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④ 지킬 수 있던 생명이 스러지는 것이 안타깝다
5.15(금) 주차와 차량 문제현장은 매일 바뀐다. 남양주시와 양주시는 참 넓은 곳이다. 호수공원까지 조성된 옥정 신도시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다가구 주택 신축 공사 현장이 많이 있다. 남양주보다 두 배나 더 큰 남양주시. 불암산 기슭 아래에 있는 별내는 옥정보다 먼저 건설된 신도시고 생활권도 서울이다. 아파트 공사 외에 오피스텔 등 대규모 주상복합 건설공사도 많은 편이다. 현재 남양주시에서 건설 현장이 가장 많은 곳이다. 퇴계원, 다산 신도시, 덕소, 오남리, 진접에도 대규모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지하철 4호선 진접선 연장의 역세권 지역답게 신규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백석과 송추, 일영, 덕정. 덕계, 고읍 등 오래된 양주시보다는 남양주는 신설 도시가 많다. 막상 다녀보니 두 도시 권역이 참 넓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일 애로가 큰 것은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번을 검색해도 없는 곳도 있고 차량 내비를 찍어도 나오지 않는 곳이 많다. 다음은 주차 문제다. 공사 현장 부근에 주차하지 못하면 참 난감하다. 주차에 대해서는 모두가 참으로 매정하다. 낮 시간대 아파트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어도 들어갈 수 없다. 잠시만 주차해도 당장 경비가 와서 차 빼라고 한다. (경비가 야속하지만, 그분도 자신의 업무라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왜 허락도 없이 주차하느냐는 항의와 수모도 몇 번 경험했다.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라는 차량 위의 표지도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차 양해를 구하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할 땐 속이 상한다. 가까운 곳에 공용주차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안전지킴이를 하면서 범한 신호위반 과태료 부담의 악몽이 아직 채 가시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공단의 안전지킴이는 패트롤 차량이 있는데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는 현재 모두 자기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신경 좀 써 주라! [사진1, 2] 남양주 별내 매몰사고 현장 ⓒ최종진 5.18(월) 건설 현장의 차이 건설공사비 금액 기준으로 120억(토목공사는 150억), 상시 300인 이상 사업장, 유해 사업장, 위험사업장은 전담 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한다. 7월 1일부터는 100억, 2021년에는 80억 이렇게 강화되어 2023년 7월 1일부터는 50억 이상이면 전담 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한다. 2020년 1월에 바뀐 법이다. 올 1월에 바뀐 내용으로 ‘김용균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안전을 전담하는 안전관리자의 존재 유무는 그만큼 현장에서 중요하다. 포스코, 현대, 대림, GS 등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이나 학교, 관공서 등의 공사 현장을 가면 안전 조직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규모에 따라 전담 안전관리자 외에 보건관리자까지 선임된 현장은 교육실과 노동자 휴게실까지 갖추어 있다. 이런 현장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반면 20억 이하 다가구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신축 현장은 솔직하게 엉망인 곳이 대부분이다. 시공사에서 파견 나온 소장이나 관리자도 있지만, 건축주가 관리인을 선임하고 직접 하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하고 위험하게 일을 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건설 현장 사고의 65.8%가 50억 미만의 공사 현장이라는 수치가 이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전담 안전관리자가 있는 현장은 그만큼 안전을 더 신경 써야 하는 의무가 강화된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만큼 지킴이를 대하는 자세도 최소한 상식이 있다. 그러나 안전지킴이인 우리를 경원시하는 현장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곳이라는 걸 직접 체험하고 있다. 50억 이하 공사에 대해서도 입법 보완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5.20(수) 아는 것이 힘 안전지킴이를 하면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는 단부나 개구부, 비계발판, 비계와 벽면 틈새 등 추락과 낙하물 방지를 위해서는 안전난간과 안전망 설치, 안전대 착용과 안전모 착용은 기본이다. 전도 방지를 위해서 사다리 작업을 금지하고 이동용으로 사용 시에는 규정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작업 시작 전 여러 점검이 필요하다. 용접 시 화재감시자 배치, 불꽃 비산 방지조치, 소화기 비치, 크레인· 고소작업대‧ 스카이· 굴삭기 등 장비 점검, 양중작업 시 신호수, 유도자 배치 등 산업안전 분야에 대한 법규나 지식이 매우 필요하다.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소장들도 각기 다르다. 알면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로 안전조치를 몰라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모르는 소장이나 관리자에게는 안전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장 점검을 시작할 때부터 메모장을 가지고 다닌다. 여러 내용을 빽빽하게 적고 있다. 최소한 모르는 것은 알려주어야 한다.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재직 중에 진작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따 놓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된다. ‘지금이라도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5.22(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얼마 전 민주노총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집회 소식을 들었다. 정의당에서는 1호 법안으로 발의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당연하지 않은가?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는 주장해 왔다. 발의된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을 때 수많은 김용균이 죽었다. 4월 이천 참사로 지금 사회적으로는 많은 공감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4. 28 이천의 대참사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 있다. 추락사, 매몰사, 질식사, 파쇄기에 몸이 부서지는 처참한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 노동 안전지킴이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노동안전지킴이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 작업중지권 확보의 권한이 절실하다. 노동안전지킴이에게 작업중지권을 달라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를 느낀다. 일단 원고를 준비하자. 5.27(수) 매몰사고 별내 지식산업센터 신축 현장에서 매몰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별내는 내가 일하고 있는 관내다. 지식산업센터는 아직 현장점검을 하지 못한 곳이다. 소식을 들은 다음 날 현장을 찾았다. 어제 경기도와 노동부에서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만약 우리에게도 연락이 되었으면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 앞 부지에 오수관을 매설하기 위해 관로공사를 하고 있던 현장이다. 백호(굴착기)로 굴착을 하는 2.2m 정도 깊이에서 레벨 작업(깊이를 확인하는 일)을 하던 노동자가 매몰되어 사망한 사고다. 흔히 매몰하면 머리까지 묻히는 상황을 떠 올리지만, 고작 가슴까지만 묻혀도 혈액순환이 정지되거나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사망자는 59세 노동자였다. 참 안타깝다. 이와 비슷한 사고를 우리는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뭐 이런 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할까 하고 선뜻 이해가 잘되지 않는 곳에서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건설 현장은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어디에서나 항상 중대 재해가 날 수 있다. 이 사고도 현장 책임자가 (최근 비가 자주 내려 지반이 약해져 있던) 지반의 상태 등을 사전 조사하지 못하고, 긴급 시 피난 조치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망사고로 귀결된 것이다. 시공회사에 엄혹한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 지킬 수 있던 생명이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허망하게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사진3] 추락위험의 현장에 안전모와 안전대도 없다. ⓒ최종진 글│사진최종진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
[칼럼]
최종진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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