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유하기

[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⑥ 숨 고르기 하면서 바로 잡는 시간 | 칼럼

  • 최종진
  • 2020-09-10 19:06
  • 1,332회

6.19(금) 술도 자제한다

고양에서 안전 지킴이 월 미팅하는 날이다.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운전해야 한다. 회식 마치고 일산의 지인과 만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일 일정도 있고 해서 오늘은 주님과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안전지킴이 일을 하면서 술을 많이 자제하고 있다. 왜냐면 다음 날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지킴이는 안전을 위한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이 세 번째 만나는 날이다. 이젠 모두 많이 친해진 것 같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얻는 게 많다. 전기안전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상식적이고 현장에서도 나름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부하는 안전지킴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6.20(토) 기억의 시간
4.16 도봉모임 주최 추모관 순례 ‘기억의 시간’에 함께 했다. 평택, 화성, 안산, 인천 네 곳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공원을 찾았다. 세월호와 나의 인연. 자신에 대한 약속을 잊지 말자는 다짐. 그러나 지금은 망각의 일상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갔다. 죽비를 맞는 마음으로.

권유하다 김우 동지에게 노동안전지킴이 일기를 기고 글로 보냈다.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사진1] 현장에 서다.  ⓒ최종진

 

6.22(월) 현장 소장의 갑질

오늘 34도가 넘는 폭염이라고 한다. 

오전 10시 30분경 백석읍 오산리 오피스텔 신축 현장. 현장 소장을 찾았다. 그런데 왜 왔느냐는 공격적인 말로 우리를 대했다. 
“시발 소장이 홍어 뭐냐.” 하면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한다. 걸핏하면 소장 찾는다고 욕을 한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을 자제했다.

‘반격해야 한다.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어느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욕을 하려면 상대 면전에서 해야지, 왜 우리에게 하느냐?” 하는 나의 말에 다소 잠잠해지더니 건축허가서 서류뭉치를 내려놓고 큰소리친다. “전부 들어오라 해.”

소장지시로 현장을 안내할 사람이 들어왔다. 소장은 자신의 권위를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이다. ‘안전지킴이 흥! 한마디로 너들이 뭔데’ 하며 우리를 경멸하는 태도에 화가 치민다. 어떻게 할까? 잠시 숨 고르기 하면서 참기로 한다. 화가 나지만 감정 조절도 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더러 있는 이런 모습에 더는 참지 말자면서도 참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불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2] 목재 사다리는 사용 불가  ⓒ최종진

 

[사진3] 작업 변경 내 사람이 있는 건 위험하다.  ⓒ최종진

 

소장은 현장 사무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안전담당자가 현장을 안내했다. 이동식 크레인 작업 아웃 트리거 받침대 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신호수 구분되게 안전모 색깔을 빨간색으로 하라고 했다. 땅바닥에 홀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덮개를 하라고 했다. 전기 배전반이 여러 개 있었는데 쇄정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하나라도 더 찾아내서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오기가 나름 발동한다. 시정을 요구하고 마무리한다. 다음에 다시 와서 더 철저하게 해야겠다. 

오늘 참 덥다. 오늘 동두천 기온은 6월 기온으로 62년 만의 더위라고 한다. 

 

6.23(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남양주시 오남. 내년에 진접선이라 불리는 지하철 4호선 연장 구간이 개통된다. 이로 인한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파트에 이어 근린생활시설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오남에도 전철역이 만들어진다. 이전에 들렀던 임대 아파트 건설 현장을 찾았다. 현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우레탄 빈 용기가 잔뜩 쌓여 있다. 위험물이다. 사진을 찍으니까 안전담당자가 누군가에게 전화한다. “지적당했다. 빨리 치워.”라고.

 

[사진4] 위험물은 별도 보관 장소를 만들어서 보관해야 한다.  ⓒ최종진

 

내부로 들어가니 어두운 공간에서 벽돌을 쌓고 있는 노동자가 보인다. 왜 조명등을 켜지 않았을까? 이분은 정말 어둡다는 사실을 알고도 조명 등 달아달라는 말 한마디 못 한 것 같다. “어둡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말에 “괜찮다.”고 한다. 답답하다. 보통 작업 시에도 150 lux의 조도가 필요하다. 아무튼 어두운 곳에서 일하면 안 된다. 안전담당자에게 당장 조치하라고 했다.

임대아파트 가구의 내부는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구조다. 시멘트를 반죽해서 벽을 바르는데 시멘트 가루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아무런 환기 조치가 없다. 집진장치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더구나 노동자가 마스크도 안 쓰고 있다.

두 곳을 더 들른 다음 양주로 넘어와서 주택전시관을 짓는 현장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이다. 모델하우스 용도인 만큼 신속한 공사인 철골 철근 구조다. 용접도 있고 천정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안전대 착용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스카이 장비에 타고 작업을 하는 데 추락방지 난간이나 안전 줄도 없다. 워킹타워를 통해 지붕까지 가 보았다. 걷기도 아슬아슬한 곳에서 철근  기둥에 패널을 붙이기 위해 나무와 철근을 못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장 소장에게 항의하니까 잠시 일을 중단시키고 전원 안전대를 착용시킨다. 지적하기 전에 안전대 착용을 하고 일을 시켜야 한다. 이래서 현장 점검이 필요하다. 노동자에게도 법적으로는 작업중지권이 있다. 그러나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노동안전지킴이에게 작업중지권이 있어야 한다.

 

[사진5] 크레인으로 짐을 나르는 로프가 많이 훼손되어 교체시켰다.  ⓒ최종진

 

나무 합판을 옮기는 노동자들이 있다. 합판 한 장 무게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까 7~8킬로 정도 된다고 한다. 5킬로 이상이면 중량물에 해당하니까 기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헐적으로 하는 일이면 두 사람이 함께하라고 했다. 즉석에서 3가지를 바꾸었다. 스카이에 안전난간대 설치,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전대 착용, 목제 합판 이동작업 2인 1조 적용.

최소한 오늘처럼 안전지킴이의 존재 이유를 느끼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