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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하는 사람들] ② 고광빈 ‘붉은 마음, 그 빛나는 마음’ | 사람

  • 김우
  • 2020-07-03 18:06
  • 6,485회

고광빈 님이 일면식도 없는 한상균 동지에게 연락했다.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이하 권유하다)에 음악으로 활력을 더하고 싶다고. 한상균 동지보다 내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전주에 사는 고광빈 님이 서울 오는 날을 틈타 만났다. 


'우리는' 노랫말처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서 카페에 앉아있는 내 옷차림을 카톡으로 알려 만났다.

 

 

권유하다라는 물을 만난 물고기


고광빈 님은 63세. 꽤 오래 다닌 건설회사에서 2018년 1월에 퇴직했다. 일선에서 물러나면 무엇을 할까. 학교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했기에 퇴직 2~3년 전부터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하며 슬슬 인생 2모작을 준비했다. 잊고 살았던 음악이 인생의 물결 위로 다시 부상했다.


서울에서 19명 구성원의 ‘성 프란치스코 하프 앙상블’을, 전주에서 9명 참여하는 ‘아폴론 앙상블’을 이끌고 있다. 특이한 건 하프 앙상블인 것. 어릴 적 집안 분위기에 따라 가톨릭 신자였다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던 시점인 중학교 때부터 냉담자가 됐다. 실제 무신론자이지만 정서적으로 성당 교우들과 교류하기에 스스럼은 없다.

 

 

[사진1] 2017년 14명을 인솔해서 하와이 우쿨렐레 축제에 참가한 고광빈 님(오른쪽) ⓒ고광빈

 

전주에 살아서 가까이 있는 ‘광주를 알았다’는 것은 고광빈 님 삶의 큰 개안이었다. 광주 학살의 내막을 아는 친구들을 통해서 생생하게 ‘광주를 보았다.’ 학생 때는 일선에서 뭘 맡은 건 없었어도, 피로 얼룩진 권좌에 앉은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을 향해 돌을 던졌다.


외국 건설 현장 출장이 잦았던 생활을 마감하고. 참여와 표현의 기회도 없이 살았던 시기를 마감하고. 이제 때를 만났다. 음악도 활동도 되찾을 때를 만났다. 회사 생활하며 노조 활동은 못 했지만 또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무어라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댄다.

 

한상균 동지는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 뉴스로 간간이 접했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말과 글을 통해서도 사람이 보였다. 사심을 버리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고, 노조를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에 깊이 동의가 됐다. 


한상균 동지가 노조를 조직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조 사각지대를 제대로 일굴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해낼 수 없으니 나 같은 사람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이다. 돈이 많다면 후원금을 많이 내겠지만 근근이 연금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가진 재주를 활용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혹 권유하다가 흐지부지될지도 모르지만 모든 일은 시도해봐야 아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 더는 세상을 강 건너 불 보듯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고광빈 님이 권유하다를 만난 건 바야흐로 물을 만난 물고기의 심정 아닐까. 

 

 

클라우스를 영접하다


‘전북에서 생활하시는 분들과 권유하다 홍보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저는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연락처: 010-2713-8910) 감사합니다.’


지난 5월 권유하다 홈페이지 지역 게시판에 클라우스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 짧은 몇 줄이었지만 적극적인 마음이 차고 넘치게 읽혔다. 나도 반가워 댓글을 달았는데 그 클라우스가 바로 고광빈 님이었다.

 

 

[사진2] 권유하다라는 물을 만난 고광빈이라는 물고기. 의미있는 활동을 더 늦출 순 없다는 열정의 고광빈 님이다. ⓒ김우

 

전주의 권유하다 회원과 함께 회원 배가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 적선이나 구호가 아니라 월 1만 원의 회비를 내고 세상을 바꿔 갈 동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 회비만 내는 회원 말고 전면에 나서 활동하려는 이들과 손잡고 싶은 마음. 전주에 사비로 보증금을 내고 회비로 운영하는 공간을 권유하다에 제공하고 싶은 마음까지. 고광빈 님의 붉은 마음은 ‘올훼스의 창’이라는 만화책에 나오는, 아주 멋진 남자 주인공 클라우스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입은 월 ‘빵원’이지만 이제는 돈 버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비로소 하겠다는 굳건한 마음. 베네수엘라에서 음악을 이용해서 빈민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엘 시스테마’ 모델처럼. 가난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하프라는 악기를 매개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이야기하는 고광빈 님의 손톱이 반짝였다. 클래식 기타 연주를 위해서 오른 손톱을 기르고, 부러지기 쉬운 중지는 네일샵에서 젤을 붙였다. 청력이 많이 떨어져서 주위에서 ‘베토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고광빈 님.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1~2년이 또 3~4년이 너무 소중하다. 건강하지만 앞으로 뭐가 또 망가질지 모르니, 지금도 늦었는데 의미 있는 활동을 더 늦출 순 없다는 열정이 그이의 손톱보다 더 빛났다.

 

'기나긴 하세월을 기다리며, 천둥 치는 운명처럼' 권유하다를 만난 사람. 열정의 빛을 지닌 사람, 그 빛을 권유하다에서 마구 발하려는 사람, 고광빈 님을 만났다.

 

 

 

글│사진

김우

권유하다 편집위원