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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복사꽃과 나

  • iron
  • 2020-04-22 15:34
  • 4,430회

봄인데 바람이 찬 날이다. 나뭇가지가 휘청이며 흔들린다. 어느 꽃나무는 벌써 꽃잎이 흩날리기도 하겠다. 사과꽃, 배꽃, 살구꽃, 복사꽃, 매화, 벚꽃 종류는 지는 모습도 예쁘다. 시든다는 느낌 없이 이형기의 낙화처럼 하롱하롱 진다.

 

나는 특히 복사꽃을 좋아한다. 활짝 핀 복사꽃을 보며 내 어린 마음도 함께 피어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사꽃을 보면 엄마 생각도 난다.

 

엄마는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크고 감정 기복이 큰 편이었다. 난 작고 조용하고 감정기복이 없는 편이다. 서로 정반대로 다르다 보니 약한 존재인 딸로 애로가 많았다.

 

엄마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때리고 하는 일에 상처받을 때면 찾는 공간이 있었다. 안방 미닫이 뒷문을 열면 뒤뜰을 바라볼 수 있는, 좁은 쪽마루가 있었다. 거기 무릎을 세워 앉아 고개를 묻고 애써 엄마를 이해해보려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울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람이 살랑 불고 눈앞에 환한 햇살을 받고 있는 복사꽃이 있었다. 바람이, 햇볕이, 활짝 핀 꽃송이가 다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는 시에프 문구처럼 복사꽃은 그렇게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물론 애써 추스른 마음도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엄마를 보며 다시 상처받긴 했지만.

 

뒤끝이 없다는 엄마와 뒤끝이 긴 딸이었다. 뒤늦게 엄마에게 미안하다. 평생 엄마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의 마음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엄마는 늙고 아프고 약한 존재가 되고, 나는 성장하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서도 그랬다.

 

다행이라면. 말기 암에 치매가 온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라고 사과할 수 있던 거다. 엄마는 말간 눈으로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날 바라볼 뿐이었지만. 후회라면.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지 못해 엄마, 사랑해.”라는 말은 돌아가신 뒤 눈 감은 엄마에게 할 수밖에 없던 거다. ‘난 엄마를 안 좋아해.’라고 생각했고 넌 엄마 안 닮았다.’는 주변의 말을 칭찬 삼아 지냈지만, 엄마는 부족하든 넘치든 엄마였다.

 

엄마는 백일홍 나무 아래 잠들어 있다. 아버지가 하늘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꽃동산에 누워 있다. 아버지는 그 옆에 백일홍 나무 두 그루를 더 심어 가꾸고 있다. 아버지 수목장용 나무 하나, 19살에 정신질환이 와서 우리 가족 외 곁에 아무도 없는 오빠 몫의 하나다.

 

나는 죽으면 복사꽃을 심어달라고, 복사꽃이 피면 내가 웃는 듯 보아달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해 놓았다

내가 받은 복사꽃의 위로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한점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지나갈 길에 뿌려지는 꽃비 중 하나로, 누군가 마침내 걸어갈 꽃길을 만드는 꽃잎 하나로 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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