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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쿠팡식’ 성장모델 민낯 ④] 역시 쿠팡이니까 | 현장

  • 김우
  • 2020-09-01 11:12
  • 1,662회

쿠팡 부천물류센터(신선물류센터 2공장)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고용형태에 따라 감염위험도 달라진다는 건강격차 문제다. 부조리함은 해소되기는커녕 꼬리를 물고 다른 부조리를 만든다. 물류센터는 정상가동했지만 노동자들은 사과를 받지도 못했고, 생계곤란을 겪는가 하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법률가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집단감염 피해자를 지원하며 물류산업 선두기업 쿠팡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여섯 차례에 걸쳐 쿠팡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의 글을 싣는다.<편집자>

 

버스를 탔는데 쿠팡 광고영상이 돌아간다.

 

“쿠팡 친구는 쉬면서 배송한다고? 365일 로켓배송. 역시 쿠팡이니까” 뭐 이런 내용이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쿠팡맨의 죽음은 차치하고, 친구라는 첫 단어부터 거슬린다. 쿠팡이 언제 노동자를 사람 취급했다고 친구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지난 6월 ‘쿠팡발 코로나19 피해노동자 모임(이하 피해자 모임)’의 기자회견문 제목은 “우리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닙니다”였다. 쿠팡은 기본적인 방역 미비는 물론이거니와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조처를 하기는커녕 사태를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 김우(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편집위원)

 

축소하고 은폐하며 라인을 돌리기에만 급급했던 쿠팡. 무책임함으로 150명이 넘는 확진자를 양산했다. 그 무책임함의 일관성으로 아직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위로 전화 한 통 없는 쿠팡이다. 확진자 발생에도 오로지 라인을 돌리려는 일념만 있었다. 확진자와 그 가족 감염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와중에도 “배송되는 상품은 안전하다”는 발표가 유일한 의사 표명이었다. 이것이 쿠팡이란 기업의 모습인가를 넘어 이것이 인간이 할 일인가를 김범석 대표에게 묻고 싶다.

 

기업의 포장된 이미지에 쏟아붓는 돈을 돌려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대책을 마련했다면 쿠팡 친구라는 말에 실리는 불편함과 불쾌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쿠팡의 작업 환경은 코로나19에 언제 걸려도 걸릴 일이었고,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 쿠팡발 코로나19 피해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쿠팡의 방역대책 효과에 관해 물으니 “한 게 없는데 무슨 효과가 있냐”는 물음이 돌아온다. 출근 때 체온 검사하고 손에 세정제 조금 짜준 거밖에 없고, 세탁하지 않은 작업복과 작업화를 돌려 입고 신어야 했다.

 

코로나19는 쿠팡에 그저 쾌재였을 뿐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명목으로 사람은 더 채용하지 않았다. 노동자를 갈아 넣어 코로나19로 급증한 물량을 채웠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쉬게 하지 않았다. 의자를 두지 않았으며 바닥에 앉는 일도 허용하지 않았다. 작업 사이 잠시라도 짬이 생기면 부자재라도 가져다 채우라며 고함으로 채찍질해 등을 떠밀었다. 한 노동자의 증언이다.

 

“8시간 동안 계속 쉬지 말고 일하라는 거다. 가만있으면 ‘지X’을 한다. 딴 거 뭐라도 해야 한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쿠팡은 코딱지라도 파고 있어야지,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저혈당이 있어 약이나 당류를 가지고 들어가려 해도 보안대에선 처방전을 요구했다. 센터에 따라 이동전화기를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나, 들고 들어가더라도 사용하는 걸 ‘걸리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한 40대 계약직 노동자는 화장실 쪽에서 쓰러졌지만, 동료들은 전화기가 없어 119를 부를 수도 없었다.

 

현장에선 관리자만 이야기할 권리가 주어졌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시간과 이름을 적으며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라 아예 물조차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정수기 물을 마시려고 해도 물이 없거나 컵이 없는 일 역시 태반이었다.

 

부천 신선센터는 계약직 600여명, 일용직 700여명이 오전과 오후조를 나눠 근무하는데도 그 많은 인원에 엘리베이터는 1대였다. 불이 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을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마감 시간이면 쏟아지는 물량에 여기저기 차출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했다.

 

“주먹구구식이었어요.” 확진자 발생 이후 밀접접촉자를 분류한다고 할 때도 같이 옆에서 밥 먹은 사람인데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남는 식이었다. 접촉자 분류 후에도 남은 이들에게 잔업을 시키고, 결원된 자리는 인력수급 문자로 출근 지원을 요구했다. 다음날, “연락이 있을 때까지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할 때도 좁은 공간에 몇백명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올라가라, 내려가라, 타라, 내려라. 쿠팡의 우왕좌왕하는 지시 속에 쿠팡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돼야 했다.

 

감압병실에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거나, 쿠팡이라는 주홍글씨 낙인으로 취업조차 거절당하며 생계 위협에 놓인 노동자들은 “쿠팡에서 일한 게 죄도 아닌데”라고 읊조리고 있다.

 

피해자모임의 대표인 고건씨(43세)는 산재노동자다. 쿠팡이 열흘 동안이나 휴무 없이 일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산재를 당했다. 5월8일 새벽에 다치기 전까지는 빛의 속도로 미친 듯이 일만 하던 노동자였다. 누적된 피로 속에 뛰어다니다가 ‘퍽’하고 햄스트링이란 다리근육이 나갔을 때도 “깽깽이로 4층에서 2층까지 내려가서 카트의 물품을 전달했”을 정도였다. “산재 신청해도 안 됩니다. 본인들의 일이 그런 겁니다.” 책임을 지지 않고 산재를 은폐하려 하고 나중엔 협박까지 일삼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면 버려 버린다’라는 쿠팡의 태도를 읽었다.

 

그렇게 쿠팡을 꿰뚫어 본 고건씨는 이제 해고노동자다. 지각·조퇴·결근 한 번 한 적 없고 연장근무까지 하루도 빠진 적이 없던 그이가 계약 만료를 통보받은 날은 7월23일.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쿠팡에 입장문을 전달한 날이다. 피해자 모임을 꾸리고 기자회견과 증언대회에 함께한 동료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역시! 쿠팡이다.

 

 

김우  labortoday

 

※ 이 기사는 매일노동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김우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