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의 한겨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유제순을 만났었다. 엘지가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용역업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고용 해지를 통보했고,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로비 농성 중이었다.
8개월 남짓 시간이 흘러 한여름에 만난 유제순은 부당해고에 맞서 당당히 지켜낸 민주노조 엘지빌딩분회의 분회장으로 더 빛나고 더 단단해져 있었다.
[사진 1] ‘LG마포빌딩 첫 출근! 청소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7월 1일 첫 출근날 오전 5시 엘지마포빌딩 정문 앞에서. 뒷줄 세 번째가 유제순 분회장
바뀐 현장 달라진 시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지. 잘리면 어디로 가나 싶어서 죽는시늉까지 하면서.”
그러다 민주노조를 만들면서 변해왔다. 항상 수그러져 있던 어깨부터 펴졌다. 해고 통보에 맞서 싸우는 동안 ‘내 등 뒤엔 민주노총이 있다, 뭉치면 살게끔 돼 있다, 회사의 부당함에 덤벼들 수 있다’는 마음이 꽉 차올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회사는 세월 흐른다고 변하는 곳이 아니었다. 10년여 최저임금으로 부리고 그마저 임금꺾기를 해서 주말 무급 노동으로까지 부려 먹었다.
하지만 농성을 승리로 마친 지난 4월 30일 노사 합의 뒤로 현장은 바로 바뀌어 버렸다. 핵심은 노조이며 단결이고 투쟁이었다. 목에 힘주고 눈 부라리던 이들이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며 오히려 노동자 눈치를 보고 분회장님 무섭다고 한다. 노조 하나 있고 없고가, 노조 하나 지켜내고 못 지켜내고가 하늘과 땅 차이다.
136일의 농성은 노조와 엘지 양측의 경험이다. 노조는 투쟁으로 노동자의 하늘을 열었고, 엘지는 그런 노조를 우습게 볼 수 없게 됐다.
조합원들이 로비에 들어오면 “안녕하세요.” 보안요원이 먼저 크게 인사한다. 엘지의 청소 용역업체인 지수아이앤씨 본사 바로 목전에 이렇듯 당당하게 민주노조가 섰다.
“‘덩치가 적다고, 키가 작다고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난 덮지 않고 파헤치는 사람이다. 구광모하고도 싸운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지.”
맞는 말이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협상안을 통과시켰다. 전엔 벌벌 기었다면 이젠 누구 하나 무섭지 않다는 유제순이다. 조합원에겐 작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고 기본 업무에 충실하자 독려하되 사측의 갑질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
고용 승계와 정년 연장은 물론 만근수당으로 7만 5천 원을 따냈고, 무급으로 토요일마다 나와서 왁스 청소하던 것을 특수청소업체에 맡기는 것으로 바꿨다. 전체 조합원의 노조 총 활동 시간으로 연말까지 1,000시간도 보장받았다. 조합원 전체 회의도 치르며 충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일하는 빌딩 근처에 번듯한 노조 사무실도 만들었다. 들러서 보겠느냐고 자신 있게 안내한다. ‘띠띠띠띠’ 번호를 눌러 잠금을 풀고 사무실 문을 열어 보인다. 안에 화장실도 있고, 여러 명이 앉아 회의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볕이 환하게 쏟아지는 전망 좋은 사무실이 그동안 지하 휴게실에 익숙했던 이들의 것이다. 창가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모범조직’이라는 단체명패가 반짝인다.
[사진 2] 엘지빌딩분회 단체명패 앞에서 민경남 사무장의 불끈 주먹
“현장에서 고생은 했지만 배운 게 너무 많아. 우리 분회를 찾아오는 다양한 동지들도 만났고. 그 추위에 돈만 생각하면 못 할 활동이지. 저런 단체가 있구나. 그 힘으로 우리나라는 썩지 않고 이어가는구나 싶었고.”
이민이나 가버리고 싶을 만큼 썩어빠진 나라라는 생각이었는데 서로 돕고 연대하는 이들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같이 먹고 자고 몸 던져 싸우며 정든 연대 동지를 하나하나 떠올린다.
“보안들과 충돌할 때도 조합원부터 보호해줬지. 우리에겐 천사였지만 사측과는 무섭게 싸웠어. 옷이 다 찢어지고. 겨울이라 두터운 옷이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대종상 영화제 수상소감처럼 고마운 이를 일일이 거명하며 손으로 꼽아보니 열 손가락을 훌쩍 넘어선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우고, 누군가는 꼼꼼하게 스케줄을 챙기고, 누군가는 먹는 게 부실하지 않은지 돌아보며 함께한, 백인백색의 고마운 동지들이다.
해고와 농성 뒤 유제순의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2015년 TV 화면으로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보며 ‘미친 X X’라고 생각했다면. 동일 인물인데도 2020년 12월에 로비 농성장에서 연대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렇게 순하고 선한 사람이 또 어딨나?’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 3] 그제와 이제의 한상균 위원장. 한상균이라는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유제순이라는 사람의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음악이 들려. ‘철의 노동자’라도 들리면 귀 기울이고, 어디 있나 확인하고. 오죽하면 나섰을까, 저 속에는 어떤 속상함이 있을까 하고.”
노조를 알고 나서야 몰랐던 걸 알게 됐다는 유제순. 하춘화의 ‘난생처음’을 ‘노조를 알고부터 노조를 알고부터 세상을 알았습니다’로 ‘노가바’ 해야 할 거 같다.
함께 누리는 ‘불금’
분회장으로 숙제처럼 안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싸우며 배우는 시간이 전혀 없던 새 조합원들과 쉬는 시간 쪼개서 함께 노래라도 익히고 싶은 거다. 근데 그게 맘대로 안 된다. 시도해도 흐지부지된다.
“여기 식구들은 아직 뼈저리게 닿지 않는 듯해. 밥 먹으면 불 끄고 자는 거야. 투쟁가라도 배워야 할 텐데.”
새벽 첫차를 타고 와서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하고 오후 4시에야 퇴근하는 삶. 그나마 밥때인 오전 8시 30분에서 한 시간, 오전 11시 30분에서 한 시간이 휴식 시간의 전부. 후딱 밥 먹고 눈이라도 붙여야 하니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유제순은 농성 기간 내내 불면증으로 평균 1시간 정도 잤다. 농성장 날바닥에서 못 자던 잠을 농성 승리 후 집에 돌아가 2달 쉬는 동안에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7월 20일 이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자고 있다.
“잠이 뭐야. 우리는 땅바닥에 허리를 대보지를 않았는데. 배워야지, 기본은 알아야지.”
흥분해서 아우성치며 투쟁하고 아침저녁 마이크 잡고 목청껏 싸우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양치하는데 목에서 피가 두 번이나 올라와 폐병인가 걱정될 정도로 목을 썼다.
'엘지 조합원들은 어찌 그리 발언을 잘하시냐', '연대하러 와서 많이 배우고 간다'는 소리도 들었다.
“현장에서 투쟁하며 눈으로 확인한 걸 입으로 토해낸 거지. 평상시 하는 대로, 그냥 나가서 하는 거야. 나이도 60이 넘어서, 따로 쓰고 준비하고도 없이.”
[동영상] 김영례 부분회장의 발언. “‘나는 못 해’라고 빼든 사람이 나중엔 물이 올라서…”라는 유 분회장의 증언
돌아보면 한 조합원이 분해서 난간에 올라가 떨어지겠다던 아찔한 일이며, 농성 조합원 전체가 소복 입고 청와대며 한남동 구광모 대표 집으로 행진을 하던 일들이 생생하다. 얼마나 추웠던지 눈썹에 고드름을 매달고 걸었다. 이제 그까짓 추운 건 일도 아니라는 한마디에서 강인하게 단련된 노동자를 본다.
그런 고생이 보람으로 다가오던 한순간을 꼽으라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토요일 무급 왁스 노동에서 해방된 날. 경험 못 한 ‘불금’이란 걸 제대로 느낀다며, 함성을 지르고 몸을 흔들며 신나서 퇴근하던 조합원의 모습이다. 투쟁의 성과를 새로이 함께하는 조합원과 똑같이 누리며 여의도 조합원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 시간이다.
이런 ‘순박한 여사님’들과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실천하는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아시아나케이오 복직 투쟁 농성장에 같이 연대 가려 한다.
신입 조합원들에게 빨리 배우고 익히라고 채근하는 대신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 속에 같이 다듬으며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탈 없이 따르고 지지해 주는 조합원의 마음을 알고, 지부에 같이 고민해줄 동지도 든든하게 있으니 말이다.
엘지빌딩분회원은 엘지트윈타워 농성에서 끝까지 싸운 20명에 엘지마포빌딩의 미화팀 16명과 시설팀 8명이 더해져 44명이다. 여기에 앞으로 보안팀까지 결합 예정이다.
‘100명보다 파워 있는 조합’이라는 유제순의 노조부심을 읽는다. 어이쿠, 절로 눈이 부신 오후였다.
[사진 4]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의 입법 제안 운동에 동참하는 민 사무장과 유 분회장
글
김우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