.3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새겨진 근로기준법 2조와 11조 개정안은 21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정치권이 이해득실로 치고받는 동안 절망의 숫자가 천만을 넘겼다. 사업장 규모와 세금의 종류 따위로 차별받는 세상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깨달은 이들이 출사표를 던진다.

 

“음식점, 사무실, 공장, 물류센터든 가리지 않고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섭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물으며 함께 답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이다. 세상을 바꿔 온 경험과 지혜로 더 크고 강한 힘을 함께 만들어 달라 호소한다. “업무 중 맨홀에 빠진 교통사고조사원에게 산재보상을” “쿠팡캠프 전수조사, 물류산업 전체로 확대해야”로 제목을 붙인 칼럼들이 연대운동 제안서에 새겨졌다. 이 칼럼의 이름처럼 ‘차별 없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나름의 기획이 됐다. 소통의 시공간을 일구는 언론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이다. 7월4일 바로 오늘, 천주교의 흔쾌한 협조로 노동사목회관에서 근로기준법 사회연대운동의 첫 준비모임을 연다. 모두의 권리로 나아가는 소중한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매일노동뉴스 연재(비정규직 활동가의 차별없는 세상 속으로) 기사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