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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ㄱ잡지사] 2부: 그거, 부당해고 아니니? | 사람

  • 김상은
  • 2020-11-04 11:12
  • 1,027회

 

 

이 회사에서 난생처음 말 한마디로 ‘해고’라는 걸 당했다.

 

내 짧은 경력이지만 대차게 이유도 없이 기자를 자르는 언론매체는 없는 걸로 안다. 누가 기자를 건드나. 서면통지 없이 말 한마디로 자르는 와중에 이유를 물었다. 대표는 말하길 “아이 뭐... 결재서류에 사인도 안했고, 아직 8월호 기획안도 안나왔고...” 나는 방금 두 시간 전 일을 이유로 해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대표는 “아니, 우리는 일을 전적으로 모두 맡길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여기서 일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온갖 잡일을 모두 도맡는 사람”을 말한다. 그야말로 기자직과는 상관없는 일까지 잡지 포장·배포, 번역비 지급, 디자인팀 행정관리, 교과서 편집, 잡지지원사업, 여행상품 사업기획, 광고시안 등 더 나아가 이사의 비서역할 까지 이 회사의 ‘집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집사는 경영진의 개인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야 한다. 

 

구두해고를 당해 울분이 터지던 금요일 밤이 저물고 개봉되지 않은 ‘월요일’이 왔다. 마치 월요일이 시작되면 우리는 일주일의 순환주기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월요일이 되면 월급이 지배하는 육신을 이끌고 출근하고 곧 주말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꾸역꾸역 그 다음날 아침을 준비한다. 그런데 나에게 갑자기 잉여로운 자유라는 게 주어졌다. 카톡이 왔다. 

 

“새로 들어간 회사는 어때? 잘 다니고 있어?” “나 잘렸어”라고 말하자 무척이나 놀란 기색이었다. 입사부터 해고당한 날까지 겪은 일들을 빠른 타자로 일갈하듯이 친구에게 보냈다. 카톡창에 1이 사라졌는데 반응이 잠잠하다가 “그거 부당해고 아니니?”라고 친구는 되물었다. 친구는 서면 통지도 안하고 구두로 해고하는 회사가 아직도 있냐며, ‘결재서류에 사인을 안했다’, ‘기사가 원하는 형식이 아니다’ 등의 이유로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고 했다. 

 

구두해고 당하던 날 대표가 “당신은 수습기간이라 우리가 해고해도 상관없어”라고 한 말을 꺼내며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친구에게 말했다. 이 친구는 7급 공무원으로 기획재정부에서 일한다. 이전에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파견직으로도 일했는데, 부당해고 구제신청 건 중에 수습기간의 직원들이 신청하는 비율이 훨씬 많다고 했다. 서면통지도 없이 말 한마디로 잘랐느냐고 다시 묻고는 그렇다고 하니 ‘아싸. 부당해고네’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부당해고를 다투려면 회사가 “5인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던 날 경영지원팀 차장은 “우린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연차나 야근수당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 아무 것도 안 해줘도 되는데, ‘특별휴가’라고 해서 한 달에 하루는 쉬게 해줘요”

 

“특별휴가라는 게 연차가 아니라면 월차개념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으음.. 뭐 여하튼 한 달에 한 번은 쉬게 해주고 대신 연차수당 같은 건 없어요”

 

이 회사는 인쇄물이 나오기까지 인쇄, 편집, 제작 등 공정과정을 단위로 부서가 아닌 법인으로 쪼개놨고, 각기 다른 사업을 한다는 명분을 부여했다. 이 회사의 법인은 크게 ‘인쇄업’, ‘IT’, ‘디자인’으로 나뉜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기자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법인은 엉뚱하게도 IT회사였다.

 

업무에 적응하면서 나에게는 “우리 회사의 이름은 무엇인가?”가 화두로 떠올랐다. 회사사람들은 각기 다른 법인명 아래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모두 000 소속이라고 했다. 그래, 회사 외관에 분명 000이라고 간판이 걸려있다. 그런데 같은 사업장 내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디자인하고, 인쇄까지 모두 협업으로 이뤄지는데, ‘왜 부서가 아닌 법인명으로 나누어 놓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고를 당하고서야 의문은 의심으로 떠올랐다. 해고를 당한 밤 부랴부랴 잡플래닛 후기를 찾았다. 내가 속한 법인명은 나오지도 않고 오직 간판에 내걸린 000 이름의 회사 후기만 스무 개가 넘게 검색됐다. ‘너무 손쉽게 사람을 내치는 회사’, ‘직원을 소모품으로 아는 대표’, ‘시스템이 전혀 없다’ 등 소개받은 회사라 괜찮겠지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또 다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실망한 것은 퇴사 직후의 회사의 대응방식이었다. 나에게 카톡으로 ‘사직서를 써서 보내라’는 지시였다. 나는 해고당했으니 서면통지서를 달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일주일만에 카톡으로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이날부터 부당해고 구제신청 서면을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글│사진

김상은

글쓰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