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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⑧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 2 | 칼럼

  • 혜리
  • 2021-05-18 17:31
  • 310회

 

 

한국에서 ‘술집 여자’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은 익숙하지만 여자로서 ‘술집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곳이 어떤 술집이든간에, 칵테일바이든 맥주 전문점이든 그냥 포차이든, 술집은 “여자가 일하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하지만 그럼에도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있다. 시급이 비싸기 때문에 맥주잔을 양 손에 세 개씩 들고 나르는 여자들, 칵테일을 배우고 싶어 칵테일바에서 알바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 손님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되어 팁을 받는 경험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다양한 고민을 거듭하지만 술이 좋아 일을 계속하는 여자들이 있다. 지난주에 이어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둘의 대화를 담았다. 우리 대화가 ‘술집 여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 기사에서는 질문자였던 혜리가 질문에 답하는 인터뷰이로, 반대로 초록이 질문자로 서로 역할을 바꾸어 진행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펍에서 일했던 혜리입니다. 페미니즘과 노동권에 관심이 많고 동시에 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나와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펍에서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있을까요?

2017년에 맥주전문 펍에서 4개월간 일을 했는데, 당시 여행자금 모으려고 비싼 알바를 찾는 과정에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시급이 만원이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최저임금이 6470원이었으니 시급이 쎈 편이었어요. 야간수당도 챙겨주고, 새벽에 일이 끝나서 집에 가는 택시비도 챙겨주고요. 외국인이 많이 와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하면 영어회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점도 고려했어요. 물론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요(웃음).

 

Q. 설명을 들으니 꽤 좋아하는 장소였던 것 같아요. 매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주문을 받고, 칵테일 만들고, 맥주 따르고, 안주도 서빙하고, 테이블 정리도 하구요. 음료를 만든다는 점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랑 비슷했고. 다른 점들은 음식점이랑 비슷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아르바이트랑 다를 게 없었던 거 같아요.

 

Q. 정말 술집이 돌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일하셨네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재미있었나요?

손님들이 맥주 종류에 대해 물어볼 때 재미있었어요. 생맥주가 거의 여덟 가지에서 열 가지 종류가 있었고, 그걸 잘 설명하고 싶어서 맥주 종류에 대해 공부했어요. 직접 마셔보면서 맛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모르는 술에 대해 알 수 있던 것도 흥미로웠고요. 예를 들면 와인 따르는 방법을 자세하게 배웠었는데 와인 코르크마개를 손님 테이블에 두고 가야하고, 와인로고가 보이게 병을 놓아야 한다던지, 한 손에 와인잔을 여러 개 드는 방법이라던지 그런 것들이요.

 

Q. 펍이라고 하면 축구경기를 보면서 짠하고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이 그려지는데요. 혜리씨가 일하던 펍도 그랬나요?

맞아요. 아일리쉬 펍이어서 외국인이 많이 오는데 특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외국인 손님들이 진짜 많이 왔어요. 큰 스크린에 경기 생중계를 틀고, 이벤트 하는 사람들이 와서 내기를 걸고, 표로 맥주도 사며 축제 같은 분위기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죽어나지만…(웃음)

 

Q. 사람이 많으면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환경에 있다 보니 덩달아 신이 난 것도 있구요. 앞에서 자기소개할 때 일 잘하는 것에 대해 말했는데, 바쁠 땐 그런 게 더 잘 드러나잖아요. 일의 효율성과 정확한 기억력, 메뉴 나가는 동선을 신경 쓰면서 일하는 게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서 스스로가 일을 잘 했다는 게 드러나는 것도 좋았어요.

 

Q. 즐거운 일이 많으셨던 것 같아 묻기에 조심스럽지만, 펍에서 일하면서 인생의 가치관과 부딪혔던 경험도 있으신가요?

일 할 당시에는 어떤 사건들이 내 가치관이랑 안 맞았다고 생각하기보단 성격이랑 안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성격인데 펍에서는 불편한 손님이 하는 이야기나 나보다 오래 일한 사람과 대화할 때 바로 표현을 못했거든요. 특히 사장한테 그런 게 있었어요. 택시비를 지원해주는 곳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역 특성상 새벽에 차가 많이 막히고 택시도 안 잡히고 그런 곳이라, 한참 기다리다가 좀 많이 돌아가서 택시를 잡은 날이 있어요. 그래서 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나왔는데, 사장이 금액 보더니 집에 간 거 맞냐, 다른 데 간 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평소보다 몇 천원 더 나왔는데 말이죠.

 

Q. 뭔가 불편한 편견으로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 안 갔으면 뭐 어쩔 건데 라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괜히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말했던 걸 수도 있겠다 싶네요.

 

Q. 우리는 그냥 일을 하는 거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다르잖아요. 스스로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주변에 펍에서 일한다고 말한 뒤에 부연설명을 많이 했어요. 맥주를 파는 곳이고, 어떤 분위기인지 이런 것들이요. 친구들도 많이 초대하고 아빠도 데려왔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스스로 걱정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상한 술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봐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데려오려고 했었던 건 같기도 하네요. 

 

Q. 저는 어디서 일하든 '아가씨'라는 말을 참 싫어했는데, 그게 대상화하는 말이라 그랬던 거 같아요. 혜리씨도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여자로 대상화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엄청 많죠. 사실 일할 때 내가 무성적 존재로 간주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 때는 꾸밈노동을 열심히 하고 다녔던 때이기도 하고.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제 스스로가 항상 의식하면서 일했던 거 같아요. 인사할 때 목소리 톤을 높인다던지, 어색하지 않게 웃는 연습을 한다던지 하는 부분들이요. 그리고 처음부터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다르게 봤던 거 같은데, 여자만 유니폼을 입었거든요. 치마바지를 입었는데 짧은 편이라 불편하기도 했고,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어요.

 

Q. 시선들이 엄청 신경 쓰였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칵테일바 뒤로 큰 스크린이 있어서 뮤직비디오를 트는데 미국힙합의 선정적인 뮤직비디오를 엄청 틀었어요. 그 장면이 뒤에 나오고 앞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데 너무 불편했어요. 여성이 도구로 인식되는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바로 앞에 내가 있으면 정말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되기 더 쉬운 거잖아요.

 

Q. 어떤 건지 상상이 가요. 타인에 의해서 여자로 인식된 경우도 있었나요?
대놓고 내가 지금 여기에 ‘여자’로 있구나,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불편한 말들을 들었을 때 같아요. 외모 평가도 들어봤고, 일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며 기다리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하나씩 떠올리기 불쾌할 정도로 별 사람이 다 있던 거 같아요.  

 

Q. 듣기만 해도 너무 불쾌하네요. 지금까지는 여성노동자로서 대상화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해고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얘기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바를 12월까지 하기로 했는데, 10월 즈음 갑자기 해고를 당했어요. 그 때 억울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이래도 되는지 신고하고 싶어서 알아보니까 제가 알았다고 대답했으니까 부당해고가 아니더라고요. 나는 분명 짤렸는데, 당황스러웠어요.

 

Q. 알았다고 해서 부당해고가 아니라니, 저도 방금 알았네요. 끔찍해요!

나중에 듣기로는 그냥 사장에게 따져서 물어보는 녹음파일이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 그 때는 몰랐으니까요. 그 때 감정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는데 그 일이 저한테 엄청 중요했다기보다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짤릴 수 있다는 게 무섭기도 했고. 12월까지 바짝 돈 벌어서 1월에 여행 가야 하는데 돈은 어떻게 버나 싶고. 그리고 저는 사장님이랑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감정이 참 복잡했어요.

 

Q. 부당해고가 아니었다면 신고도 못 한 건가요?

부당해고는 아닌데 주휴수당 못 받은 걸로 신고했어요. 두 달 동안 새로 일 구하기도 어렵고, 당장 돈은 필요하니까요. 사장에게 배신감 느꼈던 것도 있고요. 그래서 결국 3개월 주휴수당으로 80만원정도 받아서 급한 문제는 해결됐었어요. 물론 다른 일일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야 했지만요.

 

Q. 신고는 생각만 해보고 못 해봤어서 정말 멋있어보여요! 신고 과정은 어땠나요?

생각보다 신고과정이 간단했어요. 도움이 되었던 게, 매일 일한 시간을 적어두는 달력이 있었거든요. 월급 계산하려고 그 달력을 월마다 찍어갔었는데 주휴수당 신고 할 때 유용하게 쓰였어요. 주휴를 포함한 임금이 바로 지급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내가 미리 잘 챙겨놓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정말 내가 미리 챙겨야 하는 게 참 많은 거 같아요. 모든 사업장이 법대로 잘 지켜준다면 참 좋을 텐데요.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술집에서 일한 경험을 돌아보면서, 불편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일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안전하고 즐겁게 하고 싶으니까요.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거 같아요. 사회가 바라보는 ‘술집’에 대한 이미지도 다시 말하고 싶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로서 하는 일이 비숙련 노동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싶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하고 싶고 동시에 이에 대해서 인정도 받고 싶으니까요. 아무튼. 다음에는 그런 불편하지 않은 술집에서 꼭 일해보고 싶어요. 그 때 놀러오세요! 서비스 많이 드릴게요(웃음). 

 

 

*편집자 주 : 그만두라는 사업주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의미로 알겠다고 하는 경우 그것이 곧 근로계약 해지 의사표시에 동의를 한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다만 부당해고를 다투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반드시 해고 통보를 받은 그 당시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니 "언제언제까지 일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들어서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계속 일하고 싶은데 해고되는 이이유에 대해 설명부탁드립니다" 등을 사용자에게 물어 근로관계 종료 사유가 '권고사직'이 아니라 '해고'임이 드러날 수 있도록 전화나 문자 등으로 입증자료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글·사진

혜리

권리찾기유니온 조합원 /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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