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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함과 용기 그 사이에서

  • iron
  • 2020-06-24 17:51
  • 4,049회

중고등 학교 때. 그 무렵 비겁했던 이야기 세 꼭지.

 

일요일 학교에 갔다. 공부하러 갔다기보다 책을 펼쳐 놓고 노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뭔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충만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쭈쭈바를 샀다. 다 먹으면 물을 담아 물총놀이를 할 수 있는 신제품.

수돗가에서 물을 담고 있는데 행동이 빠른, 수정이라는 친구는 깔깔거리며 벌써 쏘아대기 시작했다. 숙직인지 당직인지 교정을 지나가던 선생님께 딱 걸렸다.

내가 있는 쪽은 시야에서 비켜나서 그랬는지 친구만 야단을 맞는 상황. 행동이 굼떠서 그렇지 똑같은 행동을 하려 했던 거니 똑같이 야단을 맞는 게 맞았다.

생각은 그렇게 했는데 몸은 여전히 수돗가에 붙박이로 있었다. ‘나가야 하는데. 나도 같은 행동을 하려고 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속으로만 생각했다.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거쳐서 오는 아랫동네는 굉장한 부자 동네였다.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넓은 성 같은 집들. 기사가 차를 닦으며 차고 문을 열어놓으면 수입차 같은 차가 세 대는 보였다.

그중 한 집에 사는지 골목에서 커다란 셰퍼드와 맞닥뜨릴 때가 있었다. 늘 자기 밥그릇인 듯한, 역시 커다란 양은 찜통의 손잡이를 목에 건 모습이었다. 조련사가 옆에 있고, 비껴가기에 부잣집 골목은 넓으니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그러다 한번은 학교 근처 인도 보도블록에서 딱 마주쳤다. 마찬가지로 조련사도 있고 밥통도 목에 걸고 있는 친근한모습이었다.

근데 보도는 너무 좁아서 바로 옆에 닿을 듯 스쳐 가야 했다. 셰퍼드는 태연히 지나갔지만 우리는 의연할 수 없었다. 상가에 딱 붙어서 소양이라는 친구와 서로 등 뒤로 가려고 파고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몇 차례 서로를 밀쳐냈다. 개가 지나간 뒤. 정신이 들고 부끄러웠다.

 

같은 반 봉금이라는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라서 환한 시간 하교를 했다. 모험해보자며 평소 다니지 않던 골목을 걸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 고등학생 무리가 보였다. 누군가는 벽에 기대서 있고 누군가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학교 밖에서 게다가 담배라니. 이 불량한(?) 무리가 우리 쪽을 바라보는 순간.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골목 밖을 향해 달렸다. 같이 달려야 마땅할 봉금이는 천천히 슬렁슬렁 걸어서 골목 밖으로 나왔다. 남자 고등학생 중 쫓아온 사람은 없었다. 재빨리 혼자 달려 나온 골목 밖이 너무 눈이 부셨다

 

살아오며 지나고 나서 스스로 자랑스러운 기억도 다행히 있다. 그중에 매와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

 

엄마의 교육관 중 하나는 삼 남매 중 한 명이 잘못해도 셋을 때려야 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착하다고 동네 칭송을 받았던 내가 잘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빠는 엄마가 매를 드는 즉시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동생도 조금 버티다 백기를 들었다. 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말없이 계속 매를 맞았다.

농구와 배구 주장선수를 한, 기운 센 엄마의 매타작에 버티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잘못한 게 없으니 빌 일도 없다는 생각을 지켜낸 어린 내가 자랑스럽다.

 

오빠가 동생을 때릴 때도 내가 가운데서 막아주었다. 다툼의 순간. 오빠는 때리려고 하고, 동생은 내 등 뒤에서 욕으로 응수를 하고, 오빠는 비키라고 하면서 주먹질을 하고 발차기를 날렸다.

내가 비키면 동생이 맞을 테니 그 매를 혼자서 다 막아내던 어린 날의 나도 자랑스럽다.

 

큰아이가 아가였을 때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 못 해서 친정 지하를 고쳐서 살았다. 경사진 곳이라 우리가 사는 곳은 땅 밑이었지만 밖에선 1층인 곳이었다.

방안에서 아기를 재우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여러 명이 동급생인 듯한 한 명을 골목의 끝인 우리집 담벼락에 밀어붙이고 거칠게 윽박질렀다.

저 아기가 잠들어 있는데 조용히 해주실래요?”

방 안에서 차분한 소리로 이야기했건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꽉 다물어라. 아구창 나간다.”

일촉즉발. 한 명을 때릴 듯한 기세에 대문을 열고 나갔다. 대문 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이 후다닥 도망쳐 골목에서 고개만 빼꼼 쳐다봤다. 생각보다 어렸다.

맞을 뻔했던 한 아이가 먼저 도망간 아이들의 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지만, 나도 때리면 맞겠다고 생각하고 나갔던 내 용기를 내가 높이 산다.

 

같은 공동체 주택에 사는 엄마와 새벽녘 귀가길. 골목 앞에 차가 서더니 두 명의 남자가 내렸다. 한 명이 꺼지라고 소리쳤고 다른 한 명은 욕을 하며 도망쳤다.

그러자 소리 질렀던 남자가 도망친 남자를 따라가 잡더니 때린다기보다 패기 시작했다. 넘어진 남자의 머리를 구둣발로 차고, 맞는 남자는 머리를 두 팔로 감쌌다.

다른 엄마에게 신고하라고 얘기하고 내가 다가갔다.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때리던 남자가 멈칫하는 사이 넘어졌던 남자가 일어나 분노의 표현으로 와이셔츠를 벗어 던졌다.

그리곤 때리던 남자에게 반격을 시작했다. 영화 속 남자들은 격투 장면에 이단옆차기도 하고 그러던데 현실 속 남자들은 서로 머리끄뎅이를 잡았다. 어쩌다 허공을 날아 발차기를 시도해도 거리를 가늠 못 해 혼자 철푸덕 떨어진달까.

이런 개싸움을 말리다가 한 남자의 뒤통수에 얼굴을 부딪치기도 했다. 마침 다른 지인들이 골목에 들어서고 여러 명의 남자가 말리고 경찰이 도착해서야 마무리가 됐다.

 

내가 맞더라도 말리겠다는 오지라퍼 행동은 때론 아프고 때론 위험했지만, 스스로에겐 떳떳한 행동이었다.

힘센 엄마에게 엄청 맞으며 맷집을 키운 게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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