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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⑪ 강사는 처음입니다만, 그래도 모두 제 잘못입니다. | 칼럼

  • 정이리리
  • 2021-06-25 16:12
  • 259회

 

엄마가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라 조심하라고 했다.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그래 정말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살았는데, 서울 사람들은 내 코를 몇 번이고 베어갔다. 몇 번을 밟혀도 우렁차게 ‘아자아자!’ 외치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가 되고 싶었지만, 일이 잘못되어 갈 때마다 타들어가는 자존감에 내 자신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꽃보다남자(2009)>:KBS 방영드라마. 금잔디는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고 해서 이름이 금잔디이다.

 

‘계약’. 계약은 마치 계약서에 싸인한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등한 두 주체가 만나 서로의 의사를 조율해 글로 옮기고, 각자 잘 읽어보고 동의하여 성사되는 아름다운 그림. 초중고 사회 교과서에도 근로계약서나 노동자의 권리를 배우는 부분에서 계약은 무채색의 인간 행동으로 그려진다. 내가 과외하고 있는 중학생에게 노동 3권을 아무리 가르쳐도 그 이름과 구분을 외우지 못했다. 교과서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노사 계약에 ‘단체 행동’이나 ‘단결’이라는 무서운 말들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은 내가 봐도 무리였다.

 

 

[사진 1] 지학사 중학 사회 (2) 교과서에 실린 노동 3권에 대한 설명. 왜 노사 관계가 대등하지 않고 불리한 지 전혀 쓰여있지 않다. 그나마 예전보다 사례 중심으로 내용이 많이 변화하였으나, 노사 관계에 대해서는 마치 영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처럼 권력의 불균등함에 대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는다.

 

 

여러 아르바이트 노동을 지나면서 대등한 계약을 해 본 일은 없다. 일단 대형 회사 외에 근로계약서를 써 본 일이 전무하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기 위해서 하루에만 지원을 열 군데씩 넣고 매일 서너 곳 면접을 한참을 다녀야 한다. 한 시간 동안 화장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달려가 면접을 겨우 10분 정도 보면서 듣는 말은 ‘지원자가 많아서 다음 주까지 면접을 볼테니 그 때까지 연락이 없으면 불합격으로 생각해달라, 하나하나 연락하기 곤란한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말이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크게 외치고 아주 힘찬 걸음을 걷다가 가게가 보이지 않으면 길가에 주저 앉아서 비참함에 몸서리친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합격한 곳에서, ‘근로계약서는 안 쓰나요?’ 어휴, 어떻게 물어보나. 그대로 집에 가라고 할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대학생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사용자들

 

이런 면접과 아르바이트에 지친 나에게 새로운 면접 기회가 생겼다. 멋들어진 교육 강사 공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관심 있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시급이 3만원이라는데 지원을 안 해볼 수가 없었다. 지원하자마자 연락이 와서 면접 일정이 잡혔고, 대학가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로 찾아갔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들이 우르르 모여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솔직히 저희 금액이 커서 지원하신 분들도 있죠, 하하하. 사실 시급은 아니지만, 시스템상 그만큼은 법니다. 백화점이나 가정 집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에요. 저희는 교육 컨텐츠를 개발하고 교육하는 곳이죠.”

“저희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다보니까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은 있었으면 해요. 아니, 그래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모인 이들은 다들 소위 상위 학벌의 대학생들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모두 치열하게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말했다. 나도 뒤지지 않으려고 별 소릴 다했다. 누가보면 모두 교대생인 줄 알았을 것이다. 면접관은 갑자기 우릴 내버려두고 문제를 던져주고 해결해보라며 나갔다. 무슨 대기업 면접 캠프인 줄 알았는데, 다들 높은 시급이 걸려있으니 열심히 장단을 맞추었고 간절하고 절실하게 굴었다. 

 

 

[사진 2] 모 식당 아르바이트 공고. 요즘 이런 식으로 공고를 쓰는 것이 유행이다. 재미 하나도 없다. 못하는 말이 없는 사용자의 권력과 유해한 해맑음에 머리가 아프다. 요즘 사장들은 만원 정도 주면서 바라는 게 30가지쯤 된다. Ⓒ알바몬

 

 

결과적으로 나는 붙었다. 면접만큼이나 명확한 안내 없이 일방적인 공지로 주5일의 교육이 시작되었고, 나는 매일 오늘 어떤 교육을 받는지, 몇 시간 뒤에 끝나는 지, 도대체 이게 돈을 받긴 하는 건지, 언제 끝나는지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하고 출근했다. 물어볼 수 없었다. 그들이 허구한 날 교육 받다가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며 떵떵거렸기 때문이다. 또 일정 교육이 끝나도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되면 강의를 내보내지도 않는다고 하니, 무기한으로 교육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중에 그 교육을 두고 ‘직업 능력 개발 교육을 무상 제공’ 했다고 했지만 그저 무급 노동 착취였다. 교육 시간마다 고용되지 못할까봐 시키는 대로 연극이며 심리 상담(사전 안내 없는 집단 심리 상담, 집단 사회성 검사 및 결과 전체 공개와 분석)이며 별별 일을 다 했다. 출퇴근 하는 데에 교통비와, 반 나절이 넘는 교육 전후에 사 먹어야 하는 밥값이 상당했지만, 계속해서 ‘강사만 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버텼다.

 

법원은 2019년,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강사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학원강사의 핵심적인 업무인 강의를 담당할 학년과 레벨에 따른 분반, 강의 커리큘럼, 강의진도표, 강의교재, 시험 평가지, 시험시간, 채점기준, 성적표의 작성과 배부 방식은 물론 부수적인 업무인 학부모와 상담방법, 기간, 상담 후 조치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피고가 이를 결정하였고, 학원강사들은 CCTV로 감독받으며 지문인식시스템을 통해 출퇴근 기록을 남기는 등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 · 감독을 받았다는 점, 학원은 피고는 원고들을 비롯한 강사들의 강의시간과 장소를 지정하며, 심지어 강의 1시간 전까지 출근하여 자신의 강의실에 머물도록 지시하고, 지문인식시스템을 통해 출퇴근을 관리하며, 지각 · 조퇴 · 외출을 제한하거나 일정한 제재를 가해,  학원강사들은 이와 같이 지정된 근무시간과 장소에 엄격히 구속되었다는 점을 인정근거로 밝힌 바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는 기준들이다. 

 

어느 날, 사업주는 무림고수에게 인정 받는 것마냥 ‘넌 강사가 되도 되겠다’고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계약서는 A4 한 장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그다지 불리한 내용은 없어보였다. 모든 계약서가 그렇다. 내가 교육 컨텐츠를 빼돌리거나 회사 뒷담화를 마구 하고 다니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어보였다. 단지 ‘회사에서 강사에게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 무상교육이라는 건지 유상교육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것 때문에 짤리면 그 간의 그 비참한 교육들은? 만약에 무상이라면 마땅히 부당하니 이후에 해결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무엇보다도 지난 몇 달의 시간과 돈 때문에 당장 돈을 벌려면 하루빨리 강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확인해 볼 겨를도 없었다. 몇 가지 물어봤지만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강사로서 선택 받는 기로에서 회사 대표와 좁은 방 안에서 단 둘이 그 종이를 두고 나는 글씨를 다 읽지도 못하고 싸인했다.

 

 

회사와의 지난한 홀로 투쟁기 

 

그렇다, 계약에 문제가 생겼고, 결론적으로 나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그 놈의 교육 때문이다. 계약 이전에 받은 교육도 무상이었고, 계약 직후에 강사 자격은 있지만 ‘실전 연습’이 부족하다며 허구한 날 불러서 배우라던 강의 보조도 무상 노동, 또 학생이 배정되어서 밤새 수업을 준비해서 가정에 찾아가 고군 분투하고 받은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도 마음대로 일부를 교육 회차라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모두 계약서에 적힌 ‘교육을 제공한다’는 그 한 줄 때문이었다. 신고를 결정하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교육이라서, 아이를 만나는 일이라서, 내가 돈 때문에 신고하고 일을 관두면 이 아이들한테 혹시라도 죄를 짓는 일일까봐 망설였다. 그런데 그들이 면접 날 우릴 두고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경쟁하게 한 것이 참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20대 초반의 아이들이었다. 근로 계약과 강사 계약의 차이에 대해서도 모르고,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같은 청년들을 쉽게 보는 지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간절해서 몇 달을 무상으로 교육시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 말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합의를 권유했다. 감사하게도 좋은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났는데, 고용주들이 일반적으로 청년 노동자들을 손쉽게 착취하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나에게 상황을 잘 설명해주시고 대표에게 단호하게 대하여 나와 감독관이 상의한 5만원 상당의 적은 돈을 미지급 임금으로 계산하여 나에게 주는 것으로 합의롤 마쳤다. 몇 달의 육체적 노동과 마음고생이 5만 얼마로 감정된 것이 비참했지만, 그만한 결고만으로도 나는 꽤 미더운 승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계약상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강사이기 때문에, 더한 승리를 바라는 일은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싸인한 계약서는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강사 계약서 였는데, 이는 학습지 강사처럼, 회사는 교육을 통해서 강사를 양성하고 교육 컨텐츠와 물품 등을 지급하고 학생을 관리하여 강사와 연결해주고, 강사는 회사와 사업자 대 사업자의 계약으로 학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약서이다. 그러니까 계약상 강사와 회사가 동등한데, 실질적으로 강사가 회사에 비해 약자이기 때문에 이에 관련해서 회사와 싸울 수 있는 판례나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강사가 회사에 얼마나 종속되었는가, 쉽게 말해 강사가 독립적으로 강의하는 사람인가 회사가 거의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인가, 이 근로자성에 따라서 임금 노동자와 같은 권리가 생긴다. 

 

내가 다닌 회사는 가정 집에 도착해서 나올 때까지의 대본이 주어져있었다. 모든 것이 시키는 대로였고, 매 회차마다 전화해서 점검하고 검사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면 나무라기도 했으며, 원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교육을 매번 가서 받아야 했으니, 거의 회사에 종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무사를 준비하는 선배와 연락해보고 이 조항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도 했지만, 감독관은 이를 증명하려면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맞는 말이었고, 소정의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한 것만으로도 그가 매우 노동자의 자존심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했으며, 이만 끝내고 싶었다. 어차피 나는 그 즈음 돈을 다 돌려받고 싶지도 않았다.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 않은 내 잘못일까. 나는 정말로 회사와 대등한 계약자인데 임금노동자의 과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일까. 임금 노동자의 권리가 뭐라고, 나는 임금노동자일 때도 좋은 권리 누려본 적 없는데. 회사와 대등한 계약자인 만큼 내 책임이 큰 걸까. 난 내가 어떤 강사이고 어떤 계약을 하는 지, 아무 것도 안내 받지 못했는데. 돈도 벌지 못했는데, 난 혼자 이렇게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아무도 몰라주는 온 기력을 쏟구나. 과외에 10분 일찍 도착하면 아파트 앞에서 경비원의 눈치를 보면서 서성이며 기다렸다. 난 너무 지치고 메말라갔다. 한 겨울이라, 나의 앙상한 영혼에는 찬바람이 계속 불었다. 

 

회사 대표는 젊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신고하자마자 전화가 와서, ‘신고하셨어요?’ 하고 묻고 끊었다. 쉽게 전화하는 그의 권력이 분했다. 나는 연락 한 번마다 신고 절차마다 고용노동부에서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괴롭고 두려웠다. 며칠 뒤 고용노동부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만큼이나 지쳐보였다. 마치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내 모든 의욕과 분노를 마르게 한 것은 그가 이 계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가 아르바이트가 절실한 어린 대학생들을 시급 3만원이라는 유인으로 데려다 적당한 겁박으로 임금 미지급 교육을 마음껏 시키고, 사실 최저시급도 거의 되지 않는 강사 계약을 하면서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다며 이득을 취하고 있음을 분명 알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사실 그 계약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뭐든지 싸인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노동자들의 모든 문의도 일부러 사무직 알바를 써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계약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업무와 계약에 대해 몇 달간 카톡과 문자로 문의를 몇 번이나 보내도 동문서답의 답장이 왔는데, 신고하자마자 ‘분명 말했다’면서 쏙쏙 이해가 잘되는 간결한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정말로 강사들에게 자신들의 비기를 무상으로 전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소통이 잘 안되는 사람이라며 비난했다. 그는 정말로, 억울해 했다.

 

 

사람은 진정 무엇으로 자라는가

 

계약을 한다면 잘 읽어보고 따져봐야 하고, 함부로 싸인하면 안 된다는 것,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계약에는 실질적으로 ‘갑’인 주도자가 존재하고, 노사 관계에서 유리한 갑을권력과 지식권력을 가진 사용자가 가능한 법의 장(field)에서 얼마든지 노동자들의 존엄을 기만하고 학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중에서도 ‘계약’ 에 대한 지식의 측면에서 주로 약자인 집단들은 노동 시장에서 자꾸만 표적이 된다. 사용자들은 계약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일, 존엄을 위협할 수 있는 일, 인간의 생존권에 관여하는 일에 꾀를 부리는 일이 상품 상세 페이지에 7포인트로 환불 규정을 적는 꼼수와는 전혀 다른 무게의 일이라는 것을 잊은 지 오래다.

 

외국의 한 아이가 ‘학교에서 나에게 가르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올린 SNS가 화제가 되었다. 적절한 보험에 드는 법, 방을 계약하는 법, 근로 계약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같은 것들 말이다. ‘어른'들은 이에 공감하여 교육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스무 살에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었지만 사실 어느 면에서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시험지 위의 문제를 시간 안에 풀 줄 아는 능력만 최고치를 찍고, 나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지 스무 살이 되는 해 1월 1일 세상에 던져져 피해와 좌절의 경험을 통해 우울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뉴노멀 시대’라는 작금의 시대에 온갖 아르바이트 시장 속에 치여 자라는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감성이다.

 

 

정이리리

경희대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