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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폭력에 대처하는 자세도

  • iron
  • 2020-03-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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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길을 걷고 있는데 도를 믿으십니까?’ 어떤 이가 접근했다. 안 믿는다고,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계속 따라오며 옆에서 걸으니 일행 같은 모양새가 됐다. 자꾸만 아가씨라고 해서 결혼했다고 답했을 뿐인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실실 샐샐 웃으며 손이 반소매 안쪽으로 들어와 팔뚝 안쪽을 주무르듯 꼬집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좀 만져줘야, 추임새 넣듯 스킨십을 해주며 치근덕거려야 좋아한다는 굳건한 오해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 한마디에 그렇게 돌변할 수 있는 건지

 

성폭력의 현장에서 그때도 다른 때도 놀라고 당황했지 화를 내며 분명히 감정을 표현하진 못했다.

아줌마라고 더 쉽게 보고 치근대는 것도 있지만 사실 성폭력은 더 미숙하고 더 젊고 더 어린 날에 빈번했던 듯하다.

 

6개월 전부터 어깨가 아파서 추나와 침 치료를 받고 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권유했다. 아프다고 말만 하며 병을 키울 게 아니라 잘 치료받고 완쾌하는 날을 같이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근데 한 친구에게서 어제 치료 중 불쾌한 일이 있었노라는 카카오톡을 받았다. 병원이 6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퇴근 후 치료받기가 불가능했는데. 특별히 620분 마지막 환자로 받아줘서 고마운 마음으로 잘 다니고 있던 참이었단다. 간호사도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얼마나 놀랐을지 병원을 추천해준 나도 미안해졌다.

 

의료 행위 도중 성추행이라 느꼈던 순간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치료의 목적인지 추행의 의도인지 경계는 불분명하지만, 당시자는 분명하게 느낀다. 

 

1993년 허리가 아파서 뼈 사진을 찍을 때도 배꼽 위치를 확인한다며 가운을 헤집던 손길을 기억한다. 의료적으로 불필요한 행위였다

 

2007년에 허리가 아파서 추나를 받던 병원.

 

힙 업 운동하세요?”

 

스판 바지를 입고 가서였을까? 불필요한 질문을 하던 그날의 치료는 껴안는 듯한 동작으로 계속 이어졌다. 나는 신뢰를 잃어 다시 가지 않았을 뿐이고 병원은 환자를 잃었을 뿐. 재발방지를 위해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 때 동네서 치과 치료를 받을 때도 불쾌했다. 치료 도구를 놓는 그릇이 분명 옆에 있음에도 도구를 사용하곤 내 가슴에 내려놓고 다시 집어 들고 하며 접촉이 이어졌다. 그때도 난 치료를 위해 벌렸던 입을 쩍 벌린 채로 '그냥' 있었다.

 

친구는 불쾌함을 분명하게 전달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랑 통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상황을 분명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과를 받아야 한다거나 이후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면 내가 함께하려 한다

나도 추나와 침 치료를 받으며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손이 아니라 말로 해도 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겠다.

 

오늘은 정형외과에서 어깨에 주사를 맞기로 예약한 날이다. ‘내가 널 낫게 해줄게.’라고 내게 한 약속을 지켜갈 거다

어깨가 낫도록 노력하는 한편 성폭력에 대처하는 자세도 나아지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생각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대처하지 않아서 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다른 여성을 위해서도 분명하고 단호해지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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