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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노래로 사랑을 말하다

  • iron
  • 2020-09-22 18:12
  • 4,167회

러브 레터

 

'언젠가 다른 사람 만나게 되겠지. 널 닮은 미소 짓는. 하지만 그 사람은 니가 아니라서. 왠지 슬플 것 같아. 잊을 수 없는 사람.'

지난 일요일 다른 이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 동승자가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며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러브 레터(이와이 슌지. 1995). 순정녀 히로코가 등산 가서 추락사한 남자 친구를 그리며 '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는 장면이 유명한 영화. 사실 영화의 여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남주인공의 가슴 속 주인공이다. 후지이 이츠키는 성도 같고 이름도 같은, 중학교 동창 후지이 이츠키를 좋아했고, 결혼을 약속한 히로코는 첫사랑 이츠키의 복사판이다. 바로 '널 닮은 미소 짓는' 사람, '니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곁에 두게 되는 사람에 불과하다. 꼭 닮은 두 사람이기에 배우 니카야마 미호가 12역을 맡았다.

 

산에서 떨어져 죽기 전 불렀던 노래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 '나의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라는 가사가 남풍을 타고 북쪽의 이츠키를 만나러 가고 싶다는 해석을 낳기도 하고. 다른 장면에서 마츠다 세이코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정작 죽기 전 부르는 노래가 그이의 노래라는 건 좋아도 좋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는 남주인공을 드러낸다는 풀이도 있다.

 

여하튼 영화는 사랑받았어도 받는 줄 몰랐던, 사랑했어도 하는 줄 몰랐던 여 이츠키가 사랑의 추억을 찾아가는 줄거리다.

자전거 바퀴를 돌려 빛을 밝히고 영어 시험지를 맞춰보던 모습. 도서실 바닥까지 드리워진 하얀 커튼이 바람에 날리며 그 사이로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가 하던 모습. 자전거를 타고 가며 봉지를 씌워주던 모습. 잘 보이고 싶어 아픈 다리로 달리기에 참여하던 모습들이. 참예뻤다.

 

제일 좋았던 대사는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시." 남 이츠키가 여 이츠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도서 카드들을 펼쳐 보이며 하던 말이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빌리고 대여 카드 빈칸에 또박또박 적어 넣었던 무수한 이츠키라는 이름은 어쩌면 자신의 이름보다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

 

남 이츠키가 전학 가기 전 도서실 반납을 부탁한 책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여 이츠키는 그 책의 뒤편에서 그림 쪽지 한 장을 찾는다. 여 이츠키를 그린 남 이츠키의 그림. 사랑 고백의, 글씨 없는 러브 레터가 아련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한 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산 것이다. 책을 다 읽으면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던 잃어버린 시간,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던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한데 장장 전 6권이었고, 첫 장을 보다가 말았고... 그래서인지 아직 잃어버린 시간도, 사랑도 찾지 못했다.

 

 

45년 후

 

여주인공이 상대 마음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45년 후(앤드류 하이. 2015). 우리나라 금혼식 비슷하게 45년을 함께 산 것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던 부부. 남편에게 빙하에서 잃어버린 첫사랑의 시신을 찾았다는 편지가 도착하면서 하루하루 변해가는 아내의 심리를 보여준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남편. 밤에 깨어나 보면 첫사랑 추억의 사진과 영상 가득한 다락방에 올라가 있는 남편. 숨기지 못하는 남편의 변화에 대담한 척하던 아내도 흔들린다. 다락방에 가서 훔쳐보는 두 사람의 과거.

내 삶이 모두 그녀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 아이 없이 살아온 삶도 남편의 의견을 존중한 우리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인데. 임신한 채로 빙하로 꺼져간 그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였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사랑할 때 떠난 사람과 이 할머니 아내는 도대체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이의 젊음은 빙하 속에 있었으니 방부제 없이도 최고의 보존상태일 터다. 사랑의 감정 역시도 그 순간에 멈춰져서 언제 떠올려도 새록새록 되살아날 테니,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을 테니 말이다.

사랑을 잃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결혼이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의 감정이 나달나달하게 남루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이니 말이다.

 

영화는 45년 전 결혼식에서 춤출 때 흘러나오던 그 노래마저도 자신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는 걸 아내가 45주년 파티에서 깨닫는 데서 끝난다. 아내의 각성은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정도 되지 않을까. 

주인공들이 키스하며 끝나는 숱한 영화보다 현실감 짱이다. 잡았던 손을 뿌리치듯 놓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다른 영화로는 '장미의 전쟁'이란 우수작도 있다.

 

 

지붕 위의 기병

 

상대 맘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슬퍼만 할 일은 아니다. 상대를 놓고 나를 찾으면 될 일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사랑은 놓아주는 것이란 훌륭 메시지를 주는 영화로 '지붕 위의 기병'을 꼽겠다.

 

지붕 위의 기병(장 폴 라프노. 1995)은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국경이 봉쇄되고 통행이 제한되는데 남편이 걱정되는 후작 부인은 목숨을 걸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여러 곡절 속에 동행하게 된 기병 역시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킨다. 기병과 함께 사선을 넘나드는 역경을 헤치고 남편의 곁에 다다른 아내. 하지만 아내의 가슴 속엔 이미 기병을 향한 새로운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어떻게 잘 보내줄 것인지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이 영화의 마무리다.

 

'모든 게 그대론데 우리는 변해 있네. 누구의 잘못인지'만 되뇐다면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사랑하지 않는 우리. 그래서 NO NO NO NO NO NO'가 되기 십상이다. '사랑은 한때'이고 '사랑은 이별과 한 패'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유물이 아닌 존재로 상대를 설정하고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은 사랑의 기초다. 사랑의 감정은 시작점이 있고 끝점이 있으면서 또 동시에 끝나지 않는다는 비극성이 있다. 이를 아플지언정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성숙이다.

 

오해의 끝판왕인 스토킹, 소유욕으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이트 폭력, 질투가 키워낸 의심의 감옥에 서로를 가두는 의처증과 의부증 같은 병적 집착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는 데도 자기감정만이 소중하다고 우겨서 될 영역이 아니다.

그래도 정히 혼자서라도 끝끝내 좋아하겠다면. '작은 가슴을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을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가슴 저미는 그리움'으로 간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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