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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것처럼

  • iron
  • 2020-04-09 14:57
  • 5,157회

지난 월요일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다. 오전 운동에 조금 늦어 서둘러 가던 길이었다. 마침 건너편에 공사가 진행 중이라 먼지가 일고 있었다. 빨리 통과하자는 일념으로 커브를 돌다가 그만 넘어졌다.

 

아아 나는 이럴 때 아픈 것보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고통으로 잠시 멈춰있고 싶었지만 빠르게 일어났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길을 건너와 괜찮냐고 물어 괜찮다고 답했지만. 사실은 아팠다. 타박상으로 멍들고 까진 정도라도 아픈 건 아픈 거니까.

 

방심했다. 삼발이 자전거로 일주일에 2회씩 익숙하게 다니던 길이었는데 삼발이가 커브엔 약하다는 걸 간과했다. ‘어른이니까툭툭 털고 일어나 천천히 자전거를 굴리며 생각했다. 살아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이렇게 자전거 타는 것과 같지 않을까. 방심하면 안 되고 오만하면 안 되고.

 

며칠 전 저녁에 한 지인이 누군가를 짝사랑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전거에서 넘어진 얘기를 비유로 들어주었다. 혼자 넘어져 찰과상을 입었는데 만약 달려오는 차랑 정면충돌한 거였으면 병원에 가거나 영안실에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짝사랑은 비교적 안전하겠다는 나름 위로의 얘기였다. 혼자 좋아하니까 실연당할 일도 없고, 혼자 좋아하니까 그 마음이 다했을 때 상대가 상처받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위로가 안 됐다. 아프니까 사랑. 짝사랑이라도 충분히 힘들고 힘껏 아플 테니까.

 

여섯 살 때 유치원에서 한 친구를 좋아했다. ‘얼레리 꼴레리소리 들을까 감정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감정조차 까맣게 잊었다가 나중에 사진을 보고 떠올렸다. 그 아이가 좋아서 그 아이 쪽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찍은 졸업사진이었다. 유치원 앨범을 들춰보니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돌아보느라 뒤통수가 찍힌 사진이 많았다.

 

아홉 살 때는 같은 반 짝꿍을 좋아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여러 친구와 놀이를 했다. 나는 내 감정이 드러날까 짝꿍을 뒤쫓지도 못했는데. 다른 여자아이가 줄기차게 짝꿍을 따라갔고. 마침내 잡았고. 짝꿍이 그 아이의 끈질김에 찬탄하며 어깨인가를 안았고. 내 가슴이 무너졌다. 그때 결심했던 듯하다. 혼자 하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실연당한 사람은 구질구질하게 굴었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며 울거나,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울거나. 암튼 찔찔 짰다. 그런 걸 보면서 짝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더 굳혔던 듯하다.

 

나를 먼저 좋아한 사람과만 사귀고, 먼저 돌아설 수 있을 만큼만 마음을 주며 안전한 사랑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나이를 참 많이도 먹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노래에서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가사를 좋아한다. 아무것도 없는 회색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실연도 달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짝사랑으로 힘들다는, 젊은 지인을 제대로 위로해줄 수 없었던 건 그마저도 부러워서가 아니었을까. 늘 조바심치며 아프고 언제나 힘들더라도. 그런 감정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우니까 말이다.

맞은편에 있던, 나보다 나이 많은 지인에게 얘기했다. 우리도 각자 연애하자고

 

이제 두려움 없이 분투!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더라도 발딱 일어나 다시 달리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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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처럼님의 댓글

들불처럼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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