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 현장과 노동안전지킴이의 바람
지난 4월부터 경기도가 건설 현장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노동안전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건설 현장을 순찰하며 안전규정 준수 여부, 개인 보호구 지급 및 착용 등을 점검하고 계도하는 일로 실제 현장에서 산업안전 활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퇴직 전 안전과 밀접한 현장 근무와 노동운동 경험이 안전지킴이 업무에 지원하는 동기가 되었다. 현재 경기도 10개 시, 5개 권역에서 10명의 지킴이가 활동하고 있는데, 내가 맡은 지역은 양주시와 남양주시 지역이다. ‘안전은 곧 생명이다.’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건설 현장을 찾고 있다. 현장을 갈 때마다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현장은 안전지킴이의 역할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반면 적대적으로 대하는 현장도 다소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지킴이의 관여와 권고는 기본 업무다. 따라서 노동안전지킴이의 업무가 충실할수록 현장 책임자와의 관계는 솔직히 더욱 불편해진다. 노동안전지킴이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 이천에서 대형 폭발화재 참사로 38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천의 사고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분노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노동안전지킴이이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전에 누군가 작업을 중지시켰으면 사고를 막고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사진] 최종진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개정 산업안전법 52조에 의하면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금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설사 알고 있어도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면 모를까 건설 현장의 노동자에게는 작업중지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급박한 위험’이란 것 또한 추상적이고 애매하다. 현장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일을 중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위험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사고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노동안전지킴이에게 작업중지권이 있으면 재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다단계 하도급, 최저가 낙찰제, 공사기간 단축은 건설업의 특성이자 또한 재해 유발의 원인이기도 하다. 4월 29일 이천의 물류창고 대참사도 공기 단축이 재해의 한 요인이 되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기 단축이 곧 돈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도 준공일보다 공사기간을 1개월 정도 단축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경비 절감이 곧 돈이지만, 그만큼 안전은 멀어지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 책임자의 고용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정 시공사에 소속된 현장 소장이나 안전 담당자도 있지만, 공사기간에만 임시로 고용된 노동자가 안전을 담당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시공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소요 비용이 클수록 권고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로 시공회사에서 독립적인 노동안전지킴이가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2019년 사고 사망노동자는 855명으로 전년도인 2018년 대비 116명 감소했다고 한다. 줄어든 배경으로는 정부의 의지와 관공서의 지속적인 현장 점검과 안전의식의 변화라고 한다. 사실이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소규모 건설 현장의 대부분은 아직도 안전의식이 요원한 것 같다. 안전모를 지급하지도 않고 버젓이 일을 시키는 현장, 작업 발판, 벽 이음 등 비계설치가 불안정한 현장, 승강기 개구부나 계단 난간과 단부에 안전 난간대를 하지 않아 치명적인 추락의 위험이 있는 현장, 승강로도 없이 비계기둥을 타고 오르내리는 위험한 현장도 있다. 산재 사고 사망의 절반이 (2019년의 경우, 855명 중 428명으로 50.1%) 건설 현장이고, 추락으로 인한 중대 재해가 절반이 넘는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추락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안전대와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 일 나왔다는 두 청년은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작업방법과 안전에 관한 교육도 하지 않고 일을 시키고 있는 증거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구의역 김 군, 김용균, 이민호 군 등 수많은 청년과 특성화고 학생의 억울한 죽음이 떠올랐다. 개인 보호구 지급 및 착용, 2인 1조 작업, 감시자 배치 등 기본수칙도 지키지 않아 사고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죽음 앞에 우리는 “너희 탓이 아니다.” 하면서 함께 분노했다. 그래서 지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건설 현장의 오랜 관행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직접 일을 시키고 감독하는 현장 소장이나 작업책임자의 의식 또한 중요하다. 그들이 규정에 맞지 않는 관행을 고집하고 안일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건설 노동자가 다치고 죽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4월 29일 이천 참사, 채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사회적 경각심과 관심은 멀어지는 듯하다. 그날 이후에도 질식사, 추락사, 매몰사, 파쇄기에 몸이 부서지며 죽어가는 산재 사망 노동자들의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살기 위해서 일터로 나간 누군가의 가족이 퇴근하지 못하는 이 참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인 관심과 법·제도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산재 왕국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조속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정부와 지자체는 실효성 있는 현장 점검을 위해 인력을 확충하고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업주에겐 ‘안전 제일’이라는 경영철학이, 범사회적으론 ‘돈보다 안전’이라는 인식이 확산하여야 한다.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연 2,000명이 되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건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핵심은 현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에 있다. 자본의 이익이 첨예하게 관철되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 불감증이 몸에 밴 오랜 관행과 요행을 용납하지 않으려면 강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주장한다. 그 강제력의 최소한이 작업중지권일 것이다. 출근해서 퇴근하지 못하는 단 한 명의 건설 노동자가 없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글│사진최종진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
[칼럼]
최종진
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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