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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박쥐

  • iron
  • 2020-06-03 17:30
  • 3,828회

96년경 한 보습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상담 교사하던 친구가 아기를 가졌는데 후임을 정해야 맘 편히 쉴 수 있겠다고 부탁을 했다. 학원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원장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다. 거절을 잘하지 못해서 한 번만 만나기로 했다.

 

입시 앞에 줄을 세우는 일.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공부, 공부에 인생을 거는 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상담은 자기가 할 테니 나는 앉아만 있어 달라고 했다. 어떻게 앉아만 있으며 돈을 받을까. 대학을 다녔다는 기득권으로 쉽게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으니. 몸을 쓰는 일로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사실 강의하거나 상담을 할 능력이나 자신도 없었다.

 

학원에 가니 교실마다 깨져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통을 사자고 했더니 원장은 쓸고 닦을 필요 없이 커다란 쓰레기만 주우면 된다고 했다. 내 돈으로 쓰레기통과 통에 매일 끼워 버릴 비닐봉지 뭉텅이를 샀다. 원장이 영수증을 달라며 비용을 지불했다.

학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교 수업 마치고 또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먼지 속에 앉아있지 않게 하는 거로 생각했다. 바로 주번 의식발동. 

 

급여로는 매우 큰 돈인 80만 원을 받았다. 거액을 받으니 월 2만 원씩만 저금해야지 했는데 단 한 번도 입금하지 못했다. 술 마시기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마 100만 원을 받았더라도 같지 않았을까.

 

서론이 길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학원에서 만난 양 선생에 대한 거다. 강사들만의 첫 술자리였다. 양 선생은 학원에 불만 있는 건 자기한테 다 얘기하라며 투사인양 굴었다. 술값도 자기가 다 계산하며 호기로운 체했다.

 

다음날 상담실 겸 원장실로 오더니 원장에게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모조리 몽땅 이야기 했다. 누가 그만둘 예정이고, 누가 어떤 불만이 있는지 살을 보태 썰을 풀었다. 시간 외 근무를 한 듯 생색을 내곤 술값 영수증을 주고 돈을 받아 갔다

뜨아. 아니 이건 완연한 프락치가 아닌가. 게다가 어제 술자리에 같이 있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도 놀라웠다.

 

양 선생의 '보고' 뒤 원장은 내게 서운해했다. 여러 선생들과 빠르게 친해져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양 선생처럼 자신에게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신규 채용의 몫은 자신에게 있으니 다른 선생이 그만두고자 하는 기미가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원장에게 알리는 건 당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었다.

 

하루는 원장이 선생들의 출근 시간을 적었다가 달라고 했다. 난 출근부를 벽에 부착할지, 책상에 두고 적을지 생각했다. 원장은 선생들 모르게 진행해 달라고 했다

. 아니 밝게 웃으며 안녕의 인사를 하곤 그이가 교무실로 사라지기 무섭게 종이를 꺼내 사사삭 쓰라는 얘기가 아닌가. 안 하겠다고 했다. 양 선생과 같은 비밀 요원 노릇을 거부한 셈이었다.

 

양 선생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반 하나를 만들었는데. 한 반에 있던 아이들 우열을 갈라 우등반을 자신이 맡았다. 그 반의 아이들 숫자는 적게 배치해 강의에 드는 힘은 줄였다. 학원비는 늘렸는데 배로 올려도 학부모는 자부심으로 그 비용을 다 부담했다. 수입이 느니 원장도 잔머리의 대가에게 만족했다. 물론 다른 강사가 더 적은 급여를 받으며 더 많은 아이를 가르쳐야 했다.

 

어느 날. 신임 강사 채용에 참가한 고등학교 동창과 우연히 만났다. 친구는 서류를 제출하고 간단 면접 뒤 돌아갔다.

 

“후질한 00대 다니다가 **대로 편입하려면 머리에 쥐 좀 났겠네.”

 

양 선생은 친구가 전에 다닌 00대학을 형편없게 이야기했다. 자리에 없는 친구 대신 내가 모욕감을 느꼈다.

양 선생은 학벌 자부심이 대단했고 소위 '명문대'를 나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학원 강사를 하는 걸 통탄했다. 이른바 '지잡대'를 다니고 청소나 하는 사람은 그이에겐 애초 사람도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동안 다른 선생들이 자신의 수업 교재 프린트와 복사를 직접 하는데 양 선생은 매번 내게 복사를 부탁하고 쉬는 것도 이해됐다. 서열을 매기는 수직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이에게 동류의식이나 동료라는 수평의 관계를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수강생과 갈등이 있던 선생에겐 니 맘 안다.’ 위로하는 척하고. 돌아서 원장에겐 이러다 학원생 떨어진다며 학원 걱정하는 척하는 그이는 빼도 박도 못할, 영락없는 박쥐였다.

 

내가 처음 학원에 왔을 때 선생들은 각자 비는 시간에 혼자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강의에 들어가고는 했다. 너무 삭막했다. 각자 먹고 각자 계산하는 분위기를 함께 먹고 번갈아 내는 문화로 바꾸었다. 학원이 끝나면 당연히 술을 같이 마시며 돈독하게 지냈다. 하지만 양 선생과는 끝까지 친해질 수 없었다. 불의한 자에게 마음을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향수 냄새 참으로 짙었던 그이가. 인위적인 웃음으로 가식 범벅이었던 그이가. 사람은 출신이나 학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소중하다는 걸 지난 긴 세월 속에 깨달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박쥐, 양 선생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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