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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업무 중 맨홀에 빠진 교통사고조사원에게도 산재보상을 <매일노동뉴스 연재> | 칼럼

  • 정진우
  • 2024-02-15 12:45
  • 1,202회

“사고현장인 주유소 바닥에 미끄러져 발목 골절”

“현장 주행하던 차량이 추돌하여 업무차량 파손”

“블랙박스 확인 후 하차하다 뚜껑 열린 맨홀에 빠져 연골판 파열”

 

교통사고조사원들이 증언하는 업무상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다. 보험가입자의 교통사고가 접수되면 자동차보험 회사는 사고현장에 사고조사원을 출동시킨다. 현장에 도착한 사고조사원은 부상자 구호와 현장 수습을 조치하고, 피해현황과 사고원인 조사 등 지정된 업무를 수행한다. 위급한 현장에서 극도로 위험한 노동을 감수한다.

 

[사진] 삼성화재애니카지부 단체교섭 상견례(2024.1.12)

 

김인식 사무금융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장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서비스,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삼성화재”라는 광고에 숨겨진 진실을 전한다. 사고로 흥분한 고객에게 욕설 듣고, 새벽에 술 취한 이에겐 폭행까지 당한다. 여기서 사고 나면 보상도 없이 모든 게 끝이라는 공포를 견뎌내 무사히 귀환해도 끝이 아니다. 출동대기에 이어 사고처리 상담도 밤낮없으니 불규칙한 식습관에 만성적 수면장애는 기본이다. 고객과 관리자를 상대하는 업무처리에서 사고조사원은 폭언과 모욕의 대상이다. 조합원 중 39.9%가 공황장애,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는 과장이 아니다.

 

권리찾기유니온 실태조사에서 사고조사원들은 당장 절실한 것으로 ‘산재보상’을 꼽았다. 발목이 부러져도, 차량이 부서져도, 맨홀에 빠져도, 공황장애에 시달려도, 업무상 재해와 질병조차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세상을 향해 구조신호를 보낸다.

 

“병원비도 부담되고 출동 빠지면 굶어야 하니, 대충 붕대 감고 출동해 위험한 데서 버티니 더 힘들고….”

 

이들이 산재보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심에서 뒤집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법원 판결을 꼽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범위(6조)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이고, ‘근로자’의 정의(5조)는 근로기준법을 따른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들은 별도의 기준(노무제공자에 대한 특례)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사고조사원들은 자신들이 업무상 재해로부터의 보호 필요성이 크지만 특례 가입조차 안 되는 이유를 따져 묻는다. “사고조사원(직종)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노무제공자 명단(18개 직종)에 없기 때문”이 노동당국의 답이다. 이 숫자를 몇 년에 두세 개씩 늘려가는 추세인데, 직종 수가 몇 개가 되어야 사고조사원도 이 명단에 낄 수 있을까? “직종 열거식 행정편의주의로는 노동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진단은 암담하게도 타당하다.<매일노동뉴스 2022년 5월26일자 윤애림의 차별없는 세상속으로 칼럼 “‘윤석열 정부 1호’ 산재보험법 개정안의 진실” 참조>

 

법적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이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산재보험법을 개혁하는 것. 근로기준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노동자일수록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고, 위험하게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산업안전과 산재보상 제도의 수혜자가 되는 것. 이것이 노동법 시대의 상식과 원칙이다.

 

새해에 사측과 단체교섭을 시작한 삼성화재애니카지부는 “4대보험 가입처리 시행”을 안건으로 제시했다. 노동자 지위와 권리를 빼앗긴 이들의 절박한 외침이 이어진다. 2022년 겨울, 현대삼호중공업 블라스팅 노동자들은 물량제 폐지와 4대보험 쟁취를 요구하며 투쟁했고, 38일 만에 타결하여 현장으로 복귀한 바 있다. 계약형식과 세금의 종류가 위장되어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제도의 주어가 되지 못했던 이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고 있다. 이것이 노동법 시대의 시작이자 동력이다.

 

삼성과 교섭에 나선 사고조사원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사고를 당한 이들에겐 긴급한 구호와 후속처리를 담당해주는 조력자이고, 보험판매와 사고처리로 이득을 취하는 사업체에는 최일선 위험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자다. 공채로 채용한 노동자들을 ‘3.3 노무제공자’로 둔갑시켰더라도 자신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는 이들에 대한 사용자 책임까지 회피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을 인정하며 준법경영을 약속했던 삼성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수렁에 빠진 이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는 세상. 답을 알고 있는 이들의 응원이 소중한 시간이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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