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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는 사람들] ② 감자의 뒷짐 | 칼럼

  • 정이리리
  • 2021-04-06 14:05
  • 758회

 

나는 대학생이니 맑스를 배웠다. 부끄럽지만 대학생 수준에서 배웠다고 할 만하다. 나를 조직하고자 했던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 세미나도 하고 여러 현장을 다니며 노동의 일면들을 목격했다.

 

충신은 옳은 말을 하여 죽고 나라에는 간신만 남는다고 하였다. 내가 입학한 경희대는 그랬다. 내가 입학한 2016년에 이미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대학을 설립하는데 일조한 수많은 강사들은 계약 미연장의 이름으로 해고되었고, 16년 이후에도 남은 몇 명의 강사들이 더 해고 되었다. 남은 경희대 교양 교수들이라도 각종 철학 학위로 척척박사를 땄으니 맑스는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맑스를 담았다가 비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마주할까 두려운 것인지, 자신의 강의실에 앉아 있을 지도 모르는 등푸른 맑시스트 청년들이 두려운 것인지, 허공에 대고 자꾸만 맑스를 해명하고자 했다.

 

“맑스는 그 시대에 대단한 경제학자였을 지는 몰라도 이제 시간이 많이 변했습니다. 노동자가 이렇게 많아졌고 노동조합이 생겨났지만 노동자가 뭉친다고 해서 반드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았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4차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노동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운 사람들은 협박을 이렇게 한다. 옛 학자들의 분석을 통시적으로 전부 탁월하게 끼워 맞출 수 없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러나 이를 빌어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의 연대를 폄하하는 데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겼다. ‘연대하면 밥그릇이고 뭐고 숟가락도 못 챙길 줄 알아라.’ 연대는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으름장이자, 연대는커녕 근대적 인간상보다도 더 자기착취적인 인간상으로 본인을 다듬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더불어 그들은 청소 노동 투쟁가들이며 해고 투쟁 강사들이 귀족노조라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듯했다.

 

 

2016년, 경희대 청소노동자 모두 총장실로!

 

경희대학생들은 청소노동자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경희대학교에는 시민교육이라는 사회참여형 필수교양이 있는데, 허구한 날 청소노동자 인권이며 인식개선이랍시고 스티커 붙이기 인식조사를 하고 박카스를 가져다드린다. 이런 위선적인 선민의식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스스로 시말서를 씀이 마땅하다. 하여튼 팀플 과제도 아니며 ‘불쌍한 청소노동자 돕기’도 아닌 청소노동자의 당당한 권리찾기 투쟁 현장에 참석한 학생은 우리 과 학생 몇 명뿐이었다.

 

집결지에서 두 청소노조와 관련 학교 본부 부처장과의 협상이 부결되자, 내가 참석한 쪽의 노동조합원들은 준비한 듯 짐을 싸서 본관으로 행진했다. 그들은 결연하고, 다부지고, 늠름했다. 부당한 성적 매김 하나 가지고 교수랑 싸우자고 할 때도 내 동기들은 벌벌 떨었는데, 그들은 본인의 일자리와 생계를 걸고 마치 거리 위의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전진했다. 운동과 행진이 죽은 아름다운 대학 전경에 그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었으며, 감히 그들을 막기 위해 준비된 인력도 없었다. 투쟁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우리는 그냥 잘 걸어서 본관 내 총장실에 도착했다. 총장? 총장은 이미 튀었다.

 

“총장이 튀었대요”

 

입금 협상 간담회 정도를 보게 될 줄 알고 참석했는데 어쩌다 총장실 점거의 현장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연락을 받은 과 내 학생단체들이 소수 집결하고 친구들도 왔다. 나는 가까운 자취방에 가서 이불도 가져오고 따뜻한 옷을 얼마 챙겨왔다. 처음 내가 외부인인 줄 알고 경계심을 겨누었던 노동자분들도 나와 말을 트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힘들게 모여서 맘 먹고 오신 건데 총장이 없어서 어떡해요“,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여기서 살랍니다”, “총장이 겁쟁이인가 봅니다”, “그러게요. 저희도 이렇게 내뺄 줄은 몰랐네요. 학생은 추운데 집에 가서 공부해야지요”, “원래 집에도 잘 안 가고 공부도 잘 안 합니다”, “귤이라도 드세요”.

 

우리 오늘 이렇게 만나 이렇게 총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귤을 까먹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상 속의 노동자들을 아마 무시했던 것 같다. 내가 본 좌파 소설 속에서는 노조를 만들기 두려워하거나 잘 모르는 노동자들을 학생들이 몸을 불살라 계몽하여 앞장서 나가 싸웠는데 말이다. 오늘 아무것도 걸지 않고 자취방 이불만 참조한 나는 이들에게 귤을 얻어먹으면서 그들의 용기와 결의에 말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씩씩한 조합원분들 덕분에 무섭지 않았다. 친구들과 고려대 총장실 의자는 2천만 원짜리라는데, 저거는 몇천만 원 짜리냐, 그런 소리나 나누었다. 나도 한 싹수 하는데, 노동자분들도 만만치 않게 한 싹수하는 멘트들로 시위 피켓을 만들어 벽을 도배했다.

 

‘자회사 필요 없다. 직고용!’
‘정규직은 우리의 희망! 비정규직은 우리의 절망!’

 

[사진] 경희대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에 붙인 피켓들 Ⓒ 정이리리

 

 

결국 자회사는 설립되었지만, 당신의 뒷짐을 내가 기억합니다

 

그들의 운동은 하룻밤에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모든 준비가 됐는데, 일주일이면 일주일, 한 달이면 한 달의 농성을 할 준비가 되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당시 경희대학교는 청소노동자 ‘자회사 모델’을 상생 모델이라며 처음 제시했던 대학교였고, 이에 대해 계속해서 총학생회장과 두 노조위원장을 따로 회유하고 있었다. 아무 책임자도 오지 않던 총장실의 늦은 밤, 드디어 한 양복을 차려입은 이가 사람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구호를 외치거나 질문했고, SNS 라이브를 촬영하기도 했다. 그는 뚝 나온 배를 내밀고선 뒷짐을 지고 키가 작은 청소노동자들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깔봤다. 직원들이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자 부총장이라는 그가 한마디 했다. “이러시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부총장은 언론에 이 시위가 매우 나쁘게 나갈 것이기 때문에 협상이 좋게 진행될 리가 없으며, 질문들에 대해서는 총장도 권한이 없고 본인도 일절 권한이 없다며 나른하게 말했다. 협박은 잘 먹혔고 자회사 설립에 관해 이미 운영진을 회유해둔 것이 있으니 순조롭게 협의가 진행되었다. 조합원 노동자분들과 학생들은 괜찮다니 영문을 모르고 집에 갔다. 더 싸워야 했는데, 그냥 살림살이를 다 챙겨가 깔아놨어야 했는데. 한 선배는 분이 풀리지 않아 다음 날 밤 술 마시고 이불을 들고 본관 분수대에서 잠까지 잤다. 그 때 생긴 자회사는 2021년인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열병을 만들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권위적인 교수가 나를 휘두르려고 할 때마다, 알바의 사장이 나의 임금을 떼먹으면서 무섭게 굴 때마다, 나를 평가하는 자리에 앉은 이가 나를 떠볼 때마다, 종종 그의 뒷짐을 생각한다. 여기 청소노동자분들 중 제일 어린 사람도 당신보다 나이가 많겠는데, 나이를 떠나서 나도 당신 학교 학생인데, 어딜 감히 부총장이, 단지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인데, 이런 자리에 나와서 뒷짐을 하고 그런 눈빛을.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자본가가 하등 하찮은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구나. 그리고 시선은 짧지만 지나온 나날 동안 만난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위선이었고, 앞으로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알바,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 노동자로서 마주할 눈빛이었다.

 

 

누가 내 앞에 선을 그으면, 한 번 밟아보기

 

청소노동자들을 결연하게 단결하도록 만든 이유가 비참한 노동 환경이든, 부당한 노동 조건 혹은 생계의 위협이든, 노동조합 지부의 능숙한 조직 작업이든, 혹은 그 전부든 간에 청소 노동자들은 결국 거대한 자본주의적 사회 이데올로기 속에 묻히지 않고 우렁차게 생존과 인간성의 목소리를 냈다. 난 그들이 총장실까지 행진하면서 부르던 노래와 그 날의 햇살을 기억한다. 그래, 만일 우리가 좀 더 오래 농성했다면 어쩌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조합원분들이 결정하고 헤쳐나가기로 한 문제들이었으므로 우리 학생들은 이후 대부분 관여하지 않았다(몇몇 학내 단체들은 꾸준히 연대하였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투쟁과 연대의 경험은 나에게 어떤 용기를 주었다. 누군가 내 발 앞에도 선을 긋고 더는 안 된다고 겁을 준다면, 일단 밟아보겠노라. ‘지금 내가 권리하고자 하는 것이 과한가?’ 내 권리의 감각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 나는 그 청소노동조합원분들의 노래와 부총장의 뒷짐을 생각한다. ‘에잇, 일단 밟아보자.’ 왜냐면 내 권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테고, 내 앞에 그어진 선은 너무나도 부당할진대 내가 지레 겁먹는 것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 파괴, 집단 해고, 부당 대우, 언론 프레이밍, 승진 불이익, 고용 형태에 따른 분리 통치··. 자본주의의 공포정치가 세운 악명 높은 깃발을 보면 겁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선 안에 머무르면 새장 안에 살 게 된다. 내가 용감해지는 주문을 알려주겠다. ‘뭐래, 저 감자가.’

 

 

 

정이리리

경희대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