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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1] [가오가 사는 세상②] "6개월 근무 호텔, 하루 연차 달라하니 잘려" | 알림

  • 권유하다영상팀
  • 2020-11-02 14:25
  • 9,418회

 

 

| '5인 미만 사업장'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10명 이상 상시 근무해
| "위탁경영인 세우는 사례 악용되면 전 사업으로 번질 수도"


[편집자주]'가오'는 일본어로 얼굴을 뜻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통상 명예, 체면, 자존심 등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서 소개하는 '가오'는 이 뜻이 아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준말이다. 전자의 가오는 돈이 없어도 우리는 버틸 수 있게 해주지만 후자의 가오는 우리의 삶을 갉아 먹고 있다.

 

서윤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 '5인 미만'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동시에 다른 지점에서 순환근무를 할 수 있다는 조항도 함께 적혀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6개월 동안 근무하면 하루만 연차를 달라고 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냐고 하더라고요."

 

호텔에서 근무하던 이서윤(가명·53·여)씨는 지난달 초 5개월여간 일을 하던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의 사유는 근무를 태만히 했음에도 불만이 많다는 이유였다. 회사가 이야기 하는 불만은 손님 방문이 뜸한 새벽 시간에 만이라도 사무실의 형광등을 꺼 달라는 것과 6개월 근속을 하게 되면 하루라도 연차를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서윤씨가 일하던 A호텔은 맞교대로 운영됐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실장' 직책을 받은 서윤씨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24시간 근무했고 또 다른 실장이 출근해 교대를 했다. 하루 일을 하고 하루 쉬고 방식으로 한달에 15일~16일씩 일을 한 것이다.

 

근로계약서에는 휴게시간이 적시되지 않았다. 해고된 이후에 서윤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호텔은 8시간의 휴게시간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서윤씨는 시시각각 호출이 울려 제대로 쉴 수 없었으며 교대해줄 사람 없이 홀로 근무해야 했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해도 서윤씨에게는 야간, 휴일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지 않았다. 유급연차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A씨는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처음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서윤씨가 처음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회사가 처음 근로계약을 할 때부터 '5인 미만 사업장'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이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위에 언급한 수당, 연차 등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해고 구제 신청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서윤씨는 회사를 나오고 노무상담을 받으면서 회사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일 수 있는 정황들을 확인했다. 회사는 모텔들에게 무료로 구조 변경을 해주는 대신 일정기간을 운영해 수익을 챙겨가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는데 서윤씨가 근무하던 호텔을 포함해 5곳의 지점을 운영했다.

 

호텔마다 2명씩 총 10명의 실장이 있었고 그 위에 중간관리자들도 있었다. 각 호텔들은 방이 가득차면 주변에 있는 다른 지점에 손님들을 안내했다. 위탁경영인과 중간관리자가 지점을 구분하지 않았고 업무지시를 했으며 A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도 '호텔이 관리하는 각 지점에서 순환근무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호텔 직원들이 들어와 있는 단체 SNS 대화방에도 15명에서 16명의 인원이 수시로 들어와 있었다. 서윤씨는 이 단체 대화방에서도 각종 업무지시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서윤씨는 '권리찾기유니온'을 찾아 자신의 해고와 관련한 상담을 받았고 고용노동청에 사업주를 고발했다. 이후 서윤씨는 최저임금 위반 사직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예정이다.

 

한편,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국장은 서윤씨의 사례가 사업장을 쪼개는 형식의 '가오' 사업장의 발전된 형태라고 지적했다. 하 국장은 "이 호텔의 경우 자기들은 위탁 경영 대리인을 세워놓고 서류상 사업주는 기존의 모텔 사장들을 두고 있다"라며 "서류상 자기들이 사업주가 아니라 처벌을 받지 않으니 법을 지킬 이유가 없고 이익을 내기 위해 사람들을 굴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 국장은 만약 이런 사업장들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인정을 받는다며 호텔업뿐만 아니라 모든 업종에서 근로기준법을 피해갈 수 있는 사례를 열어주는 꼴이 될 것 이라며 서윤씨의 사건이 굉장히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동해

news1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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