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를 안 하면 술이 서운할 거 같아서. 오늘은 술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도 엄마도 술을 못 마셨다. 아버지가 술 한 모금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대학 신입생 때 막걸리를 마시고 호흡이 가빠져서 응급실에 갔다가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다는 얘길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대학 때 일기장을 봤는데 ‘오늘은 맥주 2잔을 마시고 만취해 돌아왔다.’ 뭐 이런 구절도 있었다.
아버지는 이른바 술 냄새만 맡아도 핏줄이 불거지는 체질. 엄마는 맥주 반 잔만 마셔도 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자평하는, 저렴하게 취하는 타입.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가, 알코올계의 흙수저인 내가 여느 사람처럼 술을 마시는 건 노력!의 결과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누구는 아버지가 반주하며 소주 2병은 거뜬히 비운다는 성골, 진골의 가계를 얘기하지만. 나는 스스로 몸을 일으킨, ‘개천에서 용 났다.’ 케이스라는 얘기를 하는 거다.
대학을 지방으로 가게 됐다. 친구들이 걱정했다. 주량을 알고 가는 게 안전할 거라고 함께 주점에 갔다. 곤장을 맞을 때 한 대요, 두 대요 외치듯 내가 마시면 친구들이 한 잔이요, 두 잔이요 헤아렸다.
이야기도 나누고 안주도 먹어가며 천천히 마시는 게 아니라 연거푸 마시는 잔 수가 주량인 줄 알고 그렇게 했다.
마시다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걸음걸음 토했다. 그렇게 첫날부터 토하기 시작했다.
호랑이와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을 때도 그 기간은 정해져 있었다. 한데 내가 술을 마시며 토하는 나날에는 언제까지라는 기약조차 없었다.
게다가 어느 날은 입으로만 토하는 게 아니라 코로도 뿜듯이 토해야 했다. 눈물이 났고 죽을 만큼 괴로웠다. ‘고춧가루 고문이 이런 거겠구나.’ 간접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여름방학에야 술 마신 딸을 처음 본 엄마는 식중독인 줄 알고 응급실에 데려가려 했다. 나와 같은 전신 반점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한 명 본 적이 있다. 바로 내 동생이다. 체질이라는 반증이다.
몸에서 안 받는 술을 마시고. 변기에 토하곤 말끔히 세수하고 나와서 다시 마시는 세월. 딱 2년이 되자 전신 반점 대신 다른 사람들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정도로 변했고, 토하는 일이 사라졌고, 그저 웃다가 필름 끊기는 버릇만 남았다.
몸에서 받지 않는 걸 왜. 중단하지 않고 마셨을까. 아마 중학교 때 존경한 국어 선생님에게 마음으로 한 약속 때문 아니었을까. 국어 선생님이란 직함에 걸맞게 늘 시를 칠판에 적어주시던 선생님. 알코올 중독의 몸에 담긴 그 맑은 영혼.
‘내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술을 마셔서 선생님을 이해해야지.’ 했던 열세 살의 다짐을 지키고 싶었던 때문 아니었을까.
물론 잘 마신다는 부추김에 더 마셨고, 여성은 대개 자정이 되기 전 술자리 중간에 일어서니 오기로 더 마셨고, 웃고 장난치며 쾌활한 이완의 시간을 즐기느라 줄기차게 마시기도 했다.
2020년 술자리를 월 15일 안팎으로 줄였다. 낮에 카페에서 모임이 잡히면 차를 마시는 게 아까워서 “난 맥주 1병~” 하는 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맞지도 않은 술을 받아주며 별 탈 없이 있어 준 것에 고마워하며 몸을 조금 아껴주는 마음을 내려는 거다. 그래야 몸도 술도 좋은 친구로 내내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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