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유하기

[권유하는 사람들] ⑨ 김대성 ‘만년 과장을 선택한 사람’ | 사람

  • 김우
  • 2020-12-02 19:46
  • 1,852회

세월도 비껴가는 

 

권리찾기유니온의 김대성 감사는 사무금융노조 KB 손해보험 지부장이다. 회사에서 30년 왕따 인생에 노조위원장이라니 인생 반전이다. 

입사 초기부터 노조 활동 열심이던 김 감사에게 회사는 한 손엔 채찍을, 다른 손엔 당근을 들었다. 김 감사랑 얘기하는 사람은 윗선이 ‘불러서 1시간씩 깨니까’ 누구도 김 감사와 밥을 먹지 않았다. 
회사는 87년 노조위원장을 부당해고했다가 복직시켜야 했던 아픈 학습을 했다. 김 감사를 해고하기보다 나가게 하려는 시도가 바로 왕따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김 감사가 대리일 때 차장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지금이야 사원, 대리, 과장 직대, 과장, 차장 모두 조합원이지만 당시에 차장은 노조원이 될 수 없었다. 차장 줄게, 너의 노조원 자격 다오. 활동 그만하라는 회유의 뒷거래였다.

차장이 된다는 건 연봉이 4천만 원이나 올라간다는 것이고, 부장으로 승진도 보장되는 길이었다. 말만 잘 들으면 아니 노조 활동만 덜 해도 걸어갈 수 있는 꽃길이었다. 
하지만 김 감사는 ‘조합 활동 못 할까 봐’ 차장 승진을 거절했다. 그리고 2022년 2월이면 정년을 맞이하는 지금껏 차장을 달지 못했다. 그야말로 ‘만년 과장’이다.

 

[사진 1] 회원이 40여 명이던 노조 노래패 '노래 벗'의 91년 4월 야유회. 맨 앞줄 왼쪽이 김 감사.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후회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두 가지 마음이다. 사람에겐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 있다. 마음은 시소를 타고 끊임없는 저울질을 하기 마련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가 걸어온 길이 되고, 걸어가는 길이 되고, 바로 그 사람이 된다.

 

“김대성 씨 대단해. 오랜 시간 어떻게 그렇게 버티지?”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지인의 한마디다.

88년 LG 회장실에 있던 김 감사의 ‘성향을 파악한’ 회사가 90년에 LG 화재로 발령을 보내며 알게 된 직장 동료다. 그이가 덧붙이는 말.
“주위에서 몰아쳐도 휘지 않아. 세월도 김대성 씨를 이길 수 없어. 세월이 비껴가는 사람이야.”

노조 임원을 했던 이들도 승진 앞에 장사 없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보아오면서 하는 말이다. 

 

지인에게 같이 활동하며 인상 깊었던 게 무엇인지 물었다. 고집불통의 한결같음이라 답한다. 융통성 없는 외골수로 느껴지기도 했던 김 감사가 결혼한 게 기적이고 기특한 일이라 한다. 
“하고 싶은 거, 지키고 싶은 거 있어도. 모두 변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김대성 씨는 그렇지 않았어.”

 

[사진 2] 노래 벗의 율동 연습. 맨 앞. 김 감사가 날아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노래에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라는 가사가 있다. 결코 어리진 않되 천진스러운 소년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 김 감사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일탈이라 해봤자 여름방학 자율학습 때 학교 담 한 번 넘어 영화 보러 간 정도였다. 하지만 ‘따귀 맞는 모범생’이었다. 매일 오후 7시면 자고 자정이면 일어나서 오전 6시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선생님에게 질문해서 답 못 하게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향한 나름 반항이었다.
 
김 감사는 선생님이나 상사들이 싫어하는 캐릭터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집에서 그이가 가는 길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작년부터 적용되는 임금 피크제 때문만은 아니다.

노조 활동 하나 안 하나 기왕 버린 몸이라 생각한다기보다 반대해도 의미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을 해봤자 말려봤자 변동 없이 그 길을 걸을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삶 

 

“나를 위한 삶인 적은 없었나요?”
“(노조 활동) 그게 나를 위해 사는 거죠.”
회사 노조 활동 10년, 회사 밖 노조 활동 20년이다. 1999년부터는 기업별 노조의 배타성을 넘어 초기업 단위 노조 만드는 활동도 해오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에 열정을 보태고 있는 것 외에도 6개나 된다. 전국사무연대노조,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지역일반노조 등이다.

월급 일부를 상근자 급여로 주고 사무실 임대료를 내주다 나중에는 월급 전부를 내어주고 옆지기 월급으로 살기도 했다.

 

지인도 물었다.
“김대성 씨는 취미가 노조죠?”
“아녜요.”
“그럼 취미가 뭐예요?”
“...”

 

김 감사는 답하지 못했다. 대학도 데모하고 싶어서 들어갔다는데 회사도 노조하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닐까.

빨리 간부가 되고 빨리 해고되면 내부 조직화가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95년엔 간부가 됐다. 
풍물, 노래, 역사 기행반을 만든 것도 취미를 즐기려 한 게 아니었다. 아니 노조 활동이라는 분명한 취미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야 할까. 

 

노조 위원장 당선은 전 위원장이 어용성이 강해 염증을 느꼈던 조합원들에게 변화가 필요했던 ‘덕분’이다. 경선이었지만 한 후보는 회사 쪽 사람이어서 김 감사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았다.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 많이 해줄 줄 알고 뽑았다고 말하지만 김 감사는 그보다는 다른 변화에 치중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임금 정률 인상제를 정액 인상제로 바꾸었다. 33년 만의 일이다. 무기계약직인 비정규직 노동자로 조합원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남녀차별 축소에도 힘쓰고 있다. 회사는 신입을 하위직급인 5급과 6급은 100% 고졸·전문대졸 여성으로 뽑고, 대졸 이상의 4급은 분리해 채용하고 있다.

4급 입사 여성이 수적으로 부족하니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이 급감한다. 남성은 33세에 다는 대리를 여성은 43세에도 달까 말까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항도 만만치 않다. 차장급은 정액제에, 남성인 사원과 대리와 과장은 승진과 관련된 남녀평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직원은 무기계약직과 동등해지는 걸 못 견뎌 한다.

옆에서 힘을 보태줬으면 싶은데 아쉽게도 노조 임원들도 노동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사진 3] 학습 소모임에서 96년 경기도 나들이를 갔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나중에 노조 지부장이 됐다. 왼쪽부터 9대, 12대, 8대 KB손해보험 지부장

 

김 감사는 언제나 수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해 왔다.

“후회하는 거 있으세요?”
“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내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고 나갈 것 같은 거죠.”
지인이 옆에서 거든다.
“다 시기상조라고 얘기할 때 이미 그걸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발 앞서가며 많이 외로웠을 거야.”
농담이 아니라 내가 같은 회사 다녔다면 꼭 밥을 같이 먹어줬을 거라고 얘기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외로움 곁에 함께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