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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 iron
  • 2020-06-15 17:49
  • 4,743회

권유하다 사무실 활동가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어제 그제 페이스북에 꿈 이야기며 가위눌린 이야기를 올렸다. 나도 게시판에 꿈 이야기를 올려보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세뇌 교육의 산물로 꾼 꿈. 북한군이 땅굴로 내려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동네 주민을 일렬로 세우고 총을 쏘았는데 쓰러진 사람들은 죽창으로 확인 사살했다. 난 용케 총을 맞지 않았는데 티 나지 않게 꿈틀거리며 죽은 사람 밑으로 들어가서 죽창 끝을 피했다. 깨고 나니 나만 살겠다고 애쓴 게 부끄러웠다.

 

중학교 때 꿈엔 국어 선생님이 나왔다. 신혼부부가 돼서 햇살 환한 시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대야랄지 양푼이랄지 살림 도구 여러 가지를 샀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니 난 존경할 뿐인데 부부라니.’  꿈속 부부라는 설정에도 반성과 성찰을 했다.

 

죽고 싶던 꿈도 있다. 내가 도둑이었다.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물건 주인은 가져간 걸 알지도 못했다. 훔치고 싶어서 훔치는 게 아니라 예쁘다, 멋지다는 생각만 해도 어느새 내 주머니에 들어와 있었다. 의지대로 고쳐지는 게 아니라서 죽기로 했다. 그런데 죽어지지가 않았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발뒤꿈치부터 사뿐히 디뎌졌다. 시도하고 시도하다 좌절하고 좌절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꿈 1순위는 똥 꿈이다. 자주 꾸고 계속 꾸고 있다. 사람들이 복권을 사야 한다고 믿는 대박의 꿈이 아니라 사실은 화장실 꿈이다. 요약하면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지만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그냥 나온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이 나온다. 발판을 딛으러 가는 일이 너무 요원할 정도로 주변이 지저분하고 잘못하면 발밑이 꺼질 것처럼 지반이 약해서 접근을 포기하게 만든달지. 발판 사이가 너무 멀어서 딛는 일 자체가 사람으로선 불가능한 영역이랄지. 도저히 용무를 볼 수 없는 환경으로 세팅된다.

 

수세식일 경우 변기는 있는데 벽 없이 사방이 뚫려있는데다 사람들이 몰려온달지. 변기커버가 엄청 지저분한데 곁에 있는 호스로 실컷 청소해서 이제 깨끗해졌는데 일행이 지금 출발해야 한다고 재촉해서 뒤를 돌아보며 돌아보며 떠나야 한달지. 아쉽고도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된다.

 

꾸고 또 꾸고 비슷하게 꾸고 조금 다르게 꾸는 다채로운 변주의 반복. 한번은 그동안 꾸어온 것이 집합으로 모이기도 했다.

 

시골길을 걷다가 화장실을 찾는다. 운 좋게 쉽게 찾아진다. 게다가 한 개가 아니라 학교 화장실처럼 여러 개가 붙어있어 여유롭다. 맨 첫 칸을 여니 수세식 변기가 막혀서 찰랑 가득 찼다. 뭘 보태기 할 형편이 아니다. 문을 닫는다.

다음 칸을 연다. 변기가 바닥에 있지 않고 벽에 기울어 붙어 있다.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도 변기에 앉아 상체를 펼 수 있는 공간조차 없이 너무 위에 올라붙어 있다. 꿈속에서 의심이 든다. '이거 꼭 내가 꾸는 꿈만 같잖아.' 다음 칸도 그다음 칸도 창조적 상상력의 끝판을 보여주며 거사 성사 불가의 여건이 펼쳐진다.

 

어느 날은 홀처럼 넓은 공간이라는 게 좀 이상하지만 깨끗한 변기를 맞춤으로 만난다. 한데 닫혀있는 줄 알았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오려고 한다. 여기는 화장실이라며 문을 닫는데 저쪽 문도 또 저쪽 문도 활짝 열리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런 걸 인지하고 꿈속에 나오는 사람에게 말하기까지 한다.

 

와 이거 정말 내 꿈에 나오는 상황이랑 똑같아요!”

 

불가항력. 매번 조건이 안좋으니 할 수 없다는 체념이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변기가 아니고 화장실 구석에 볼일을 본 여기저기 무더기들이 보이기도 한다. 볼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나는 저렇게 할 순 없어.’라는 내 선택이기도 하다. 꿈풀이를 찾아보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못하는 꿈은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라고 한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내 꿈과 꿈풀이를 듣고는 딱 내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연애하겠다는 말만 하지 실제 마음을 먹은 거 같진 않다고, 연애는 밑바닥을 보이고 질질 짜고 매달리기도 하며 찌질해야 할 수 있는 건데 우아 내지 고상만 떠는 너에겐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금사빠는커녕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도덕적 저항감만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라서 대꾸는 어렵다.

 

두 번째로 자주 꾸는 꿈은 동전 줍는 꿈이다. 길을 걷는데 땅에 10원짜리도 있고 땅에 반쯤 묻힌 50, 100원짜리도 있어서 즐거이 줍는다. 몇 걸음 걷다가 500원짜리 왕건이를 줍기도 하는 소소한 행복의 꿈이다.

 

돈이 없으면 생각도 못 한 곳에서 돈을 찾아가라고 연락이 온다. 이를테면 출자금 상환 시기가 됐으니 계좌를 알려달라고 하는 식이다. 돈이 떨어지면 예기치 않게 소소하게 들어와서 굶지는 않고 사니 이 꿈도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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