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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놀란다

  • iron
  • 2020-06-11 16:35
  • 3,966회

몇 년 전 전화가 왔다.
 

“남편분이 쓰러져서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요. 이를 어쩌죠?”
 

순간 놀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겠다고. 진짜라 하더라도 답할 것은 하나였다.
 

“병원에 가야죠.”
 

“저... 잠깐만요. 남편분 바꿀게요. 통화 좀 해보세요.”
 

톤의 변화 없는 내 목소리에 전화를 건 사람이 당황해서 허둥대며 다른 사람을 바꿔줬다.
 

“자기야 나 끌려왔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취한 듯 다친 듯 연기하는 어눌한 몇 마디 뒤 원래 전화 건 사람이 말을 이었다.
 

“이제 상황을 좀 아시겠어요?”
 

“제 남편이 아니에요. 이렇게 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상대는 엄청난 욕설 뒤 전화를 끊었다.
 

스팸이라는 확신은 ‘자기야’라는 호칭에서 들었다. 9년을 사귀고 23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호칭으로 서로를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였으니 서로 이름을 부르고, 기분이 안 좋으면 성을 붙여 부르고, 시어른들 앞에서 누구 아빠 정도로 부르는 게 전부. 도대체 무슨 뜬금포로 ’자기‘란 말인가.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역시나 아무 일 없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신고했지만, 며칠 뒤 ‘피해도 없고, 잡기도 요원하니’ 신고를 취소해 달라는 요청만 답변처럼 돌아왔다. 
전화를 건 이가 기대한 건 놀라고 갈피를 잡지 못해 경황없어하는 모습이었겠다. 그러지 않으니 노련한 그이가 오히려 당황했던 것이겠다.

 

이런 나의 평상심에 아이가 서운해한 적이 있다.
아이가 넘어지면 담담하게 “괜찮아. 일어나.”라고 말해주었다. 예닐곱 살 무렵 아이가 요구했다. 집에서 어딘가를 부딪치거나 했을 때 달려와서 살펴봐달라고. "아얏" 소리가 들리면 먼저 부르짖듯 울부짖듯 아이 이름을 길게 외쳐 불렀다. 부산스럽게 달려가서 호들갑을 떨었다. 즐거운 놀이 같은 연극적 과장의 몇 차례 과정이 지나니 맺힌 것이 해소된 듯 이제 됐다고 했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세 살이 되기 전 무렵. 장난감에 발이 끼었다. 상자 위판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양의 구멍이 있고, 거기에 같은 모양을 끼워 넣는 장난감이었다. 남편이 몇 차례 빼보려다 실패하고 아이는 세차게 울었다.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장난감을 해체하려고 드라이버를 찾았다. 남편이 너무 조심스러운 손길로 실패를 반복하는 사이 아이의 발은 부어있었다.

조금 아프겠지만 들어갔으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발목을 잡고 홱 뺐다. 아이가 기억한다면 이런 나의 태연함도 서운한 일일까. 
 

아이가 어린이집 시절. 달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뒤에서 걸어오는 나를 보았다. 앞을 보지 않으며 달려가다가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혔다. 다가가서 아이를 일으켜주며 “많이 놀랐지? 어서 가렴. 내가 치료해 줄게.” 자전거를 타고 있던 중학생 아이를 먼저 안심시켜 주었다. 아이는 아무래도 엄마의 침착함이 서운한 듯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외국 여행지 숙소 수영장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걸 봤다.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키 높이를 넘어선 곳으로 왔던 것이다. 물 밖에 있던 나는 아이 근처에서 수영하는 외국인 어른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내가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어도 도움 될 일은 없었다. 키도 작은데 수영도 못 하니 깊은 곳에서 ‘어푸어푸’ 허우적대며 오히려 구조 대상이 될 판이었다.

아이를 구하는 쉽고 현명한 판단을 내렸건만 아이는 또 서운해 했다. 자기는 죽음의 위기를 느끼는데, 물 밖 엄마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차분했다는 거였다.
 

표정의 큰 변화 없음은 가족의 경우만이 아니라 내 일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친구에게 맡기고 회의를 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택시를 타려고 문을 열었다. 택시에 타기 전 아이 얼굴을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돌리는 사이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와 뒤에서 택시를 박았다. 택시는 ‘쾅’ 소리와 더불어 열린 문 그대로 저어만큼 앞으로 밀려갔다. 만약 영 점 몇 초의 생각과 돌아섬 없이 바로 택시를 타려 했다면 타기도 전에 죽었을 상황이었다.
 

친구는 비명을 지르고 아이도 너무 놀란 표정이었다. 택시와 반 발짝 떨어져 있던 나도 당연히 놀랐다. 꼭 소리를 질러야만, 눈을 크게 떠야만 놀라는 게 아니다. 

댓글목록

킬리만자로의표범님의 댓글

킬리만자로… 작성일

느리!!!언제나 한결 같은...

안녕을위해님의 댓글

안녕을위해 작성일

맞아요. 표정과 억양에 변화가 없다 해서 놀라지 않은 건 아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