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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혜진 :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의 권리찾기(2019.10.07) | 권리찾기센터

  • 초코
  • 2020-02-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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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



김혜진

(권유하다 운영위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권리는 승자의 전리품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권리는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많은 이들의 ‘자격’을 문제삼아 권리로부터 배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 생활임금을 받을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조로 뭉칠 권리,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권리, 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생활이 가능할 권리 등 노동자들의 권리는 그 노동자들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국적이 어떠하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권리’이다.


지금 한국사회 노동자 중에서 누가 권리를 온당하게 보장받고 있는가. 비정규직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43%이다. 정부통계로도 33%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의 경우 해마다 계약갱신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정도이며 차별에 시달린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고, 계약직 노동자들은 재계약을 거부당할 수 있으므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노조가 있어도 가입이 두렵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로도 인정되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권리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5인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580만명이 넘는다. 이 중 무급가족종사자를 제외하더라도 35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단지 작은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노동시간의 권리, 해고를 함부로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1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밖에 안되는 등 노동조건이 매우 심각하다. 사업장단위의 교섭이 일반화되다보니, 사용자와 함께 일하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교섭을 통해서 권리가 지켜질 것이라고 믿지 않으니 권리찾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노동자들은 어떠한가? 한국은 OECD 국가에서 남녀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62만8천원을 받는다. 남성이 생계부양자라는 인식이, 그리고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묶어둔 현실이 이런 성별 임금격차를 만들고 있다. 고령의 노동자들은 온전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고, 정년을 제대로 보장받지도 못하는데, 그나마 정년에 이른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로 임금삭감을 당한다. 청소년노동자들은 근로계약도 없이 위험한 일자리에서 일하거나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형편에서 권리를 제약당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라는 틀에 묶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갖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퇴직금도 출국을 하는 당일에야 지급받을 수 있어서 퇴직금을 떼이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최저임금에 숙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형편 없는 비닐하우스 숙소를 제공받으면서도 숙소비를 공제당한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적용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노동하는 이들의 생계를 위한 최저선이므로 그 누구도 최저임금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은 장년의 한국국적 비장애인 정규직 남성들밖에 없다. 그마저도 300인 이상 정도 되는 사업장에서 일해야 가능할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생각해보자.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었지만 주간연속2교대제를 요구하면서 유성기업이 납품하는 현대자동차의 눈밖에 났고 그로 인해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업체를 동원한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 사측의 공작에 의해 고통을 당했다.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권리를 온전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있기는 한 것인가.


누군가의 ‘자격’을 빌미로 권리에서 배제하면, 그 배제의 범위는 점차 확장된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남녀고용평등법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의 임금격차는 계속 벌어지며, 고용허가제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노동조합을 할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에 노조법 개악으로 응답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농성을 경찰력을 투입하여 모욕하고 있지 않은가.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부터 권리의 주체였음을 자각하고 함께 뭉쳐서 찾는 것이다. 내 권리만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권유하다가 ‘권리없는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권리찾기를 시작한 것도, 바로 ‘모든 노동자가 권리가 있는 주체’라는 점을 선언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지금의 여러 제도적 한계로 인해 모든 노동자의 권리찾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 우리를 막고 있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생길 것이다. 비록 그 길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직접행동’을 통해 권리찾기가 가능함을 믿는다. 그래서 ‘권유하다’가 소중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