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대안 토론회가 지난 23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렸다.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과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이하 ‘입법추진단’)이 개최한 이 날 토론회는 입법추진단의 입법대안(제2조 정의, 제11조 적용범위), 입법운동의 과제와 계획을 주제로 진행됐다.
토론회는 강은미 국회의원,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이하 ‘노노모’) 구동훈 회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노동위원회 이용우 부위원장, 권리찾기유니온 한상균 위원장의 대표 인사로 시작을 알렸다.
강은미 국회의원은 “현실의 노동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로 인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근로조건과 처우는 물론,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 행복권 중 하나인 휴식권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활동과 실천 활동에 저와 정의당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어 구동훈 회장은 “근로기준법이 누군가에게는 지켜지지 않아도 되는 기준이 되는 현실”에 대해 언급하며 “이번 토론회가 과거부터 계속되고 있는 잘못된 관행을 끝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용우 부위원장은 입법추진단이 제안하는 입법대안을 언급하며, “오래된 관념에 기초한 노동자 개념,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적용제외 규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번 토론이 사회적 논의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마지막으로 한상균 위원장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논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 개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라며 인사를 마쳤다.
본 토론에 앞서 근로기준법 제2조 당사자(가짜 3.3 B형)*와 근로기준법 제11조 당사자(가짜 5인미만 A형)**가 직접 겪은 권리 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근로기준법 2조 당사자로 나선 김다혜씨는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노동자들이 서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사용자는 단기간 용역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며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증명책임을 온전히 부담하는 현실의 부당함을 성토했다.
* 가짜 3.3 B형: 도급·위탁·용역계약 등 체결하고 사업소득세(3.3%)를 원청징수하는 방식으로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위장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유형
** 가짜 5인미만 A형: 서류상 여러 사업장으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여 근로기준법 핵심조항 적용을 회피하는 유형
근로기준법 11조 당사자로 나선 김민정 씨는 “5인 이상과 5인 미만을 구분하는 근로기준법 11조의 차별이, 진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이에 더해 가짜 5인미만 사업장까지 양산하고 있다”고 말하며 현장의 목소리로 차별 폐지의 필요성을 전했다.
당사자들의 사례 발표를 통해 현실의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한계가 지적되었고, 이러한 한계를 딛고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대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입법추진단의 첫 번째 입법대안인 근로기준법 제2조 개정안의 발제를 맡은 이종훈 변호사(민변 노동위)는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근로자성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해야 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짚었다. 이종훈 변호사는 “완전한 종속성을 흰색이라 한다면, 완전무결한 흰색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흰색과 검정색이 얼룰덜룩하게 섞여있는 회색지대에 놓여있다”며 “그런데 검정색이 섞여있어서 또는 검정색이 없음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완전한 검정색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개정안의 취지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입법추진단의 개정안은 현행 법상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자에게 부과되는 증명책임의 주체를 전환하여,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한다는 점만 입증하면 근로자로 추정하고,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용자가 입증하게 하는 내용이 핵심 골자이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은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여 근로자성 증명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근로자 정의 규정 개정과,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에게 근로기준법상 책임을 부담케 하는 사용자 정의 규정 개정을 내용으로 한다.
두 번째 입법대안으로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안에 대한 이미소 노무사(노노모)의 발제가 진행됐다. 이미소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11조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법률적·사회적 비판들을 차례로 제시하며 근로기준법 11조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미소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는 내용의 입법추진단 개정안에 대해 예상되는 반론에도 반박했다. “지불능력의 한계가 있는 영세사업장이 있다면, 해당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근로기준법상 책임과 의무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영세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올바른 방향”임을 지적했다.
입법대안 발제와 함께, 이러한 입법대안을 실제 법안으로 발의하고 전사회적 운동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입법운동의 계획 및 활동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입법추진단의 하은성 기획팀장은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며, 입법안 발의 및 국회 입법절차 진행을 위한 활동과 당사자·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실천사업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입법추진단의 입법대안에 대한 의견과 제안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권오성 교수(성신여대)는 “4인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일부) 적용배제는 법률 차원에서 상시 사용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적용범위를 정함에 따라 차별을 적법화하는 아이러니를 야기했다”고 지적하며 “더욱 법의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작은 사업장의 취약한 노동자를 법 밖에 방치하는 현실을 넘어, 포괄과 보편의 노동법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근로기준법 2조 입법대안에 관하여 권오성 교수는 “현재의 근로자 정의 규정이 근대적 생산방식이 보편화되고 다변화된 고용관계가 나타나는 21세기의 현실을 제대로 포섭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기호운 정책부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역시 입법추진단의 입법대안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공감을 표하며 취약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률 개정과 함께 노동공제운동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마지막 토론자인 이정희 정책실장(민주노총)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으로 일을 하며 살아갈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에 해당한다”고 언급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근로자 정의규정의 확장을 통한 노동자 권리 보장을 이뤄나가는 데 책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토론의 열기는 종합토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의당 신언직 노동사회연대본부장은 일하는 사람 누구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담론적 설득력에 대해 언급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취약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이 영세상공인들의 이익과 상충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법 개정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성황리에 토론회를 마무리한 입법추진단은 발표한 입법대안을 바탕으로 오는 9월 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정기국회 기간 동안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할 예정이다.
글
허성희
권리찾기유니온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