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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니 ‘배민 AI’에 착취당하는 나를 발견했다 | 이슈

  • 김한주
  • 2020-07-27 13:27
  • 16,132회

플랫폼이 친숙한 29세의 실업자, 가진 거라곤 자전거와 1종보통 면허밖에 없는 나는 ‘배민커넥트’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배민은 한국 배달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기업이다. 최근엔 배민(우아한형제들) 대표가 네이버와 카카오 대표와 국회 한 자리에 섰다더라. ‘디지털경제’를 ‘미래통합당’과 토론했다고. 이제 한국에서 배민 정도면 독과점 대기업이지. 그만큼 배민 일자리도 많아졌다. 민트색 오토바이를 모는 ‘배민라이더’에 이어 자기 자전거를 타는 ‘배민커넥트’는 그렇게 생겼다.

 

진입장벽은 낮았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구글 양식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니, 계약서명 요청 이메일이 날라왔다. ‘배민커넥트 배송대행 기본계약서’다. 증명사진, 통장사본, 운전면허증 첨부만 하니 ‘계약이 체결됐습니다’라는 메일이 왔다. 교육을 받으라는 문자도 왔다. 교육은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대충 가게 사장님, 배달 이용 손님에게 인사 잘하고, 성적 농담을 건네지 말고, 헬멧 잘 쓰라는 얘기였다. 배민커넥트가 되는 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배달을 뛰기 전에 이미 돈이 빠져나갔다. 자전거만 있다고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배민커넥트’ 앱을 보고 자전거를 타야 해서 자전거용 휴대폰 거치대가 필요했고, 음식을 담을 대형가방, 헬멧은 필수였다. ‘우아한형제들 스토어’에 배민커넥트 가방과 헬멧 3만 8,000원어치를 주문했다. 우아한형제들 스토어엔 배민 우비도 판다. 만 원이 넘었다. 우비는 필수인데, 하는 생각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자, 땀으로 젖든 비에 젖든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번져 우비 구매는 포기했다. 

 

주문한 가방과 헬멧을 사흘 기다렸다. 기대는 커져만 갔다. 하루 4시간만 노동하는데 평균 시급 1만 5,000원. 적은 돈이지만 내게는 많은 돈이기에. 운전과 지구력, 길찾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운전자 상해보험도 적용한다는데 걱정 없었다. 배민커넥트는 부업이라는 취지로 시작한 서비스여서 주 20시간 노동을 제한했다. 20시간을 3일 만에 끝내버릴 근본 없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배민커넥트 모집 공고에 ‘선배 커넥터’의 후기가 보였다. 자전거를 잡은 채 짓는 여유 있는 저 미소, 나도 따라 하고 싶었다. 출근시간은 내가 정한다. 퇴근도 내 마음이다. 앱을 켜고 ‘운행시작’과 ‘운행종료’만 누르면 출퇴근이다. 배민커넥트의 슬로건은 ‘하루 한 시간도 가능한 아르바이트’다. 이렇게 편하고, 쏠쏠하며, 운동까지 되는 아르바이트라니. 

 

 

 

AI에 바친 나의 허벅지

 

오전 11시, 점심시간 ‘콜’이 밀려들 시간. 4만원짜리 배민커넥트 가방과 헬멧을 챙기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집을 나서면서 첫 번째 고민을 한다. AI배차모드로 할까, 일반배차모드로 할까. AI배차모드는 AI가 나의 위치와 동선을 고려해 하나 내지 두 개의 특정한 콜을 부여한다. 이 콜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1분이다. 1분이 지나면 자동 거절된다. AI가 주는 콜을 받으면 건당 수수료 1,500원을 더 준다. 기본 배달료는 3,000원 혹은 3,500원. 여기서 1,500원을 더 주면 한 건을 배달하면 5,000원, 거리가 멀면 6,000원까지 늘어난다. 솔깃했다. AI추천배차 모드 프로모션은 7월31일까지만 한다니. 왠지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왜 AI모드 프로모션을 줄까, 잠깐 생각했다. 이제껏 일반배차 모드로 배달했다. 점심시간 한창일 때 대기 중인 콜만 10개가 넘었다. 빠르게 나타나고 빠르게 사라졌다. 배민커넥터는 ‘이중배차’를 기본으로 한다. 가게에서 음식을 받고 배달하는 길목에 다른 콜이 있다면 가는 길에 들르는 셈이 된다. 또 한 가게에서 두 집의 배달음식을 받아도 시간과 거리상 이득이다. 이중배차로 셈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콜을 처리하게 한다. 숙달하면 한 번에 콜 3개를 안고 간다. 그래서 콜을 고르고 또 거른다. 그렇게 밀려나는 콜의 유형이 만들어진다. 주택가 바깥, 먼 거리, 높은 고도, 이미 배달음식으로 찬 커넥터 가방에 넣을 수 없는 크기의 음식 같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콜이면 남들도 좋아하지 않을 터다. 버려지는 콜은 주문한 시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할증이 붙는다. 버려진 콜을 비싸게 만들어 되살리는 것이다. 그래야 라이더나 커넥터가 ‘쏠쏠한 콜’로 여기지 않겠는가. 한 번은 7,000원 가까운 콜이 떠서 배달했다. 배달 완료 후 주문시간을 볼 수 있는데 손님이 주문한 지 110분이 지난 건이었다. (손님이 내게 화를 내진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배민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콜을 최소화하고, 콜의 균형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넥터가 콜을 고르는 게 아니라 배민이 커넥터에 콜을 적절히 분배해 부여하는 것, 그게 ‘AI 배차모드’ 아닐까.

 

몇 날 며칠 AI배차 모드로 콜을 처리해 나갔다. AI 콜들은 일반배차모드에서 내가 고른 콜보다 거리가 1~2km 더 멀었다. 그렇지, 먼 거리는 버려지는 콜이었겠지. 힘차게 달려 두 건 중 한 건을 처리하면 바로 신규배차 알림이 뜬다. 좀 쉬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동거리가 짧은 게 보이면 또 ‘수락’ 버튼을 누른다. 분명 이동거리는 2km라고 했는데 체감상 5km는 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2km는 앱 지도상 직선거리였다. 자전거로 주행하면 빙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차도로 주행하다가 고가나 지하차도를 만나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철길이나 샛강이라도 나타나면 자전거를 들고 육교나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전경련 빌딩에서 자전거 주차로 경비와 실랑이를 벌이는가 하면, 금융회사 본사 빌딩 로비에서 주문자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앱은 ‘○○분 지연’이라는 빨간색 글씨로 도배된다. 이 빨간 글씨는 내게 과속을 유도한다. 또 과속으로 뜨거워진 몸은 헬멧을 벗게 만든다. 신호 위반하면 붉은 글씨가 없어질 텐데, 하면서 유혹에 시달린다. 지도상 직선거리만 보고 5분 내 픽업, 배달하라고 압박하는 AI가 짜증 나기 시작했다. 

 

 

AI가 효율적으로 콜을 주지도 않았다. AI는 1번 픽업지, 1번 배달지, 2번 픽업지, 2번 배달지 순서대로 가라 한다. 효율적이라면 1번 픽업지, 2번 픽업지, 2번 배달지, 1번 배달지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1km 이동으로 끝날 배달을 3km 이동으로 늘린다. 애초에 AI는 ‘커넥터의 효율적인 배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인 콜 분배를 위한 커넥터 사용’에 방점을 둔 것이다. 배민은 배달 손님의 돈으로 거대 자본이 됐다. 배민은 손님이 바라는 한 가지 ‘신속한 배달’에만 성공하면 된다. 버려지는 콜이 없으면 된다. 배민 AI는 커넥터의 허벅지 따위 안중에도 없다. 

 

신규배차 버튼을 꺼놓을 수는 있었다. 기능을 꺼놓으면 콜이 들어오지 않는다. 담배 한 대라도 필 수 있다.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프로모션이 눈에 밟힌다. “이번 주에 40건 완료하면 추가 2만원 지급!!! AI 프로모션은 별도 지급!!!” 40건은 아직 멀었는데, 하면서 다시 달린다. “11시~13시, 17시~19시에 12건 이상 배달하면 추가 2만원 지급!!!” 감각 없는 허벅지에 불을 붙인다. 그렇게 나는 ‘프로모션의 늪’에 빠졌다.

 

커넥터의 평균 시급이 높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첫째, 진입장벽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노동자를 끌어온다. 둘째, 건당 수수료에 프로모션을 홍보해 강도 높은 노동을 유도한다. 셋째, 더 많은 노동으로 수입은 상향 평준화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균 시급 15000원’을 보고 또 많은 커넥터가 유입된다. 무엇보다 애초에 커넥터는 다른 라이더보다 육체노동을 더 투여한다. 자전거를 4시간 타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많게는 하루에 15건, 20km(앱 지도상 배달 거리)를 달렸다. 1주일 50km 이상 배달한 결과 지금 나의 허벅지와 엉덩이는 정상이 아니다. 라이더는 오토바이 스로틀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반면 커넥터는 허벅지가 터질 듯 다리를 굴린다. 유산소 운동에 숨이 가쁘지만, 헬멧과 마스크는 필수다. 가방에 삼계탕이나 마라탕이 들어있으면 한여름 등찜질도 가능하다. 폭염수당? 33도 이상에만 준단다. ‘그놈의 프로모션’ 40건을 달성한 나는 모든 체력을 소진했다. 

 

히말라야 안나프루나 베이스캠프에 오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래된 자전거를 탓하며 좋은 자전거를 살까, 고민하는 내가 한심해진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온갖 프로모션으로 ‘자기 착취’를 유도하는 배민의 늪은 어디까지인가.

 

 

김한주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