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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ㄱ잡지사] 3부: 신청인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 사람

  • 김상은
  • 2020-11-11 19:30
  • 1,353회

 

 

부당해고 신청서를 작성할 때 절차적 부당성을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은 열 명이 넘었고, 사용자는 구체적인 해고사유도 없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부당해고에 대해 회사에서 반박할 여지가 크게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구두해고 이후 사직서를 써서 내라는 회사의 지시가 있었고 사직서 쓰기를 거부하자 4대보험을 신고도 하지 않고 개인사업자 소득으로 월급을 처리하겠다는 사측의 답변은 부당해고를 덮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었다. 이 곳을 거쳐 간 근로자들이 남긴 후기에는 해고가 매우 빈번했다는 말처럼 나도 그들 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얼마 후 담당조사관이 전화가 왔다. 조사관은 서류가 잘 접수됐다는 말과 함께 사측에서 어떻게 답변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만약 사측이 5인 미만 기업이라고 주장한다면 부당해고 구제 각하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에 대비해 이 회사가 산하에 여러 개의 법인을 두었지만 하나의 재정으로 운영하며, 인사권 행사에도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는 증거자료를 챙겨두었다. 서류와 달리 실상 하나의 법인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알아보다가 가짜 5인 기업을 고발하는 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을 알게 됐고 이곳에 내 연락처를 남겨두었다. 

 

구제신청이 접수된 지 약 3주 만에 회사의 답변서가 도착했다. 의외로 사측은 5인미만 사업장 여부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겠다고 했다. 사측이 보내온 답변서는 5~60장정도 되는 묵직한 서류였는데 답변서라기보다는 반쪽짜리   사실로 날조와 왜곡을 뒤섞은 경고장에 가까웠다. 문단마다 “신청인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입니다”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았다. 업무 메뉴얼이 없어 질문한 행동을 두고 ‘업무능력부족’이라고 해고의 정당성을 둘러댔고, 대표와 이사가 만든 가족회사냐고 물어본 것을 ‘허위정보 유포 명예훼손’으로 둔갑시켰다. 재직 당시에 별 마찰 없이 지나간 일들, 또 기억해내기 힘든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탈탈 털어내 열배 스무배로 부풀려 해고의 정당성으로 만들어냈다. 

 

인간적으로 대단히 실망스러웠던 대목은 같은 층에서 일했던 동료 직원들에게 ‘진술서’형식으로 받아낸 증언들이었다. 전체 카톡창에 뻔히 공유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쓴 진술서는 공통적으로 ‘그런 사실이 없다’ 내지는 ‘신청인이 잘못한 것이다’ 등의 말들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었다.

 

그들의 진술서를 읽으면서 어떻게든 믿을만한 기둥을 붙들어보겠다는 약자의 모습에 가엾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모함하는 일에 가담해서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겠다는 이기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중 거짓진술에 동조한 후배기자 만큼은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물었다. 지노위에 서류가 오가는 와중에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나는 이런 정치싸움에 길들여져있지 않았고 최소한의 양심 있는 답변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사용주가 부당해고 신청을 자기 선에서 처리하지 않고 편을 갈라 적대적인 관계를 만든 이상 이 기자는 회사가 준 각본만 반복해서 읊기만 하는 텅 빈 사람이 돼 있었다. 이들은 분명 회사 지시를 따르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이야 어떻든 이 회사 대표는 해고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들을 앞세워 대리투쟁을 벌이게 했기 때문에 이런 진술서를 쓰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을들 뒤에 숨어 부당해고 책임을 회피하는 갑을 겨냥해 또 다시 이유서를 써내려갔다. 

 

제 아무리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아는 당사자임에도 한 때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쓴 거짓 진술서와 피해자 행세를 하며 정치질하는 대표의 호소를 바탕으로 선동과 날조를 하는 두 명의 노무사들을 떠올리면 이성적으로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노사다툼에서 회사는 없는 서류도 만들어낼 수 있고, 쉽게 회사 내 여론을 만들 수 있는 갑의 위치이지만 노동자인 을은 회사의 거짓대응을 반박할 증거를 수집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인신공격적인 사측 대응에도 ‘이 해고는 부당하오니 나의 일터를 돌려주세요’라는 이성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사실관계를 어지럽히는 회사의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법리적으로 사실여부를 따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국선노무사를 신청했지만 선임할 자격에 해당 되지 않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전화를 걸어 노무사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홈페이지에는 분명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공지됐지만 내가 이 곳에서 받은 도움은 20분 정도의 전화상담이 전부였다. 그렇게 두 번째 이유서를 지노위에 보내야 하는 기한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권유하다 유니온의 하은성 노무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매일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채로 모니터 앞에 앉아 이유서 2를 써내려가니 입맛도 사라져 당시 몇 주 새 체중도 줄었다. 공익활동을 하는 노무사가 전화가 왔지만 그 때는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받기 어려울 만큼 주변을 돌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사건수임을 결정한 때조차 만약에라도 이런 시민단체에서까지 말을 바꾼다면, 그 때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불안감이 사건을 맡아줄 노무사에게까지 전달될까 애써 내색하진 않았다. 노무사와 길고 긴 전화상담을 하다 보니 다행히도 나의 부당해고 구제 건은 내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 치닫지 않을 것 같았다. 노무사는 다음 주까지 이유서 2를 정리해서 제출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노무사는 서류를 보내오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함께 이겨내 봐요”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글│사진

김상은

글쓰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