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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⑦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 | 칼럼

  • 혜리
  • 2021-05-11 20:32
  • 437회

 

 

한국에서 ‘술집 여자’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은 익숙하지만 여자로서 ‘술집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곳이 어떤 술집이든간에, 칵테일바이든 맥주 전문점이든 그냥 포차이든, 술집은 “여자가 일하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하지만 그럼에도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있다. 시급이 비싸기 때문에 맥주잔을 양 손에 세 개씩 들고 나르는 여자들, 칵테일을 배우고 싶어 칵테일바에서 알바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 손님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되어 팁을 받는 경험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다양한 고민을 거듭하지만 술이 좋아 일을 계속하는 여자들이 있다. 앞으로 2주간의 연재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둘의 대화가 담길 예정이다. 우리 대화가 ‘술집 여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저는 초록입니다. 나무랑 풀의 푸름이 좋아서 초록색을 좋아하게 됐구요. 재미있게 읽은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좋아하는 인물의 이름이 미도리(일본어로 초록)이라서 더욱 좋아하게 됐습니다. 한 살이 되어가는 두 고양이의 엄마입니다.

 

Q. 아르바이트는 언제부터 했나요? 그동안 해온 아르바이트도 같이 소개해주세요.

알바는 고3때부터 했을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 쉬고, 7년동안 계속 일했던 거 같네요. 과외, 카페, 당구장, 피씨방, 뷔페 서빙, 빵집, 사무보조, 옷가게, 물류 상하차….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알바를 해왔어요. 지금은 위스키를 전문으로 파는 칵테일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남들이 쉽게 하기 어려운 알바들도 많이 하셨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알바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경험이었어요. 남들은 안해봤을 경험이요. 인형탈 연극같은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을 해보려는 생각에서 가능했어요. 칵테일바나 클럽에서 일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사실 멋있어 보여서 끌린 것도 있어요(웃음).

 

Q. 클럽 알바도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맞아요.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면접을 봤어요. 제가 낯을 잘 안 가리는 성격이고, 술이나 춤추는 걸 좋아해서 잘 맞을 것 같았어요. 클럽에서는 흔히 ‘삐끼’라고 하는,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클럽 고객을 모으는 일을 했어요.

 

Q. 클럽이면 밤에 일했겠네요.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근무하다보니 술 없이 일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이 끝나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밥 먹으면서 술 마시고, 집 가서 바로 잠드는 생활을 6개월 정도 했어요. 밤에 잠도 못자고 매일 술 마시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았죠. 그래도 제일 많이 웃으면서 일한 시기였어요.

 

Q. 새벽 근무면 시급은 높은 편이었나요?

시급보다는 일급 개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몇 시에 끝나든 똑같이 이틀에 15만원을 받았어요.

 

Q. 2019년 최저시급 8,350원으로 계산하면 야간수당, 주휴수당은 포함 안 된 금액 같은데요. 하루에 9시간 근무면 중간에 쉬는시간은 있었나요?

쉬는시간은 딱히 없었어요. 시급 계산은 따로 안 해봐서, 주휴수당이나 야간수당은 신경 안 쓰고 일한 거 같아요. 사실 아르바이트 중에는 그렇게 맞춰 주는 곳도 많지 않고. 근속이 쌓이면 만원씩 올려주기도 해서 나중에는 18만원까지 받았어요.

 

Q. 22시부터 6시까지가 야간근로인데, 하루 9시간에 9만원이면 야간수당도 못 받는 금액이네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었나요?

6명 정도 같이 일했는데 전부 아르바이트 노동자였으니, 상황은 비슷했을 것 같아요. 남자직원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돈을 조금 더 받는다고 했어요.

 

Q. 여자 알바생도 좀 있었나요? 전단지 나눠주는 사람 중에 여자는 못 본 거 같아요.

대부분 남자가 많죠. 여자 직원들은 사람들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인 바에 주로 있어요. 홀에서 일하다보면 여자직원들은 성희롱이나 성추행도 많이 당했구요. 특히 홍대는 외국인이 많고, 옐로피버('옐로 피버'의 사전적 의미는 '황열병'이지만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인종적 페티시, 특정하게는 성적 강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도 엄청 심해요. 하루는 밖에서 일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와서 “너 얼마냐” 묻기도 했어요. 홀에서 잠깐 일한 적 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때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화를 내면서 사과하라고 해줬어요.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일 자체는 적성에 맞아서, 힘든 일이 있어도 재미있게 했던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전단지를 나눠줄지, 덜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아마 이런 일이 맞았던 것 같아요.

 

Q. 보통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그와는 다르게 일하신 것 같아요. 최근에는 칵테일바에서 일한다고 하셨는데, 요즘 근무하는 곳은 어떤가요?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이번 칵테일바에 오기 전, 다른 바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사업주에 따라서 가게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 했어요. 처음 일했던 곳은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입사할 때부터 사장이 “내가 너한테 불편한 것도 있을 테고 네가 나한테 불편한 것도 있을 텐데. 그냥 각자 알아서 참자.”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여기는 불편한 걸 말할 수 없는 구조구나.' 이후로 사장에게 성희롱도 당했고,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에 대해 사장이 하는 뒷담화를 계속 들어야 했어요. 불이익이 있을까봐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Q. 굉장히 불편한 일터였네요.

네. 한 번은 사장이, 자기가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려다가 터치가 있었는데 무슨 성희롱 취급하듯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뿌리쳐서 기분이 나빴다고, 그 직원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이유 없이 터치하는 경우가 좀 빈번하고 다들 그걸 싫어했어요. 실제로 사장이 말을 건다는 명목으로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자주 했고,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방어는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터치하지 못하게 팔짱끼고 이야기를 듣는 거였어요.

 

Q. 알바하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죠. 술집에서 일하면서, 여성이자 불안정 고용 노동자로서 또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사장에게 말하지 못하는 게 가장 스트레스였어요. 또 한 번은 손님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는데 머리를 짧게 자른 사진을 보고 ‘너 페미냐, 탈코했냐’ 하니 뭐라고 대답할지 난감했었어요. 불편함을 느껴도 그걸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반면에 그곳을 그만두고 새로 일하게 된 칵테일바는 이전과 달리 이런 일이 있다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지금 일하는 곳은 다행히 전과 분위기가 다른가 보네요.

사장이 다르니까 분위기가 완전 달라요. 사실 위스키 파는 곳에 대해 좀 편견이 있긴 했는데, 뭐 남자와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오해 있잖아요. 막상 일을 해보니 다른 음식점이나 카페와 다를 것 없더라고요. 그냥 커피 대신 술을 내주는 거죠.

 

Q. 페미니스트인 나, 그리고 술집에서 일하는 나의 정체성 사이에 갈등이나 고민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떤 고민이었는지 궁금해요.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어떤 사람이랑 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럽에서 일할 당시, 공공연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변 동료들이 모두 잘 들어줬어요. 그래서 페미니스트인 나로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의 생각과 결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말을 잘 안하게 되잖아요. 처음 다녔던 칵테일바처럼요.

 

Q. 그러게요. 일터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잖아요.

모든 순간에 나로서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남의 돈을 벌어가는 입장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하는데 불편하면 안되니까,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데 지금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그렇게 인식되지 못하고 나쁘게 인식되니까…. 오래 일하기 힘들까봐 내 선에서 적당히 꾸며내는 경우도 많아요.

 

Q. 페미니스트로서 산다는 것이, 여성인 나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런 인터뷰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일터에서 내가 원하는 나에 더 가깝게 나 자신으로서 일하고 싶어요. 일하면서 정말 많은 사장들을 만나봤는데,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과 닮으면 절대 안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최근 들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사장이 된다면 전자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법적인 문제나 급여 등 경제적 부분은 정말 깔끔하게 처리하고 사람으로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이고 싶어요.

 

Q. 지금까지 일했던 사장들에게 전하는 말 같네요.

맞아요! 좀 사람답게 삽시다, 사장님들. 아르바이트생도, 술집 여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글·사진

혜리

권리찾기유니온 조합원 /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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