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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⑨ 우리가 모두 이주 노동자다 | 칼럼

  • 최종진
  • 2020-12-07 16:07
  • 6,930회

7.1(수) 현장 관리자의 무지와 태도의 무례함

 

마치 연휴를 보내고 출근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저께는 국회 토론회 참석으로 공치고 어제는 비로 인해 현장에 가지 못했다.

오늘의 첫 점검 장소는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단독가구를 무려 27세대나 건축하는 현장이다. 

 

찾아간 현장 사무실에 사람이 없다. 현장으로 가서 여러 명에게 물어보았다. ‘누구 현장 책임자 아시는 분 없나요?’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처음에는 연락처가 없다고 하다가 연락처를 알려 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기가 현장 관리자가 아니고 그냥 목수라고 하던 관리자를 앞세우고 현장 점검을 한다.

안전모가 없느냐고 했더니 다 나누어 주고 자기는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있던 노동자들이 갑자기 안전모를 쓰기 시작한다. 

 

거푸집 조성과 철근을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여러 곳에 안전 발판과 안전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서 추락위험을 안고 있다.

배전반도 물에 잠겨 있고 배선은 진흙땅에 걸쳐있다. 감전 사고 방지를 위해 배전반 이동조치를 요구한다.
건축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발판도 없이 파이프를 딛고 출입을 하고 있다. 안전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여러 곳이다. 즉각 조치로 발판을 만들게 한다.

 

소장을 만나기 전에 관리자에게 공사비를 물었다. 그러자 버럭 화를 내며 “나는 모른다. 왜? 부족하면 보태 줄 거야?” 하면서 시비조로 말을 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왜 저럴까?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지. 나 참.’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냅니까? 건축 공사비 기준으로 안전보건 총괄책임자, 전담 안전 관리자 선임 등 법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알아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현장을 총괄하는 소장이 없어서 이사라는 직책을 가진 시공사 대표에게 조목조목 말한다. 정말 모르고 있는 건지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 주고 관리자의 무지와 태도의 무례함을 나무랐다. 
이런 사람들이 현장을 책임지고 있으니 안전이 정말 문제가 많다. 안전모 등 개인보호구 지급대장을 만들라고 주문한다. 다음에 와서 확인하겠다고 한다.

 

오늘 정말 많이 참는다.

 


[사진 1]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다. ⓒ최종진

 

“안전모를 쓰세요.”

인근에 있는 현장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도 왔고 지금까지 서너 번 왔던 현장이다. 4월에 처음으로 와서 많은 점을 지적한 곳이기도 하다. 

 

크레인 해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더는 크레인으로 자재 등을 나르는 일이 없고 이제 마감공사 단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설치와 마찬가지로 해체 작업도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위험을 수반하는 만큼 사전 조사와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작업 순서, 작업 장비, 작업 인원의 역할 등 구체적으로 계획해 작성해야 한다. 사전 조사와 계획 없이 일하다가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잠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해체물을 차에 싣는 사람 중에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작업책임자를 찾는다. 저기 안전모 쓰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물으니 트럭 운전기사라고 한다. 안전모를 착용시킨다.

마침 산업안전공단의 패트롤카가 보인다. 이분들이 있으니 우리는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아서 서로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린다.

 

오늘 점검한 다른 현장 세 곳에서도 많은 지적을 했다. 갈수록 간섭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때로는 황당하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하는 역할이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고  자평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사진 2] 크레인 인양물에는 보조로프를 달아서 내릴 때 흔들림 방지 조처를 해야 한다. ⓒ최종진


7.2(목)  우리를 보면 하는 것들

 

남양주시 오남, 진접 지역을 방문한다. 농협 종합시설 신축 공사는 철골철근 콘크리트 구조였다. 멀리서 외벽거푸집 조성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현장사무실에 들러서 공사현황을 파악하고 점검을 위해 나오는데 좀 전에는 하지 않았던 고소 작업대에 아웃트리거를 부착하고 있다. 우리가 온 걸 알고 급히 부착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본다. 대부분은 쓰고 있지 않던 안전모를 우리를 보면 쓰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작업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와서 설치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작업을 하기 위한 시설작업이다. 그런데 작업자는 계단이 아닌 파이프를 딛고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안전대는 착용하고 있다. 안전대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한 작업 발판이다. 

당장 발판을 설치하라고 요구한다. 전담 안전 관리자가 있는 현장도 이렇게 허점이 있다. 여러 가지 지적에 대해서 시급하게 조치하겠다고 한다. 조치한 내용을 사진 찍어 확인시켜 달라고 한다.

 

두 번째 방문한 현장은 위험한 곳이 더욱 많다. 추락위험이 큰 현장이다. 건축주는 안전관리업체에 위탁하고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현장 관리자는 사실 안전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현장 관리자에게 산업안전법 교육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건물 안 벽 미장을 하는 곳은 추락위험으로 더는 방관할 수 없다. 당장 안전 난간 설치 후 일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사업주나 노동자 모두 안전에 대한 의무가 있다. 
 

 

[사진 3] 계단과 상부단부에 안전 난간 등 추락방지 조치가 없다. ⓒ최종진


점심시간이다. 분전반은 열려 있고 아무도 없는데 대형 선풍기는 돌아가고 있다. 선풍기 끄고 전원 코드 뽑고 상식적인 것도 하지 않는 현장에 교육을 좀 하라고 했다.
날씨가 더워진다. 며칠 동안은 덥지 않게 잘 지냈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오겠지. 

 

오후에 들른 곳은 당고개역에서 연장되는 진접선 3공구 공사 현장이다. 내년에 4호선 당고개역에서 연장되는 노선으로 이곳은 오남역이 들어설 건설 현장이다.

깊은 지하에서 철골 작업을 하고 있는데 선로가 깔린 역사 깊은 곳까지 가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정거장 공사를 보니 교통공사 출신으로서 남다른 소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안전 관리자 중 한 사람은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는 역사 건물 현장을 확인하기로 하고 오늘은 다소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7.3(금) 더운 것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양주시 옥정동은 1‧2차 대방 아파트. 중흥건설 등 대규모 공동주택건설 현장이 많다. 신도시라서 초‧중·고등학교 신축을 포함한 오피스텔, 다가구 주택 등의 신축 공사도 상당히 많이 있는 지역이다.  

 

현장 한 곳에서는 크레인으로 건물 옥상에 있는 거푸집 등 자재를 하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서너 명의 일하는 사람 그 누구도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있고, 작업책임자도 없는 것 같다.

현장 소장이 부재중이라서 전화로 오게 한다. 일하시는 분들께 이렇게 작업하면 안 된다고 차분하게 권고한다.  

미안해하는 모습이다. 어느새 안전모를 가지고 온다. 지급은 되었어도 착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론 덥다. 그러나 더운 것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들 안전을 위해서니까 꼭 쓰셔야 합니다.”라고 한 번 더 당부한다.

 

소장이 왔다. 인근에 또 하나의 현장을 같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크레인으로 자재 하역작업 하는데 유도자 배치 등 각자 역할 등에 대해서 아침 교육을 하셨냐고 물으니 했다고 한다(아닌 것 같은데 물증이 없다).

 

또 다른 한 곳을 찾아가니 분전반 녹색 접지선이 땅에 묻혀야 하는데 그냥 덜렁거리고 있다. 지적하니까 여러 곳에 이동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그렇다는 변명이다.

여러 기구를 사용하는 건설 현장에 분전반은 대부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접지도 않고 배선이 습기가 아니라 아예 물에 잠겨 있는 곳도 많았다.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이 이렇게 방치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내벽 미장을 하고 있다. 발판을 딛고 있지만, 안전을 담보해 줄 난간은 없다. 안전 난간을 만들고 안전대 걸 수 있는 조치를 하라고 다그쳤다. 내가 한 말을 소장은 일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이야기한다. “어이, 난간대 대고 해.”

 

아까부터 유심히 보았다. 시멘트를 어깨에 메고 계단으로 3층과 4층으로 옮기고 있다. 60대의 노동자 같다.

1층 바로 옆에서 시멘트를 나를 때도 문제의식을 느꼈다. 시멘트 한 포대 무게가 40킬로인데 기구를 이용하라고 한다. 그런데 층마다 시멘트가 수십 포씩 쌓여 있다. 이제 보니 이 시멘트를 모두 사람이 직접 나르고 있는 것이다.

간헐적인 작업도 아니고 종일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저러다가 골병드는데….

 

소장에게 중량물 이동 작업이니까 기구나 양중기를 이용해서 일해야 된다고 한다. 소장 왈 “크레인 한 번 부르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요.” 솔직히 비용 때문에 부르지 못한다고 한다.

미장을 전부 맡긴 것이기 때문에 저렇게 일하는 것은 그 팀의 문제이지 자기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 
건설 현장은 부문별로 하도급을 하는 구조다. 더는 할 말이 없다. 만약에 노동조합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인근 다가구 주택 신축 현장, 지붕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 작업하는 곳에 직접 올라갔다.

안전대와 안전모도 없이 일하고 있다. 지붕 패널을 얹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간헐적인 용접작업도 하고 있다. 소화기 하나만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없다. 
매우 위험하다. 작업을 중지시키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최소한 작업 발판과 추락 방호망을 설치해야 하는 곳이다.

 

현장 책임자인 소장에게 심각성을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현장을 관리하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시공사가 문제인 것 같다. 최소한의 의무와 역할을 알고 있는 사람을 현장 관리자로 내정해야 할 것 아닌가. 

바로 조치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무겁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많은 잔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장을 계도하는 안전지킴이의 본연의 임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사진 4] 발판이 불안해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 ⓒ최종진

 

7.6(월) 이주 노동자


건설 현장에서 이주 노동자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생각과 자세가 조금 남다른 것은 한국에서 처한 이주 노동자의 처지와 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일정 정도 함께 투쟁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고용허가제의 문제가 떠오른다. 고용허가제 폐지, 강제추방 반대, 작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친 요구가 언제부터였던가?

지난해 집회에서도 여전히 같은 요구하며 집회에 참석했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2007~9년) 활동이 이주 노동자의 투쟁에 함께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서울본부장으로서 2009년 4월 민주노총을 대표해서 네팔노총 총회를 다녀왔다. 이후 민주노총과 네팔노총 간의 MOU가 체결되었고, 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동지가 민주노총 사무총국에 상근하는 것으로 진전됐다. 

한국에서 이주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던 수많은 이주노조 위원장들이 강제 출국당했다. 그 동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연대하려고 2009년 12월 몇몇 동지들이 시작한 모임이 지금의 이주노조희망센터다. 그래서 습관처럼 물어본다. “어디서 왔어요?”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신분이 합법이냐 불법이냐 그것까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도 한 정부다. 건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현장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 그것은 불안하고 위험한 조건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이주 노동자다. 재해를 당하면 더욱 외롭고 속상한 이주 노동자다.

 

글│사진
최종진
노동안전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