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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ㅂ연구소] 1부: 프로그램개발·연구직노동자 세 번의 해고일기 | 사람

  • 이현의
  • 2020-11-17 16:45
  • 2,305회

처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해고된 건 2017년 가을이었다. 울산에서 생명과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서울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뒤, 울산에 돌아와 개발자로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알바가 아닌 최초의 직장이었다. 
 

2월에 입사해 전공이 아니라 많은 어려웠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힘을 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사수 없이 혼자 개발을 시작단계부터 맡은 건 너무 어려웠고,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표와 부대표는 개발자를 더 뽑아 준다고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 충원은 요원했다.
 

직원 4명 중 개발자는 나 혼자였고, 미숙한 실력으로 의사소통 문제도 생겨 결국 대표는 사직을 권했다. 최초의 해고통보였다. 정규직이었지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 생각했고, 순순히 사직서를 썼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았다. 와인 판매 알바 등을 하면서 다음 일자리를 찾았다. 울산엔 적당한 수준의 급여와 근무조건이 되는 개발 기업이 부족했다. 
 

해를 넘기고, 일자리를 찾다가 2018년 1월 경기도 한 기업이 내가 했던 분야의 개발자를 구했다.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보았다. 이번에도 스타트기업이었지만, 임금도 높고, 근무환경도 괜찮았다. 
 

면접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울산에서 경기도로 이사했다. 이번에도 직원은 4명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직원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걸렸다. 커뮤니케이션도 문제를 일으켰다.
 

6월쯤 인턴이 한 명 들어왔다. 전공자였고, 신입이었다. 신입답지 않은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보여주었고 나와 비교 당했다.
 

결국 이번에도 해고통보를 받고, 사직서를 썼다. 이번에도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재직기간은 6개월이었지만, 휴일을 빼면 재직일수가 180일이 안 돼 실업급여를 못 받았다. 급한 마음에 동사무소 가서 긴급 생계비를 신청했지만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결국 신용카드 대출에 손을 댔고, 빚이 쌓여 연체가 발생했다. 신용등급이 10등급까지 떨어지고 카드는 정지된 채 천만원 넘는 빚이 생겼다. 
 

결국 프로그래머는 접고 다시 생명과학 쪽 직장을 찾았다. 두 번의 해고로, 개발자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건설일용직과 대학병원 조교, 쿠팡플렉스 등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울산에서 나를 따라 상경한 동거인이 많이 고생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 파견 연구원 모집공고를 봤다. 사업장이 서울, 판교, 대전에 있고, 집에서 가까운 판교에서 면접을 봤다. 7년 된 중견 벤처기업으로 직원도 많았다. 합격해 대표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 근무를 시작했다. 파견 갈 병원이 생길 때까지 잠시 서울로 출근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작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출근 며칠 뒤 대표의 진면목이 봤다. 엄청 다혈질에 직원들에게 폭언폭행이 비일비재했다. 대표의 폭력성에 못 이겨 박사 1명이 그만뒀고, 그 자리에 내가 채용됐단다. 
 

조만간 파견지로 가서 근무할 거란 기대에 한 달을 버틴 끝에 파견근무를 시작했다. 업무지시는 주로 파견지에서 내려주었고, 업무 보고는 대표에게도 보냈다. 파견지 전임자는 출산 때문에 그만 둔다고 했다. 
 

인수인계 받던 중 파견근무 한 달 만에 대표가 연락와 이직하라고 했다. 자기들이 회사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 회사가 조만간 파견지에 입주하니 업무 편의를 위해 그리로 이직하라고 했다. 같은 회사나 다름없으니 안심하고 이직하고 근무조건도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했다.
 

안심 하라니까. 근무조건도 맞춰 준다니까. 같은 회사나 다름없다니까. 7년이나 된 중견기업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이직했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받고 이상했다. 분명 이직 전엔 정규직이었는데, 갑자기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새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계약조건은 틀린 게 없다고 했다. 찝찝했지만, 계약이야 연장되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나 말고도 그쪽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몇 번의 인력 교환이 이루어졌고, 최종 나 포함 2명이 파견지에서 일하게 됐다. 다시 5인 미만 사업장이 됐다. 

 

업무지시는 여전히 파견지에서 내려주었고, 이번에는 전 대표와 현 대표 2명에게 일일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일 잘해서 파견지에선 실적을 인정해 줬지만 양쪽 대표는 못마땅해 했다. 이유는 몰랐다. 
 

이직하고 8개월이 지난 6월 어느 날 인사담당자가 전화했다. 경영상 이유로 해고하니 해고와 권고사직, 자진퇴사 셋 중에 고르라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내가 대표에게 뭔 잘못을 했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잠깐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엔 해고 징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 해 보니, 전 대표가 나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했다는 걸 알았다. 전 대표에게 전화하니, 싫어한다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회사가 아니므로 해고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다. 같은 회사라고 공공연히 말하다가 이제 와 발뺌 하는데 어떻게 믿겠는가.
 

지인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취하하시라고. 그리고 민사소송을 하라고. 5인미만 사업장은 해고 구제신청도 못한다. 

 


이현의
프로그램개발·연구직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