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유하기

사투

  • iron
  • 2020-05-20 17:48
  • 4,700회

한 번은 써보고 싶던 이야기. 머릿속에 오로지 한가지 목표 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던 시간, 바로 변비와 사투를 벌이던 시간의 이야기다. 사투. 죽을힘에 젖 먹던 힘까지 더해야 하니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 여겨진다.

 

청소년 시기 매일 아침 쾌변을 보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종일 교실에 앉아만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러지 않았을까. 대학 때는 농활 가면 변비가 왔다.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이 동일하게 주어지니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마련. 시골에서 자라서 재래식 화장실은 친근한 곳이었지만. 벽이며 문에 듬성듬성 있는 틈으로 사람들을 빤히 내다보며 또 코앞인 듯 들리는 대화까지 들으며 집중해서 거사를 성사시키긴 어려웠다.

 

그 정도는 변비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진정한 변비를 만난 후였다. 뱃속 둘째 아이가 8개월 무렵이었다. 부푼 배로 2살짜리 아이를 돌보며 여유롭게 화장실에 갈 틈도 없었다. 아이도 남편도 잠든 자정 무렵. ‘때는 왔다.’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갔다. 두어 시간은 족히 힘을 주다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시점엔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들어갈 땐 그냥 걸어 들어갔던 길을 나올 땐 벽을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어야 했다.

 

혼자서 해결해 보려는 건 여기까지. 미안하지만 자는 남편을 깨워야 했다. 남편이 약국에 가서 사 온 주사기 모양으로 관장액을 여러 차례 밀어 넣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했으나 성공에 이를 수 없었다.

 

하다 하다 드디어는 산통에 이르렀다. 앉아있을 기력도 없어 화장실 바닥에 수건을 깔고 누워 물고기처럼 파닥였다. 나오라는 건 아니 나오고 아이가 나올 판이 된 거였다. 집에서 해결해 보려는 건 여기까지. 결국 응급실에 갔다.

 

바보같이 왜 그러셨어요?”

 

응급실 인턴의 말인즉 진즉에 병원에 왔어야 했다는 거였다. 참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다. 첫째를 낳을 때도 호흡소리 말고는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하지만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산모는 산통이 올 수 있어 관장을 금해야 한다는 건 나중에 책으로 보았다. 응급실에서 자궁수축 이완제를 투여받으며 아침까지 누워있어야 했다.

 

둘째가 팔삭둥이로 태어날 뻔했던 사건 외에도 살아오며 같은 시간이 두어 번 더 있었다. 집에서 나가기 전 변기에 앉았다가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볼일을 못 봐서 나가지 못 하고, 전화로 볼일을 보았다. 행사에서 내가 맡았던 노릇은 급하게 다른 이에게 부탁했다. 다른 지인에겐 약국에서 마그밀이며 푸룬 주스를 사다 달라고 요청했다

역경의 시간 속에도 친구들 몇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몇 줄 전했다. 몇몇이 나름의 비법을 전수했다. 약을 먹고 주스를 마시고 들기름을 탄 물까지 마시며 변기를 타고 앉아있어야 했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족히 8시간은 사투를 벌였던 거 같다.

 

욕실에 비상용으로 두는 게 전에 응급실에서 일러준 푸룬 주스다. 서양자두 주스로 약국에서도 파는데 의료용으로도 쓰인단다. 난 푸룬 주스 전도사가 돼서 장운동이 약해진 주변의 어르신들에게 권하고, 내가 사서 택배로 보내드리곤 한다. 큰일을 치르는 힘겨움과 고통을 아는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전에 송경동 시인의 학문이 열리던 날이란 시에서 , 이런 전투는 처음이야 / 눈물 콧물 흘리며 혼자 용을 쓰는 밤이란 구절을 읽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송 시인이 아는구나 싶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