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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④ 노동 마주하기, 당신과 마주서기 | 칼럼

  • 허가영
  • 2021-04-20 18:03
  • 490회

 

‘노동’이라는 단어는 나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 단어였다. 평범한 대학생은 낭만에 가득 차 있었고 노동의 고단함을 애써 그려보지 않았다. 나는 늘 그랬듯이 노동이 아닌 공부를 하는 학생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성장을 꿈꿨지만, 노동과 얽힌 이야기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 노동하는 나를 동경하면서도 그것을 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 언어가 부재했고, 그렇기에 더욱 나 자신을 노동자로 정체화하지 않았다. 노동은 내게 이질적인 무엇이었다. 어쩌면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 자체를 거부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흔히 노동 의제에 있어 사회가 호명하는 ‘노동자’의 위치에 서지 않을 것이란 안일하고 거만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짧은 기간의 과외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나의 노동자성을 마주한 것은 학생 신분을 처음으로 벗어났던 인턴 경험이었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기업에 인턴으로 입사를 했다. 첫 회사 생활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자 흥미진진한 도전이었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찍힌 계약서에 서명하고, 월급을 받고,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 일은 낯설었지만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자리를 지키고 받은 급여를 세어보며 생생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직장인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 출근길에서 나의 노동자성을 문득 깨닫곤 했다. 내가 이 사회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명의 ‘노동자’라는 것, 그리고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어떠한 형태든 노동을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이 내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노동자성을 한층 뚜렷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평화로운 일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였기에, 모든 밑 작업을 단기간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까마득한 막내인 나는 폭설처럼 쏟아지는 작업량에 허덕이면서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오후 7시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했고 밤 11시, 심지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다. 주말 출근 또한 당연했다. 그러나 초과근무에 대한 정당한 급여는 받을 수 없었다. 지나친 업무와 이에 따른 보상이 부당하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휴가 3일 지급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근무 공간에서 인턴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제일 어린 여자이기도, 스펙을 쌓아야 하는 대학생이기도 했다. 회식 후 노래방에 가면 모두가 입을 모아 내게 장난처럼 “재롱을 부려보라”라고 마이크를 손에 쥐여줬다. 회식을 안 가면 눈치 없는 막내가 되었고 다음 날 은근한 힐난을 받았다. 복장 규제가 없었지만, 다른 인턴들에 비해 편한 착장을 입고 출근을 했던 나는 “20대인데 치마도 입고 좀 꾸며라”라는.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들었다. 이후 일을 했던 다른 근무 환경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사적인 심부름을 다른 직원들 몰래 어린 내게만 강압적으로 시키는 일도, 회의 시간 약속을 상습적으로 어기면서도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사과 한 번을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놀라운 사실은 내가 속했던 근무 환경이 직원 복지가 잘 되어있기로 유명한 회사였다는 것이다. 불안한 일자리에 우울증이 온 비정규직 친구부터 부당한 노동 행위를 요구받고도 묵인해야 하는 친구, 정당한 정규 노동을 하는데도 무급으로 일을 해야 하는 친구까지. 고개를 들자,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노동문제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청년들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스펙이나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이유를 악용하여 동일한 노동을 해도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상황,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의 악순환을 끊임없이 목격했다. 비정규직 청년, 나아가 정규직 청년들의 노동 가치마저도 손쉽게 지워버리고, 하나의 스펙이라 나태하게 위로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았다.

 

분노했지만 지나쳐야 했던 순간들 속에서 나는 노동자성과 노동권을 마주했다. 나의 노동이 노동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이 쌓여 마음 안에 권리에 대한 고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점차 가까이는 학내에서, 멀게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노동 투쟁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문제는 내가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근본에는 명확한 공통의 문제가 자리했다. 부당 노동행위를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 노동에 가치가 정당하게 부여되지 않는 뒤틀린 사회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용역업체의 갑질과 당연한 초과근무를 견뎌야 했던 학내 청소노동자, 집단해고를 당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극심한 성차별을 경험했던 KEC 구미지회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노동을 떠올린다. 내가 감히 나의 노동과 그들이 겪은 부당한 노동을 동일시하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분명 공유하고 공감하는 의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노동을 경험한 나는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어느새 다양한 노동자들과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청년인 나는 노동자성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부당한 노동 현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을 원한다. 그러므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한다. 동시에 성차별 없는 노동을 사회에 요구하기에 여성 노동자들과 연대한다. 건강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싶기에 입을 열고 펜을 든다. 결국 나의 노동을 뒤집으면 당신의 노동을 마주할 수 있다. 연대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노동을 마주하고, 당신과 마주한다.

 

 

허가영

권리찾기유니온 조합원/연세대 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