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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iron
  • 2020-05-19 17:06
  • 4,289회

자라면 가수가 돼야 할까 생각했다. 내가 열창하면 어른들은 열광하던 기억. 별다른 율동도 없는데 노래 1곡만으로 그렇게 웃고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용돈을 후하게 주실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는데 장기자랑 시간이란 게 있었다. 주로 노래를 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나도 노래를 했는데 앞자리 아이들이 소곤거렸다. 음치라는 단어도, 내가 음치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됐다. 어른 중 단 한 명의 솔직한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입을 모아 잘한다는 추임새를 넣어서 진짜 노래를 잘하는 줄만 알았던 거다. 내가 음치인 걸 알게 되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너 이름은 뭐니? 몇 살이야?”

 

처음보는 어른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에 아, 나는 크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야 하는구나.’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으레 하는 소리였는데 말이다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게 어렵다. 더 먹고 싶어도 됐다고 그러는 건지, 배불러도 예의상 한 개 받아먹은 건지. 사람들의 사회성 너머 진심을 간파하기. 이게 나의 세상살이 숙제다.

 

이모네 놀러갔다가 닭 모가지를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먹기 싫은데도 꾸역꾸역 여러 개나 먹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데도 어른들은 장난으로 말하고 진심으로 행동하는 나를 보며 재미있어했다

하교 뒤 엄마는 어디 갔을까 둘러보는 나에게 "니네 엄마 바람나서 집 나갔다." 깔깔대던 아줌마들도 생각난다. 바람이 뭔지는 몰라도 허전하게 구멍 난 마음으로 바람은 휭 불어왔던 듯하다. 난 아이를 놀려먹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닭 모가지 먹고 노래 솜씨가 나아진 건 없었지만, 암튼 내 노래는 인기였다. 생일날 내가 불러주는 노래는 친구들에게 선물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너 학교가 모여 체력장을 하던 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학교 대항 노래 경연이 열렸다. 모두 학교에서 첫손 꼽히는 아이들이 앞에 섰다. 우리 학교 친구들은 나를 추천했다. 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갔다.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들이 수군대며 술렁였다

 

야 장난이겠지?”

 

설마. 진짜면 어떻게 저렇게 불러?”

 

표정 변화 없이 가사는 정확하게. 끝까지 불러서 내 임무를 완성했다. 아이들의 박수로 순위를 결정했다. 어슷비슷한 실력보다는 용기를 인정받아서 우리 학교가 1위를 했다

  

사실 난 노래를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단짝이 마이마이라는 워크맨을 사서는 자율학습 시간이면 소중한 걸 건네듯이 이어폰 한 짝을 주었다. 영락없이 귓구멍에 꽂고 라디오를 들어야 했다. 진행자가 얘기하는 멘트보다는 차라리 음악이 나을 뿐 내게 가장 최고의 소리는 그제나 이제나 정적이다.

 

대학 때 뒤풀이를 하면 사람들이 노래를 강권하며 부르던 타령이 있었다.

 

노래를 못 하면 시집을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시집을 가더라도 아들을 못 낳아요. 아 미운 사람. 아들을 낳더라도 쌍둥이를 낳아요. 아 미운 사람.”

 

강권의 형식도 문제지만 지금 들으면 가사가 영 그렇다. 분위기를 망칠까 봐 주섬주섬 일어나서 노래하곤 했는데. 그 때! 노래를 하지 말았어야 했지 싶다. 노래를 안 했더라면 시집가는 일도 없었을까. 결혼이란 제도에 코가 꿰는 일은 노래 부르는 것처럼 즐겁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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