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유하기

내 마음의 개

  • iron
  • 2020-05-13 17:10
  • 4,572회

우리집은 반려견, 반려묘도 없는데 왜 자꾸 로렌츠간식이 와?”

 

“‘로렌츠지원.”

 

오늘 남편과 주고받은 톡이다.

 

우린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라는 공동체 주택에 산다. 아홉 가구가 살며 서로 소행주 식구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있다. 한 집의 아이(?)가 창업해서 반려동물 간식을 생산하는 청년기업을 꾸렸다. 이를 응원하려는 마음으로 개도 없는데 개 간식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 간식은 또 어딘가 필요한 곳에 선물할 것이니 낭비랄 것도 없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던데 주변 챙기는, 주고 싶은 마음 하나는 닮은 거 같다.

 

우리집에 개는 없지만 내 마음의 개는 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복도 포함 11평인 아주 많이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고3인 오빠가 정신질환이 와서 조금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마련하려는 차원이었다

엄마가 잡종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왔다. 마침 눈이 오던 날이었고,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두려워하는 강아지의 눈망울을 보며 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식구들마다 다른 이름을 지어 불렀지만 결국은 내가 지은 이름으로 낙찰됐다. 강아지가 그 이름에 호응했기 때문이다.

 

우리집 식구가 세계의 전부인 강아지. 식구 중 나를 제일 좋아하니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하는 거였다. 나를 최고로 좋아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소중한 느낌이었다. 부모님께서 삼 남매 중 나를 일순위로 좋아한다는 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집으로 올 때면 50원어치라도 꼭 무언가를 사서 들어왔다. 강아지가 과자를 아삭아삭 베어 먹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했다.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내 몫을 남겨서 강아지에게 주곤 했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걸 바라보는 농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엄마는 개만큼만 날 생각해 달라고 했다. 어린아이가 된 오빠는 내가 마당에서 강아지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으면 거실 통창을 두드려가며 부러워했다.

 

강아지였던 눈이는 개가 되었고 또 어미 개가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교 4학년생이 되었고 어미 개가 된 눈이가 대견했다. 새벽에 술 마시고 들어올 때만 해도 부푼 배로 헐떡이고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배가 홀쭉했다. 개집을 들여다보니 세 마리 강아지가 있었다. 첫 출산이되 노산인데 혼자서 해낸 거였다

금빛의 강아지는 금비, 은빛은 은비, 검은빛은 실비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강아지를 낳고 젖이 축 늘어져 나이 든 느낌의 눈이를 보노라면 출산과 수유라는 과정이 몸에 주는 변화를 애처롭게 실감할 수 있었다. 젖이 부족한 듯해서 분유를 사다가 물에 타서 개밥그릇에 부어 주었다.

 

이건 니 거 아니야.”

 

지금도 후회하는 건 눈이는 먹지 못하게 막고 강아지들에게만 그릇을 밀어준 거다. 어미 개가 잘 먹어야 젖이 잘 나올 텐데 그땐 그걸 알지 못했다. 팔로 막은 내 앞에 저항도 없이 다소곳이 앉아있던 눈이에게 사과도 못 했는데. 눈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은비는 약하게 태어나서 이내 세상을 떠났고. 금비는 이모네로 입양 보냈는데 없어졌고, 실비마저 열린 대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실비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루던 새벽엔 들려오던 오토바이 소리도 원망스러웠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처럼 느껴져서였다.

 

내가 다시 개를 키울 일이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거 같다. 한 생명에 온전히 정을 주고 이별하는 일은 참 버거운 일이란 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맺은 관계 속에 남은 추억만은 가슴 속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서로를 길들이고 돌보며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내 마음의 개 눈이 이야기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