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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⑩ 콜센터 상담노동자는 기업과 고객 사이의 에어백이 아니다 | 칼럼

  • 정이리리
  • 2021-06-15 18:18
  • 421회

 

대학 진학을 준비했더라면 모두들 대학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바쁜 삶을 상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상상력이 부족했다. 내가 떠올린 청춘 드라마 속에는 골프장 카운터에서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받아주는 일도, 각종 콜센터 칸막이에 갇혀 목소리와 마음까지 AI가 되려고 노력하는 일도, 일일 노래방 도우미로 술마시며 노래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콜센터는 여성을 선호한다. 웃음과 친절을 파는 일이고 그것은 ‘여성성’이니 당연하다. 나는 퓨전 떡볶이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서도 나의 여성성을 팔고 있음을 느꼈다. 사장은 그릇을 많이 들거나 무례한 손님을 압도하는 ‘남성성’을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저 아무리 지쳐도 밝게 뛰며 다정하게 웃고 사랑스럽게 말하길 바랐다. 콜센터 직원 수십 명을 뽑으면 남성은 한 라인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다. 상담업체도 남성 상담원은 고객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만 일해 보면 알 수 있다. 돈이 안 맞기 때문이다.

 

상담은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나뉘는데, 인바운드는 고객 상담이나 서비스 접수 등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아웃바운드는 카드나 보험 신규 개설 등 새 고객이나 구매를 끌어오는 일이다. 고객 상담 업무(인바운드)의 경우 사용자는 CS(Customer Service)교육(고객 만족·고객 응대 교육)을 비롯한 각종 교육을 통해 고객에게 친절히 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상담노동자가 한없이 친절하기만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상담노동자는 친절하되, 회사의 이미지나 보상 제도를 최대한 소비하지 않고 본인의 감정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불만 상담을 예로 들면 고객의 불만과 분노를 해결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방침 및 보상이 준비되어 있지만, 회사는 일단 상담노동자의 감정을 최대한 착취해서 해결을 기대한 다음, 최후의 방침으로 경제적 손실을 고려한다. 그게 싸다.

 

 

회사의 이윤을 위해 감정 노동을 ‘알아서’ 극대화해야 하는 상담 노동

 

상담노동자의 감정 착취로 회사의 손익을 조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상담 노동자가 고객에게 전화하거나 받을 때부터 전화가 종료될 때까지의 과정은 맥도날드화되어있다. 맥도날드화란 말 그대로 노동을 맥도날드 햄버거 만드는 것처럼 모든 과정을 분업시키고 세세한 수치로 제도화시켜서 효율성과 통제성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문제는 사람과 노동은 햄버거처럼 정확히 나누어지지도 않고 미세하게 계산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던 모든 사업장에서 몇 분의 전화 통화를 위한 A4 8장에서 10장 상당의 대본을 받았다. 대본에는 Plan A부터 Z까지, 돌발상황 A부터 Z까지 상담노동자의 대사와 대응 규칙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떤 상황도 완벽히 대비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 상담노동자들은 웬만해서는 여기 마련된 몇 가지 상황 분류 안에다가 수 없는 실제 상황들을 전부 포함하도록 강요받는다. 회사의 서비스 및 규정의 빈약함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나 일상적인 성희롱, 폭언, 멸시 등을 예외 상황으로 규정할 권력이 상담노동자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상부에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회사가 맥도날드화할 수 없는 인간의 상황들을 단순 규정했기 때문에 당연히 하루에도 수십 번 발생하는 예외 상황들을 매번 이야기하는 피로와 책임이 상담노동자에게 전가되어 있다. 이렇게 어렵게 얘기하지 않아도, 어떤 매니저가 불만이 많은 상담노동자를 좋아하겠는가?

 

이런 시스템 속에서 상담노동자들은 대부분의 상황을 칸막이 안에서 스스로 해결한다. 고객이 화내도 일단 듣고, 성희롱도 분하지만 일단 듣고, 아주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일단 듣고 모두 친절하게 답한다. 최대한 감정을 받아내어 상부로 연결되지 않으면 제공된 상황 범주 내에서 해결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부로 연결되면 상부에서 나서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회사 차원의 사과를 하거나 보상을 하게 된다. 여러모로 상담노동자 입장에서 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교육받거나 혼나기도 한다. 그래서 콜센터에서는 그저 죄송하다고만 하는 사람도 일 잘하는 사람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함부로 죄송하면, 회사의 잘못이 된다. 회사까지 넘어가지 않기 위해 상담 노동자는 제 잘못이라며 염불을 왼다.

“고객님, 제가 잘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도와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감정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똑같이 생긴 칸막이 안에서 전화기, 헤드셋, 노트북을 두고 63번이라는 번호로 불리면서 종일 똑같은 대본을 읽다가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우리가 아직 AI보다 싸니까 여기에 모여 이렇게 함께 상처받으며 이 돈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콜센터노동자들이 모두 특별한 말투를 교육받는 줄 알았는데, (일부는 그런 곳도 있지만) 그저 일하다 보면 자연히 일정한 목소리를 갖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자본주의 목소리’라고 부르는데, AI처럼 감정이 없고 고저가 적으나 친절해야 한다. 종일 감정 소모를 하다 보면 스스로 그렇게 되는 편이 좋다. 그리고 고객 또한 ‘인간적’으로 친절하게 구는 ‘실제 사람’보다 AI에 가깝게 행동할수록 그저 볼 일을 처리하고 전화를 종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상담 노동을 감정 노동과 일치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콜센터노동자를 함부로 대하고 존대 받으면서 여성성과 인간성을 소비한다. 앞서 말한 고객들이 남성 상담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마음껏 기분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의 CS 교육(고객 만족·고객 응대 교육)에서 고객의 ‘인정 욕구’를 파악하고 해소해주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내용을 CS 전문 강사가 공식 교육 자리에서 몇십 명의 노동자를 앉혀놓고 당당하게 강의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사진]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콜센터 상담원 CS 교육과 관련된 설명이다. 기업은 CS 교육에 돈을 많이 투자한다. 아침에는 누굴 만나도 얼마든지 웃으면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노동자들이 하루하루 말라가기 시작하면, 기업은 CS 교육을 통해 고객에게 다시 '스마일' 할 수 있도록 각종 레크리에이션과 간식, 교육 시간 등을 통해 윤활유를 억지로 붓는다. ⒸCS쉐어링

 

고객의 불편과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감정노동을 함께 제공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당신은 길을 물어본 사람에게 답해줄 때, 황제를 모시는 시녀같이 구는가? 사용자뿐 아니라 모든 고객, 즉 사회가 상담노동자를 그렇게 여기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고객이, 그저 화가 나서 전화기에 대고 일단 무슨 소리든 질러보다가 화가 가라앉으면 끊는다. 그것은 천둥 같은 폭언이기도 하고, 나긋나긋한 무례와 멸시이기도 하다.

 

누군 울며 뛰쳐나가고, 누군 수화기를 던지고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몇십 분을 수화기를 붙잡고 뻘뻘 대도 매니저, 동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그것을 받아주는 일이 우리가 하는 ‘콜센터 노동’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이리리

경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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