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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iron
  • 2020-03-11 15:43
  • 2,657회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홈페이지 활성화에 보탬이 되려고 한달까. 많은 사람이 게시판에 무어라도 편하게 글을 썼으면 해서 나부터 매일 글 하나씩 올리려 한다.

 

규칙적으로 쓰고 올려야지 하니까 생각이 난다. 십여 년 전에 3년 동안 지역 공동체라디오 마포에프엠에서 생방송을 맡은 적이 있다.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을 하다가 나중엔 2시간을 담당했다. 오전 7시 전에 일어나 부리나케 두어 시간 대본을 쓰고 잘 씻지도 않고 방송국으로 달려가 진행을 했다.

 

금요일 대본을 다른 요일에 쓰면 다리 뻗고 잘 텐데. 그러질 못하고 닥쳐서 하는 성정 그대로 당일 쓰고 바로 달려갔다

5분여 늦어서 피디인 친구가 노래를 먼저 틀어준 일은 있지만, 펑크를 내거나 한 적은 없다. 목이 잠기지 않도록 전날 저녁엔 술까지! 안 마시는 성의를 냈다. 애초 시작할 때 결심이었던 3년을 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큰 애가 어릴 때라 오줌이라도 누러 눈 비비고 일어났다가 컴 앞에 앉아있는 엄마를 보면 한 소리했다.

엄마, 돈도 되지 않는 걸 왜 잠도 못 자가며 쓰는 거야? 밖에 가서 땅을 파봐. 100원이라도 나오나.”

취학 무렵 아이가 엄마가 고생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자원활동은, 돈으로 바뀌지 않는 노동은 무가치하다는 세상의 논리를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좋아서 하고, 옳다고 생각해서 해온 여러 활동은 사실 내가 누려온 호사이기도 하다. 20대 초반에 남자친구를 사귀며 나중에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질지 아닐지 모르지만 하게 되면 너랑 할게.”라고 했던 철없는 약속

 

20대 중반이 되고 결혼은 할 게 못 된다고 생각했지만 오래 사귄 남자친구는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 했다.

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내 삶을 살고 싶어.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을 하거나 누구 뒷바라지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 내가 너의 그늘이 될게.”

 

그렇게 결혼했고 그렇게 살았다. 결혼 전 학원에서 청소일을 했는데 80만 원을 벌어도 은행에서 대출이 안 됐다. 근데 결혼하고 남편 월급이 상여금 없는 달엔 똑같이 80만 원이었는데 바로 대출이 됐다

결혼장려사회. 사랑했고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 삶을 살기에 준비가 안 돼 있던 나는 순탄한 방향을 선택했던 듯도 하다.

 

결혼생활 23년 차. ‘조신의 꿈이라는 설화처럼 사귀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한세상을 살아낸 느낌이다

23년 전의 꿈을 다시 꾼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만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치열하게 펼쳐보고 싶다

 

살아보지 않은 삶. 가지 않은 길

여전히 내 삶을 살기엔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래도 선택은 능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함께 맞는 비라는 단어가 언제부턴가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가진 우산을 씌워주는 정도가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산을 버리는 일. 중산층이라는 허위의 내 계급을 배반하는 일이 있어야 세상이 바뀌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권유하다에서 1년 정도 자원활동을 하며 일머리를 익힌 뒤엔 나도 상근활동가를 하면서 내가 벌어 생계라는 엄중함에도 책임지며 살려 한다

부푼 포부. 앞으로 1년은 쉰한 살 사회초년생의 수습기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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