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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밤 까기

  • iron
  • 2020-03-23 15:27
  • 4,473회

간밤을 새웠다. 쓰기로 한 글이 있었는데 미룰 수 있는 날까지 미뤘고 그게 일요일인 어제였다. A4 5~6장으로 분량이 좀 있고 잘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니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할 자료도 꽤 있었다

바쁘면 바빠서 쓸 수 없었지만, 사실 시간이 나면 딴짓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숙제가 많으면 책상 정리를 하고, 시험 때면 괜스레 소설을 읽고 싶은 딱 그 마음으로 말이다.

 

난제는 본격 숙제에 달라붙기 전에 해야 할 숙제가 또 있다는 거였다. 목요일 밤까지 주기로 한 A4 2장 분량의 글이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며 어차피 지금 드려도 퇴근하셔야 하고, 편집하고 그럴 시간은 없겠네. 월요일 작업하시도록 주말에 드려야지.’ 원고를 부탁하는 사람이 언제까지다.’ 하고 얘기하면 거기에서 하루 이틀은 여유가 있음을 경험 속에 알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곤 토요일에 술을 마셨다. 왜냐면 내겐 일요일이 있으니까

 

마감 임박해서 씻지도 못한 행색으로 책상에 앉을 때면 늘 하는 생각 두 가지가 있다

왜 써달라는 권유를 받으면 두말하지 않고 한다고 하는 걸까.’ 처음엔 부탁이지만 시일이 늘어지면 청탁자는 채권자로 바뀌고, 난 미안한 마음 만빵 채무자가 되곤 하는데

또 하나는 왜 미리미리 하지 못하는 걸까.’ 괜히 카톡방이랑 텔방 여기저기 참견할 시간이면, 다음뉴스 검색하며 기웃거릴 시간이면, 주말 침대에 누워 전화기 앱으로 영화 한 편 볼 시간이었으면 벌써 썼어도 다 썼을 텐데

 

내가 날 아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테고, 일찌감치 끝내놓는 성실함을 발휘하지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흘려보내는 것 같은 시간도 워밍업. 마음의 준비시간이다. 그리고. 어떻게 내일 해도 되는 일을 오늘 할 수 있단 말인가. 

 

일요일 저녁에 원고 하나 마무리해서 보내고. 자정부터 의자에 앉아 아침을 맞이해 숙제 끝~을 겨우 외쳤다

일요일까지 전하기로 했으니 마감 타이머를 일요일 자정까지로 설정... 밤에는 어차피 자느라 읽지 못할 테니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기 전까지면 된다고 설정 확장... 이렇게 마감을 자체 연장하는 유연함 속에 수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술자리에서 전화 받고 수요일까지 보내달라는 원고 부탁에 밝고 명랑하게 , 그럴게요.” 답한 게 남아있다는 게 함정

 

글을 잘 쓰지는 못해도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건 맞다. 글을 쓴 뒤 내가 담고 싶은 내용을 적절히 표현했는지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딱 내 마음을 담은 적확한 문장으로 고치고 다듬는 과정도 좋아한다. 완성된 글이 맘에 들 때는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놓여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살면서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거. 그게 뭔지를 안다는 것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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