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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1] [가오가 사는 세상①] 쪼개고 속이고…"5인 미만을 맞춰라" | 알림

  • 권유하다영상팀
  • 2020-11-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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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 하는데…서류상은 '다른 회사'
| 별도의 처벌 규정도 없어…신고하면 합의로 대부분 종결

 

[편집자주]'가오'는 일본어로 얼굴을 뜻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통상 명예, 체면, 자존심 등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서 소개하는 '가오'는 이 뜻이 아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준말이다. 전자의 가오는 돈이 없어도 우리는 버틸 수 있게 해주지만 후자의 가오는 우리의 삶을 갉아 먹는다.
 

지난 4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노동시민단체 '권리찾기 유니온 권유하다' 주최로 열린 위기로 내몰린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진짜뉴스 시민발언대가 진행되고 있다. 2020.4.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근로기준법은 '일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규정한 법'을 인식되지만 이 최저선의 법적 보호에도 '예외'를 적용 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5인 미만'의 사람이 일하는 영세 사업장이다.

 

5인 미만 사업자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제약이 없으며 각종 수당을 주어야 한다는 의무도 받지 않는다. 유급휴가도 연차 부여의 의무에서도 자유롭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사업주들이 사업장을 쪼개거나 노동자를 등록하지 않는 식의 방식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해온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근로기준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 2월부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31일 현재까지 80여건의 제보가 있었고 이 중 50건이 고발과 청원으로 이어졌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유형은 크게 Δ한 사업장을 서류상 2개 이상으로 쪼개는 유형 Δ실제 5인 이상 근무하지만 5인 미만 직원만 등록하고 나머지는 4대보험 등을 미등록 하는 유형 Δ실제 5인 이상이 근무하지만 초과수당이나 연차휴가 등을 실시하지 않는 유형 등으로 구분된다.

 

권리찾기유니온에 접수된 제보에는 1개의 사업장을 2개 이상의 쪼개는 유형이 가장 많았다. 제보 사례 중에는 동일한 사업장에서 서류상 회사를 10개로 쪼개는 경우도 있었다. 이중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A사의 경우 3개 이상의 온라인 쇼핑몰을 각기 다른 법인으로 등록해 두었다. 재무제표도 분리해서 관리했지만 3곳의 사무실은 같은 장소에 있었다.

 

이어 B사의 경우에는 직원 일부만 4대보험에 가입하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게 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했다. B사에는 2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었고 월별 일용노무비 지급 명세서에도 20명 이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고정되어 있어 상시적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B사는 직원들이 4대보험 가입을 요청하더라도 이를 고의적으로 피하며 가입을 시켜주지 않았다.

 

대기업의 지주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C상가의 경우에는 본사 직원이 사업주로 되어 있고 소장 등 주요 직책은 본사에서 직접 면접을 보고 채용했음에도 소장과 회계담당, 경비 2명만 일을 하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등록돼 있었다. 본사 직원이 매달 방문해 지출결의서도 결재하는 등 관리를 받았지만 C상가 직원들은 본사 직원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다.

 

C상가에서 6년간 일했던 50대 여성 ㄱ씨는 최근 2년간 3차례나 권고사직을 강요받았다. 사직서를 쓰지 않겠다고 버티자 계약종료통보서를 내밀었다. ㄱ씨는 권리찾기유니온의 집단 고발에 참여하며 편지로 "약자라고 함부로 해고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대우에 억울하고 분해서 숨을 쉴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ㄱ씨는 "5인 미만 근로자들은 부당한 해고와 직장 내 괴롭힘 등 근로 기준법에 불평등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소외감가 절망감, 상실감으로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없는 노예 같은 삶을 살게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일명 '가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5인 미만으로 위장 운영을 하다 노동자의 신고로 임금체불, 연차 미지급, 부당해고 등이 확인되면 해당 조항에 대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지만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위장 운영한 것 자차에 대한 처별 규정은 없다.

 

가짜 5인 미만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노동자 개인이 회사와 싸워 이를 증빙해 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국장은 "노동자 개인이 회사와 싸우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이미 해고·퇴사된 경우가 많아 자료가 부족할 수 있고 요즘은 회사들이 서류상 문제가 없도록 정리해 두기 때문에 신고를 해도 근로감독관들이 서류만 보고 사건을 각하시키는 경우가 많다"라며 B사의 경우 처음 신고했을 때 이런 이유로 각하가 됐지만 이후 공동고발을 하니 조사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하 국장은 노동청의 조사가 시작되더라도 사업주들이 신고를 한 직원을 대상으로 개별 합의를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인 사업장의 현실은 개선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전면적인 조사가 개시되면 직원들 전체에게 5인 이상 사업장에서의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해고·퇴사자들과 합의를 하고 사건을 종결한다는 것이다.

 

하 국장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생계 때문에 돈을 안 받을 수도 없다며 "합의가 되면 처벌을 해달라고 할 수도 없어 조사가 안 된다"고 밝혔다. 하 국장은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각종 수당이나 연차 의무를 부여주지 않으려고 마음먹는다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고 신고가 들어오면 버티다가 적당히 합의해 끝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해

news1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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